요즘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몇 번을 해도 확연한 차도가 있는지는 잘 못 느끼겠다. 마침내 흉터와 자국이 없어질 것을 기대하며 일단 그저 치료를 연장할 생각이다.
운동을 일주일에 3번 정도하고 책을 2주일에 2-3권 정도 읽고 있지만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을 할 때는 선생님이 하라는 데로 그냥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적당히 따라 하려고 하고, 당장 딱히 더 나은 할 일이 없는 시간에 누가 골라준 책이나 관심분야의 책을 찾아 적당히 책장을 넘긴다.
일이 주어지면 적당히 한다. 그 시즌에 해야 되는 일을 적당한 때까지 미루다가 때가 되어 시작하게 되면 별생각 없이 후딱 해치우고, 짧은 기한이 있는 일이 주어지면 적당한 방법을 찾아 적당히 대충 해낸다. 지난 몇 년간은 아무도 내가 낸 자료를 꼼꼼히 보지 않는지 거의 아무런 지적도 피드백도 없어 대충 하곤 했었는데 올해는 꼼꼼히 보는 사람들이 생겨 종종 실수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지난 2년간에 비해 올해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확연히 줄었다. 새로운 무리의 사람들을 사귀거나 이미 알던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사람들에게 일부러 먼저 더 말을 건다거나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은 하지 않는다. 내 진짜 얘기와 고민들을 숨기고 있어서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도 그렇다. 최근에 딱 한 명에게 내 근황과 단기 비밀 계획을 공유했을 뿐이다.
그 어떤 일도 조금은 억지스러운 일은 굳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요즘이다. 생긴 대로, 타고난 대로 최대한 편안하게 살아보려고 마음먹었던 탓도 있고, 뭔가를 굳이 나서서 할 에너지가 부족한 탓도 있다. 이렇게 살면 인정받지 못해 조금은 공허하고 인기가 많지 않아 조금은 쓸쓸할지언정 내 마음은 편안해야 하는데, 여전히 나 자신을 타인의 시선에서 보며 평가하는 것을,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다.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했을 때, 또는 날 것의, 미완성의 나라도 어떻게든 드러내려고 했을 때 작은 인정도, 사람들도 따라오곤 했는데 그런 노력을 어느 정도 멈추고 나니 조용하고 별 볼일 없는 나만이 남는다.
내가 잘하는 일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 내가 못하는 일만 자연스레 드러나는 일이 잦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 존재감 없는 나, 어쩌면 수많은 오해로 뒤덮인 오명이 남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모습이 버무려져 나라는 사람의 인상이 되는 것일 텐데, 내가 내 장점이 될 수 있는 모습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숨기고 살면 어떤 내가 남게 될까?
한편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과거에 이런 삶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에 후회를 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을 이렇게 보냈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잘 못하는 것들을 굳이 억지로 하려 하지 않고 그저 관심분야에만 자연스럽게 몰두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낮은 기대치로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하고 나다웠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나를 마주하는 요즘,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지도 않고 있는 요즘, 스스로에게 지금은 그냥 기다리는 시기라고 말하곤 한다. 치과에서 한 치아에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부작용인지 강하게 치아를 맞물거나 조금이라도 딱딱한 것을 씹으면 그 이가 계속 시린데, 치과에서는 심화 치료를 하기에 그 치아가 아깝다며 일단 6개월 동안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음식을 반대쪽 치아들로 씹으며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다. 지금의 내 삶도 그렇게 바라보려 한다. 대기하고 있는 시기라고. 그 시간 동안 나의 작은 발전에 몰두하자고.
피부의 어둡게 착색된 곳에 일주일 간격으로 레이저를 반복해서 쪼이면 당장은 크게 티가 안나도 서서히 옅어지다가 그 부위가 원래 피부색으로 돌아올 수 있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유연성이 늘고 필요한 곳에 근육이 늘어나며, 대충 넘긴 책장 속에서도 뭔가가 내 머릿속에 쌓이고 한 권 한 권의 책이 미세하게 삶을 조정한다.
정말 고맙게도 일부러 나서지 않아도 나를 알아주는 친구, 마음을 털어놓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친구 한 명쯤은 언제나 있다. 그리고 그저 관심사를 계속 좇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할 수 있는 도반들은 생기게 마련이다.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일 텐데 그 솔직한 결정에 시간을 끄는 나를 미워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