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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an 04. 2021

30년 맛집, 4탄-옥천엔 없는 옥천냉면황해식당

냉면집은 냉면만 맛있으면 되지만

옥천냉면이라 하면 충청북도 옥천군의 유명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사실은 내가 그랬으니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어린 시절 전국의 맛집 투어에 꽂혀 맛있다고 소문난 집들을 찾아다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유명하다는 '낙동강 오리알'을 먹겠다며 낙동강 유역을 훑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있을 수도 없는 요리였으니 당연히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한 일. 삐삐와 셀룰러폰이 사용되고 PC통신이 주력이던 시절이었으니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쉽게 검색되는 게 아니었기에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며칠이 걸리고 말았다.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 내용이니 설명은 하지 않는 걸로.

그럼 서울의 서대문구 옥천동 음식인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옥천냉면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이 고향이다.

이걸 알아내기까지 무려 삼십 년이 다 되어가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불과 이 년 전 이 식당을 알게 됐으니 꽤나 오래 걸린 일이란 것도 그렇지만 이 유명한 식당을 여태 가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 나를 황당하게 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것만 해도 몇 번이었을까? 차로 지나간 건 또 몇 번이었을까? 그렇지 지나다니고서도 옥천냉면황해식당에 가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앞으로 쓸 빗맞아도 삼십 년 시리즈 중엔 백 년 이상 된 식당도 있는데 여기 옥천냉면황해식당은 1952년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2021년 현시점으로 보면 69년 된 식당인 셈이다. 만약 원래 식당이 그대로 존치되어 있다면 양평의 명소였을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있던 식당 자리는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었다고 하니 근처에 원조라는 간판을 두고 영업하는 옥천냉면 전문점들은 모두 가짜라고 보면 될까? 옥천점과 아신점 두 업장을 운영한다고 하니 두 곳을 빼면 모두 짭퉁이라고 보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다른 곳에 다녀왔는데 역시 후회스러웠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옥천냉면은 어떤 맛일까? 서울에서 먹었던 옥천냉면들은 자존심을 버린 음식이었던 걸까?


옥천냉면황해식당의 메뉴는 아주 단출하다. 냉면집이니 물냉면과 비빔냉면 두 가지가 메인이고 역시 물냉면을 먹어봐야 옥천냉면이 왜 유명한지 알 수 있다. 완자와 편육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함이 있으니 냉면만 먹고 올 일은 아니다.



이 때는 완자+편육 메뉴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다음번에 갔을 땐 완자만 주문해서 먹었다. 편육 역시 흔히 먹던 것과는 다른데 수육이라고 하기엔 마른 편이다. 완자는 전라도 광주 송정에서나 먹을 수 있는 떡갈비 수준의 음식으로 돼지고기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요리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옥천냉면은 육수도 기가 막히지만 독특한 면발의 식감이 뇌리에 콱 박혀버리게 만드는 수준이다. 가격표를 보며 느꼈던 압박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딱히 조미가 되지 않은 육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순간에 북한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만드는 단순하고 강렬한 맛에서 옥천냉면의 유명세를 가늠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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