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Jul 31. 2022

62.제주 로컬식당에서 한우새우꽃살을 맛보다

제주오일장 시장 뒤쪽 보원축산1번지

제주도에서 한우를 먹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거의 현지인화되어버린 나조차도 제주 가면 흑돼지 타령인데 갑자기 한우를 먹게 된 사연이 있다. 어른들끼리 가면 메뉴 선정이 의외로 까다롭지 않은데 아이들이 있을 경우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회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당연히 횟집을 피하게 될 것이고, 베지터리안이 있다면 육류는 피하게 될 게 뻔하다.

이번엔 우연찮게도 모 테마파크에서 마주친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고, 결국 두 집의 식성을 붙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회를 싫어하진 않지만 오늘은 싫다고 하는 친구가 있어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육류로 방향을 좁혔고 돼지와 한우를 두고 고민하다가 서광리의 보들결까지 가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현지인의 선택은 달랐다. 난 제주도 축협에서 직영하는 서광리의 보들결을 꽤 높게 쳐주는 편이었는데 성산에서 좀 더 가까운 곳에 자주 가는 단골집이 있다며 '나를 따르라~'를 외쳐댔다.

나야 뭐 당연히 따라가야지 무슨 선택의 권한이 있었을까? 게다가 단골이라 하니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말이다.

사실 시간이 좀 늦었다면 신화월드 호텔 뷔페 가려던 참이었는데 어쩌면 이번 기회에 아주 제대로 된 한우 식당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여긴 정육식당이다. 서울에도 보면 요즘 정육식당이 많이 생겼는데 솔직히 소비자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고기 가격이 저렴하지 않아 만족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청주 MBC 5 거리(맞나? 오래돼서~) 앞에 정육식당들이 참 많았었는데... 어쩌다 서울에서 청주 MBC까지 좌천된 선배 덕에 자주 가게 됐는데 그곳 고기 맛이 뛰어났던 기억이다. 거기서 먹던 초정리 광천수도 생각난다. 사이다 병 같은 유리병에 담긴 광천수. 그게 세계 3대 광천수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릴 땐 청주만 가면 궤짝으로 사 오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게 왜 삼천포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근원으로 돌아와... 자고로 정육식당은 정육식당다워야 한다. 육류의 품질은 당연히 뛰어나야 하고, 가격은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다운 게 착한 거 맞지.... 돌 맞으려나?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 난 입구에서 이걸 발견하고 기필코 육회 한 접시를 받아내고 말겠다는 필사의 노력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사진 보며 알았지만 이 정육식당 간판은 <보원축산1번지>다. 이유가 뭔진 알 수 없지만...

 


그런데 실내로 들어서며 뭔가 다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설마 회센터 같은 데서 주로 볼 수 있는 양념집 같은 개념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내 예감은 적중했다. 좌측 한우 냉장고에서 한우를 고르고 오른쪽 식당은 양념집이다.



아차 싶은데... 전시된 한우를 촬영한 사진이 없다. 왜 그랬나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문한 한우만 촬영하기로 했다. 고기를 보고, 고기를 굽고, 냄새를 맡고, 씹다 보니 잊고 말았다. 이놈의 식도락, 이젠 먹는 것보다는 사진 찍는 걸 더 중요시하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대신 판매단가를 촬영해 왔다. 가격 변동이 있는지 물어보니 거의 유지된다고 한다. 지금 사진 보며 알았는데 육사시미가 보인다. 이건 정말 전라도 광주 아니면 먹을 수도 없던 것 아닌가?

한우 가격이 전반적으로 착하다. 팩트 맞겠나 싶지만 팩트이다. 도민 맛집이라더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숯불이 세팅될 무렵 먼저 주문했던 녀석들이 왔다. 주문이라고 해봐야 냉장고 안에 전시된 것들 중 가격 등 맘에 드는 걸 고른 것뿐이다. 오해 여지를 줄이기 위해 부연 설명을 곁들여 보자면... 전시된 물건이 별로 없다. 너무 많이 준비하진 않는 것 같다.

첨엔 살치살로 시작해서 살치살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소박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모둠 하나, 살치살 하나를 선택했었다.

살치살은 아무리 봐도 착하다. 딱 내가 원했던 그 비주얼. 게다가 가격까지 딱! 암튼 원하던 바다.



먼저 살치살을 굽기 시작했다. 내 편견이지만 한우는 이게 답이다. 살치살을 맛보면 등심, 안심 다 필요 없다. 이미 냉장고에서 내가 원했던 마블링(?)을 확인한 바 굽는 일만 남은 거다.

오늘 고깃값은 걱정하지 말라며 큰소리쳤다. 나 같은 가난뱅이가 뭔... 휴가비를 한 방에 털어먹을 작정인가?



야채 등 자잘한 것들은 셀프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고기만 구웠다. ㅋㅋ 풀떼기는 거의 손도 안 대고 폭풍 흡입이 시작됐다.



한라산 소주가 빠질 순 없지. 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21년 산으로... 다만 더운 여름이니 노지 소주보단 전기 소주로.

함께 대작할 사람이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먼저 가져온 모둠 한우와 살치살을 거의 다 구워갈 때쯤 되자 이런 녀석이 나타났다. 난 주문한 적 없었는데 대체 이 영롱한 자태의 한우는 무엇인가?



현지인인 서프로님은 정육 코너에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왔는데 다름 아닌 새우 꽃살 때문이었다고 한다. 특별 주문이라나. 재고가 없으면 맛볼 수 없는 한우 중에서도 특별 부위다.

갈비를 도려내고 남은 갈비를 둘러싼 살이 바로 새우 꽃살인데 갈비가 빠져나간 부위 때문에 새우처럼 휘어져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걸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먹어 봤으니 나의 식도락은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거다. 아직 도전해 볼 음식이 많은데 언제 다 맛보려나 싶다.



육회와 추가된 살치살도 왔다. 거의 한우 먹고 죽어보자는 분위기다. 만약 여름휴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리하진 않았을 것 같다. 주머니 탈탈 털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머릿속으로 산수를 굴려보니 의외로 저렴하다. 센 척하겠다고 배 터지도록 먹어보라고 큰소리치며 살짝 심장이 쫄깃해졌는데 안도감이 잦아드는 걸 알 수 있었다.



급하게 마신 탓일까? 급하게 먹은 탓일까?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동행 모두 배가 부른 지 젓가락질 속도가 줄어든 걸 알 수 있었다. 거의 파장이 되어가고 있다고 예감했다. 술은 아직 부족하지만 성산까지 대리운전 불러 가려면 갈 길이 멀다.



이건 양념집 메뉴판이다. 주류 가격은 아직 착하다. 만약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한우뚝배기불고기 하나 주문해서 한잔 더 하고 싶었지만 이미 배는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다음에 또 제주 내려오면 한우버섯전골하고 육사시미에 도전해 보리라며 자리를 마쳤다.


들어올 땐 날이 밝았었는데 나올 땐 해가 꺼지고 있었다.

이 날 이후로 휴가 내내 비가 왔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태풍이 하나 더 올라오고 있다 하니...

나야 집에 온 거니 입장이 다르지만 제주도 여행 온 사람들에겐 몹시 안타까운 상황이 됐구나 싶었다.

휴가가 며칠 안 남았구나. ^^

매거진의 이전글 61.이런 오징어회는 처음 봤다 부산서면 두레박산오징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