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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Feb 13. 2021

3.1.4 너무 심심할 때 당신이 하는 일


지난 글에서는 “나의 기준을 아이에게 들이밀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고 그 책을 아이의 코 끝에 들이밀지 말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책을 안 읽는다.

그렇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예전 다니던 회사에 친하게 지낸 팀장이 있었다. 

그녀에겐 초등학생 아들이 둘 있었는데,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진리님은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게 됐어요? 우리 애들이 너무 책을 안 읽어서 걱정인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선 물었다.

“팀장님이랑 남편 분은 책을 좋아해요? 자주 읽어요?”

“아뇨. 책 별로 안 좋아해요. 시간도 없고. 저희는 책 하나도 안 읽어요.”

돌아온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부모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자녀도 무조건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부모인 내가 책을 읽지 않고 심지어 책 읽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면서 내 아이가 책을 많이 읽는 아이로 자라길 기대하는 것은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이들이 책 읽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그래도 너무 어려울 사람들을 위해서, 여기 또 하나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안해 본다.


책 보다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지 말자.


이 세상에는 책 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강렬한 자극을 주는 것들이다.

동영상, 드라마, 영화, 게임 등 스마트폰과 텔레비전만 있어도 이미 즐길 것들이 넘쳐 난다. 이것들은 모두 엄청나게 강렬한 ‘자극’이다. 더군다나 손쉽게 얻어지는 자극이다. 

대부분의 이런 자극들은 눈만 뜨고 귀만 열어 두면 내 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책은 어떤가?

책은 문자를 읽는 적극적인 행위를 필요로 한다. 이해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영상만큼 강렬한 시각적 자극도 없다. 

따라서 자극적인 것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면 책은 더욱 재미없는 것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껴보기 전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나도 책을 정말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기지만, 드라마 시리즈물에 빠져들거나 하면 책 읽는 양이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자주 느낀다. (아… 넷플릭스여…)

그리고 스마트폰!

스마트폰은 일단 손에 들고 켰다 하면 30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대체 뭘 하다가 30분이 지나가 버린 건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투리 시간이 나면 의식적으로 책을 집어 든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을 아이에게 덜 보여 주면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성인인 나도 이런 정도인데, 아직 어린아이들은 얼마나 더할까?


그런데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까?

정말 심심한 상황이 되면 어떨까? 

그때는 책을 읽게 된다. 

(그때는 어른도 책을 읽게 된다!)


텔레비전을 방 안으로 옮기고, 거실을 서재로 만들고 하는 거창한 작업을 하기에 앞서, 일단 손에 핸드폰이나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있는 시간부터 현저하게 줄여 보자. 

책을 읽는 것이 너무 힘들다면, 잡지를 사서 읽는 것도 괜찮다. 

어른도 일단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원래 책 읽기를 즐겨하지 않았다면, 아이도 어른도 문자를 읽고, 내용을 소화하는 데 익숙해질 시간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그다음에는 거실을 서재로 만들어 가족들이 다 같이 책을 읽는 모습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초기 단계에서 자주 있는 일. 

책을 좀 읽는 아이 이거나, 아이가 책을 골고루 많이 읽었으면 하는 부모 마음에서 많이 하는 일인데 내가 하지 말라고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전집 사지 말자.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도 청소년기에 (불완전하지만) 전집이 몇 세트 집에 있었다. 

전집을 읽어 놓고선 왜 전집을 사지 말라고 하느냐고?


나는 늘 읽는 것에 목마른 아이였다. 

집에 있는 전집들은 당연히 다 읽었고, 그 외에도 부모님이 읽던 책들도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러고도 다른 책들이 궁금해서 서점과 도서관을 끊임없이 드나들며 새로운 책들을 찾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전집들은 비싼 돈을 들여 산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어디선가 얻어 온 책들이었다. 


전집을 사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집은 가격이 너무 비싸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유아 시절에 읽는 전집부터 아동기를 거쳐 청소년기까지 읽어야 할 책들이라고 말하는 전집들을 보면 몇 십만 원은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은 아이를 많이 낳지 않고, 또 아이에게 좋은 것은 많이 해주려고 하다 보니 이 정도는 크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가 그 전집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아도 크지 않은 금액이라고 맘 편히 말할 수 있을까?


앞선 글에서 예로 들었던 그런 상황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부모는 꽤 돈을 들여 전집을 샀으니 아이가 열심히 읽어 줬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나 말이 나와 버린다. 


그리고 전집은 너무 권수가 많다.

전집인데, 권수가 많아야지 않냐고?


전집은 말 그대로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한데 묶어서 출판한 책이다. 

그렇다 보니 정말 여러 권이 한 세트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꼭 그걸 한 번에 구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 입장에서는 수십 권의 책을 한꺼번에 사니 앞으로 한 동안 책을 안 사줘도 될 것 같고, 단권 가격을 계산해 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이니 왠지 이익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내게 전집은 어떤 책을 읽으라고 코 밑에 들이미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라고 느껴진다. 

아이에게는 선택의 기회도 권리도 주지 않는 방식 말이다. 


책 읽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데에는, 손에 쥐어진 것을 읽는 것만 있지 않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다양한 수준의 책이 많은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그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내가 관심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고, 그 이야기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원래 읽고 싶어서 찾으려 했던 책 옆에 꽂힌 다른 책이 더 궁금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고심해서 고른 책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결과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내가 읽을 책을 고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런 통합적인 경험이 책을 고르고 훗날 지식을 습득하는 경로를 익히는 연습이 된다. 


하지만 전집은 수십 권의 ‘내가 고르지 않은 책들’이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읽을 마음이 생기기 어렵고, 읽지 않으면 부모 마음은 타 들어간다.


전집은 부모에게만 쉬운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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