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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Mar 31. 2023

왜 워킹맘인가?

워킹맘보다는 다른 표현을 더 듣고 싶다.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나 행동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문법 체계와 관련이 있다.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불편한 적은 없나요?

워킹댇(dad), 워킹싱글(single), 워킹틴(teen)과 같은 표현은 없잖아요?


언어학에 사피어-워프 가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나 행동이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문법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입니다.

말 그대로 가설이기는 하나,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체계나 표현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고, 다시 그들이 쓰는 언어로 인해 사람들의 사고나 사회 규범 등이 틀에 갇히기도 변화하기도 합니다.


언어의 이런 특성을 생각할 때,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당연하게 쓰이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1) 여성을 규격화된 범주로 구분하는 사회:

영어에서 working-mom의 반대 지점에 있는 표현은 stay-at-home mom입니다.

아이를 낳은 여성은 두 갈래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죠.

‘일하는 엄마’이거나 ‘집에 있는 엄마‘ 이거나.


2) 여성/엄마를 육아의 기본값으로 설정한 사회:

일하는 남성/아빠를 워킹댇이라고 표현 하지 않는 만큼, 일하는 청소년을 워킹틴이라고 부르거나, 일하는 싱글 여성을 워킹싱글우먼이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왜 유독 일하는 엄마는 워킹맘일까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엄마의 몫이라고 어휘에서부터 이미 못 박아 놓은 건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육아’를 해야 하는 mom이라는 존재가 때때로 ‘일’도 한다는.


3) 여성의 가사노동을 가치로 환산하지 않는 사회:

워킹맘이 ‘일’을 하는 엄마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전업맘’들은 ‘일’을 하지 않나요?

(저 자신을 포함한) 매우 많은 여성들이 말합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게 육아보다 쉽다.”라고 말입니다.


집안일이란 끝나지 않고, 티 나지 않으면서 엄청난 시간이 들어가는 요상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육아는 그 요상한 존재와 함께 한 생명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켜야 하는 토털패키지죠.

그런데 이러한 토털패키지를 업으로 삼고 있는 여성들은 왜 ‘워킹맘’이 아닌가요?


‘워킹맘’이라는 표현 뒤에는 ‘무상으로’ 집에서 아이 돌봄을 맡고 가사 노동까지 하는 여성들의 노동을 무가치하게 바라보는 사회의 통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형성된 사회에서는 어떤 특성들이 보이게 될까요?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한 사람들 간의 갈등이 생겨납니다.

: 범주화를 하게 되면 각 그룹에 속한 대상들의 특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됩니다. 백인과 흑인, X세대와 MZ세대, 일하는 여성과 전업 주무 등등.

각 그룹에 속한 이들은 나와 다른 상태 그룹의 특성을 인정하고 칭찬하기보다는, 경계하고 깎아내리게 되죠.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속한 그룹이 더 나은 집단이라는 확신과 안정감을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일하느라 바쁘다고 아이들 교육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공짜로 얻어내려는 여자들’ 이라거나

‘하는 일 없이 대낮부터 카페에서 수다나 떠는 여자들’ 같은 생각과 말들.

이렇게 사회는 여성 간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냅니다.



해당 표현이 내재하고 있는 의미에서 대상이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 ‘워킹맘’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당신 머릿속엔 어떤 대상이 그려지나요?

한쪽 손으로는 아이 손을 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핸드폰을 쥐고 업무 통화를 하는 여성.

아이가 아프다고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뛰어가는 여성.


만약 당신이 아이가 있어나, 주변에 아이를 키우는 지인이 있다면 아마 더 구체적일 것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아이 밥을 해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씻기고, 재우고, 그 후 밀린 집안일을 한 뒤 미처 끝내지 못한 회사일을 마무리하는 여성.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두고 온 아이 생각에 괜스레 미안해하는 여성.


멋있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일에서 인정받고, 업무 때문에 세계 곳곳으로 해외 출장을 다니는 여성을 ‘워킹맘’이라는 표현에서 그려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워킹맘’이라는 표현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 표현이 앞서 묘사한 모습을 내재하고 있는 한,

여성들이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

여성들의 인사고과를 평가하는 상사들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여성들

사회적 지위와 성취를 원하는 여성들은

워킹맘과 함께 일하거나, 워킹맘에게 승진 기회를 주거나, 워킹맘이 되기를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워킹맘’이라는 표현을 대신할 어휘를 찾거나 만들어 내는 대신,

그저 한 사람으로, 개별의 특성으로 바라보는 사회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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