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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립체 Nov 12. 2020

친구가 우리 집에 왔어

자고 가도 되긴 하는데 이불이 없어

"와, 넓다. 근데 뭐가 이렇게...

...없어...?!"

친구가 내 방을 보고 한 말이다. 어깨를 으쓱, 이런 게 미니멀리스트라면 미니멀리스트지. 내 집의 가구는 빨래건조대 하나, 다이소에서 사 온 플라스틱 스툴 하나, 좋은 침대 매트리스와 철제 침대프레임이 전부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멀리 가기 어려운 나를 위해 친구들이 내가 있는 곳까지 찾아와주었다. 그 중 한 친구가 지구 저편의 협업자와 밤 11시에 화상 미팅을 해야 해서 우리 집에 왔다.

친구가 오니 이 곳이 더 내 집처럼 느껴진다. 처음 이 곳을 얻었을 땐 별 애착이 느껴지지 않아, 그냥 숙소처럼 여기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가구가 많이 없는 것도 처음엔 그 탓이었다. 그 다음엔 가구가 없는 점 때문에 이 집이 좋아졌지만.)

집안을 쓸고 닦고, 친구를 초대하고 보니 이 집이 1년 시한부이긴 해도 진짜 내 집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보기엔 빈집같아 보이고, 또 누군가가 보기엔 휑해 보일는지 몰라도, 지금 이 집은 더도 덜도 말고 내게 꼭 맞는 완전한 집이다.

완벽할 순 없어도, 완전하다. 내 몸은 큰 충격 이후에 느릿한 회복기를 거치고 있다. 이 회복기를 거친 뒤에도 나는 내 몸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임을 안다.

어쩌면 영원히 내 몸은 회복기에 머물러있을지 모르겠다. 또 어느 날은 작은 징조에 몸을 떨고, 궂은 날씨에 가슴을 졸일 것이다.


"요기 작은 소파라도 하나 두면 좋을 것 같은데, 필요한 건 없어?"

"아냐, 괜찮아."


완벽하지 않은 집이지만 나에게는 이미 완전하다.

완벽하지 않은 몸이지만 나에게는 아직 완전하다.


친구야, 대신 다음에 올 때 향초 하나만 사 줘. 여름에 많이 필요할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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