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 Jan 04. 2020

촌스러운 크리스마스 트리

센스 없음과 센스 있음의 경계




처음 타이페이에 왔을 때 나도 다른 보통 평범한 한국사람들처럼 무더운 더위와 기염을 토하는 습도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비는 왜 이렇게 억수같이 쏟아지고, 모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왜 또 내 다리를 물어뜯고 있는 건지. 좀처럼 이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던 날씨와 환경 속에서 정말 혼자서 끙끙 앓던 내 모습이, 마치 어제 일과 같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봄은 봄스럽게, 여름은 여름답게, 가을은 또 알록달록한 맛에, 무엇보다 겨울은 ‘당연히 춥고 건조해야’ 하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답게’ 프레임에 한창 갇혀있던 당시의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이 도시의 한 가지 풍습은 바로 ‘크리스마스가 빨간 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종교 행사에도 딱히 큰 관심이 없지만,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까르르 웃는다는 푸릇푸릇했던 스무 살 처음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가슴 설레는 데이트를 했던, 학교에 가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던 그 ‘공식 빨간 날’의 성탄절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평범하디 평범한 평일이 되어버리다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무엇보다도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의 이벤트를 맞이하는 엄청난 ‘센스 없음’에 얼마나 혀를 내둘렀던지.

나는 특히 ‘크리스마스 트리는 상술이다.’라는 절대 권력 엄마의 주장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트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었다. 일 년 열두 달 중 딱 한 번 있는 따뜻하고 즐거운 ‘쉬는 날’에  트리 하나 없는 삭막한 집이라니. 그렇기에 나는 머리가 크고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돈을 주고 구매한 ‘상술’이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이다. 크지 않아도 장식이 화려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트리를 보며 따뜻한 와인 한 잔 하는 것.



하지만 나는 타이완에 오고 나서 우리 엄마의 말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부딪히고 말았다. 화려하고 따뜻한 연말의 느낌이 물씬 나는 성탄 연휴를 주로 보냈던 내가 타이페이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는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



타이완 사람들의 소박하고 검소하고 실용적이면서 군더더기 없는 생활 방식이 너무 좋다고 떠들어대던 내가 이들의 촌스러운 패션 스타일을 이해하기까지 정말 엄청난 시간이 걸렸지만,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센스 없음’까지 이해하기엔 당시의 나에게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기에 나는 이 지점에서 정말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타이페이의 거리를 걸어보면 안다. 휘황 찬란 일루미네이션과 발란스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의 향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첫 1,2년은 그들의 촌스러움에 익숙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과도기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자아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고, 그들의 ‘센스 없음’이 나에게 큰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좀 촌스러워도 나쁘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그래, 촌스러우면 좀 어때.’

마음이 촌스럽지 않으면 된다는 한 배우의 말이 생각이 나는 하루이다.




이전 06화 혼삶과 취향의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