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와도 같다고 하지만 감기와는 다른 우리들의 그 병
'누구에게나 지하실이 있어요. 비밀로 하고 싶은.'
요즘 눈에 띄는 드라마가 있다.
KBS world에서 'Soul Mechanic', 'Fix you' 등등 신기한 영문명의 티저 영상이 올라왔길래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니, 신하균 씨와 정소민 씨가 주연한 '영혼수선공'이라는 꽤 재미있는 타이틀을 가진 KBS의 새 수목드라마였던 것이다. 사실 최근 들어 꽤 많은 의학 드라마들이 제작되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고, 그중에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신과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이 상황에,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와 우울감, 각종 트라우마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작품이 굉장히 큰 호평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물론 극 중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나 노희경 작가의 필력이 큰 힘을 발휘한 것이 한몫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괜찮아, 사랑이야.'가 정신과에 대한 교재로 기초-1- 정도 되는 수준이라면 '영혼수선공'은 그보다 조금 더 어려운 단계의 교재쯤이 되려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 드라마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드라마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렇다 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대략 전반적인 큰 틀은 *분노 조절 장애와 *경계성 인격 장애가 의심되는 여주인공을 마음 따뜻한 정신과 의사인 남주인공이 고쳐준다는 설정 임에는 큰 오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신하균 배우님과 정소민 배우님, 두 분 다 평소에 굉장히 호감을 가지고 있던 배우님들이라 굉장히 기분 몽글몽글하게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아주 동화 같고 아름다운 한 편의 단편 소설을 보는 기분이 들어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감이 없다는 말이다. 이건 절대로 드라마를 비하하려는 말이 아니라, 사실 현실에선 내가 정신적으로 괴로운 순간에 딱! 그것도 가장 힘든 순간에 뿅! 그렇게 잘생긴 의사가 짠!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따뜻해 보일 것 같은 꽤 실력 있는 정신과 의사들의 진료는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고 무엇보다 어렵게 예약이 되었다고 해도 그 의사와 고작 한두 시간 면담을 하고 내야 하는 대가가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다 내 경험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몇 해전 아주 짧게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데 내 발로 찾아갔다는 조금 특이 사항이 있긴 했지만 (진짜 환자들은 대부분 자기 발로 걸어오지 않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마지못해 끌려오는 게 대다수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다.) 대체적으로 큰 문제없이 마무리를 지은 생각이 난다. 나는 사실 상담을 받기 전까지 분노를 조절 못하는 것이 장애인 지도 몰랐고, 그것을 장애로 분류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고 하는 범위'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장애입니다.' 하고 깨끗하게 결과가 나오는 수학 그래프가 아니었던지라, 초반에 정신과 의사들의 진료 기준이 조금 못 미덥긴 했다. 한두 시간 이야기하는 걸로 어떻게 무엇을 어떤 식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환자와 일반인을 나누는 기준은 또 무엇인지 전혀 납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환자와 의사가 '꾸준히' '정기적으로'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최근 들어 조금씩 깨닫고 있다.
'쌈닭이 된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다고 한다. 세포가 암 덩어리가 되는 이유, 혈관이 서서히 막히는 이유, 트라우마가 생기는 이유. 나 역시 이 원인을 찾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리만큼 열심히 원인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안 씨, 혼자서 자신의 문제를 분석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요. 그럴 땐 나를 찾아오면 되니까요.'
이미 내 두발로 스스로 선생님을 찾아온 것 자체가 본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아직 심각한 단계가 아니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것이 있다. 생각보다 꽤 많은 현대인들이 자신을 부정하고 있구나. 문제가 아닌 걸 문제로 만드는 이들도 문제지만, 문제가 있는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큰 문제라는 것을.
'아프다는 걸 인정하면 치료할 수 있어요.'
회피, 불안, 분노 우리는 이것을 피할 방법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한 때는 꽤 심각하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피하지 말고 제대로 즐기자는 마음으로 이미 태세 전환을 한 지 오래이다. 인간은 완벽하게 이것들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나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병이라는 것도 그렇다. 아주 깔끔하게 고칠 수 있는 약물이나 구체적인 방법이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내가 믿는 것은 마음의 병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런 용기를 이끌어 내주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런 나여도 나를 떠나지 않는 그 주변 사람들을 믿는 자세, 거기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병은 죄가 있지만 사람은 죄가 없다.'
*분노 조절 장애: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정도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표출하는 성격 장애
*경계성 인격 장애: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행동이나 대인 관계 따위가 매우 불안정한 인격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