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old sunset about you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독 ‘마이너’한 취향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긴 세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던 작은 인디밴드의 음악이나 독립 영화제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저예산 영화들에 안테나가 많이 섰었던 그런 취향. 그래서인지 조금은 대중의 시선에서 비껴가 있거나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조건들을 내재한 작품들이 대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얻지 못하는 걸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냥 다들 대게 그러했으니까.
그런데 최근 알고리즘이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명령어들의 집합 앞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작품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름하야 '내 사랑을 너의 마음으로 해석해'라는 원제를 가진 태국 드라마 ‘I told sunset about you’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 작품을 주의 깊게 보게 된 이유는 물론 좋은 작품으로서 인정을 받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을 비롯하여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원인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내가 가진 '어드밴티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난 대중매체를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평론가도 아니거니와 작품 하나하나 감독의 의도와 연출을 분석해가며 드라마를 볼 필요도 없는 입장이지만, 이 작품은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는 참 어렵지만 대게 '퀴어물'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슬픔', '블루'라는 정서를 아주 잘 깔아 놓고 그 위에 붉음, 빨강이라는 색을 적절히 잘 섞어 넣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처절한 현실 앞의 성소수자들, 특히 성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청소년 시기의 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마주하고 깨닫는 과정에서 느끼는 사랑과 우정에 관한 복잡한 심리를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라고 하기보다는 퀴어 영화에 더 가까웠다는 게 내 개인적인 감상이다.
최근 이 드라마로 인해 평소 별 관심도 없던 태국의 문화나 역사부터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푸껫'에 까지 엄청난 호기심이 생겼고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태국의 문화와 환경, 감독의 역량 앞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대게 한국 사람이라면 K-콘텐츠다 K-드라마다 어깨에 살짝 힘 안 들어간 사람이 없지 않듯 나 또한 그랬다. '그래 드라마 제작 하나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 최고지.' 그런 내게 이 작품은 정말이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언젠가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자아 성찰과 더불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드밴티지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커다란 주제를 던져 주었다.
돌이켜보면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난 성소수자들과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왔다. 한국의 우리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모르시고 또 그런 경험조차 하지 않은 세대지만 나는 그런 그들과 달리 성소수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함께 밥을 먹는 일상생활을 영위해왔다. LGBT나 Queer라는 단어가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많이 사용되지 않던 그 시절, 나는 2000년대 초반 장국영의 영화로 동성 간의 사랑에 관해 알게 되었고, 그 뒤로 대학에 진학 후 영어를 체험하고자 떠났던 캐나다에서의 약 2년여간의 시간 속에서 내 삶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는 엄청난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동성 간의 파트너십, 법적인 보호 뭐 그런 굉장히 어려운 말들을 설명해주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센터에서 잠시 자원봉사를 했던 계기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우연히 내가 살고 있던 동네가 북미 최대 게이 타운이었다는 것과 단순히 영어 공부를 '싸게' 하고자 찾았던 '동사무소'가 성소수자들을 위한 공간이었으리라고는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는 '이성애자'로서 동성애자를 관찰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고 덩달아 그들에 관한 편견도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이기에 반드시 에이즈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 성적 정체성은 억지로 바꿀 수도 또 바뀔 수도 없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에 관해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 뭔가 굉장히 철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현실적인 그들의 삶에 대한 고찰과 생활 방식은 내 앞에 어엿한 현실로 다가왔었고 그렇기에 나는 지금 그들이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난 여전히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드라마 속 이야기는 간단하다. '두 소년의 이야기가 시작된 그곳, 푸껫.' 주인공 Teh와 O-aew의 사랑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 감독은 그런 진부할 수도 있는 스토리를 진부하지 않게, 식상할 수도 있는 클리셰를 식상하지 않게 작품 속에 잘 나타내었다. 난 특히 색깔을 통해 Teh와 O-aew의 사랑을 표현한 연출을 극찬하고 싶은데 '블루'와 '레드'의 강렬한 충돌과 조화는 굉장히 세련됐고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하였다.
그렇지만 여자와의 사랑만이 당연하다 여겼던 Teh앞에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다가온 O-aew는 분명 아주 큰 혼란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부 잘하는 반듯한 아들, 어머니께 효도하는 착한 아들이 아주 당연하다 여겼던, 지금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모든 정상적인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이런 두려움이 사실은 자신에게 있어 커다란 어드밴티지를 상실하게 할 수도 있다는 극강의 공포 그 자체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는 Teh의 방황에 함께 몰입하여 그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O-aew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린다는 의미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성애자'인 나는 감히 알 수 없는 소수자들의 삶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감사하기도 하면서 묘한 일이라는 기분이 든다. 왜 퀴어물을 보느냐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퀴어물이어서 이 작품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우정, 방황, 질투, 사랑 등 '관계'라 불릴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느끼고 싶다면 태국 출신의 Naruebet Kuno 감독이 만든 이 이야기를 꼭 한번 경험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도 푸껫에 가면 Teh와 O-aew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이 알 수 없는 기분과 끝이 없는 여운을 도대체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