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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Feb 03. 2022

수영장 탈의실에서 만난 할머니

혈중 순수 농도 100%의 사람들





 중화권의 설 연휴는 한국과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같은 아시아권이기에 어느 정도 비슷하려니 생각했었지만 그 속을 6년째 들여다보고 있는 '비록' 영주권은 가졌지만 철저한 '이방인'인 나의 시선에는 그러하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일단 설 연휴의 일수 자체가 한국과 급이 다르다. 연차를 앞뒤로 며칠만 붙이면 거의 2주에서 한 달은 일을 안 해도 될 정도라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꼭 장거리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코로나 전에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지가 호주였다. 한국의 추석으로 불릴 수 있는 중추절 연휴도 긴 편이지만 설 연휴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만큼 설은 중화권에 있어 아주 아주 중요한 역대급 명절인 셈이다.



 타이완의 올 설 연휴는 정확히 10일인데 여느 때보다 조금 짧은 일수라 나는 과감히 타이완 국내 여행을 포기하고 자체 격리하는 플랜을 고수하기로 했다. 한국보다 코비드에 걸릴 확률은 현저히 낮고 확진자와 접촉도 없지만 올해 상황을 지켜보고 오미크론 상태가 좀 진정이 되면 한국에 잠시 입국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인데, 설사 한국에서 격리를 하지 않는 그날이 온다 하여도 대만 정부는 결코 무격리 정책을 실시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난 확신하고 있고 한국에서 타이완으로 다시 입국 시 14일 자가 격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런 의미로 열흘 자체 격리를 연습 삼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체 격리 10일 플랜'에 앞서 마지막으로 수영장을 이용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운동 중심(타이완 정부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으로 발을 옮겼고 그날따라 사람이 정말 1도 없었다. 혼자 수영장을 전세 냈구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보기 드문 날이었는데 수영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러 거울 앞에 선 내 앞에 반쯤 튀어나온 공용 의자가 보였다. 강박증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주 기본적인 정리 정돈을 선호하는 나였기에 별생각 없이 그냥 그 의자를 제자리로 밀어 넣었는데 그때 뒤에서 갑자기 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小姐,對不起啊。我忘了把它回去原本的位置呢。”

(아가씨, 미안해. 의자 원래로 돌려놓는다는 걸 내가 깜빡했네.)


“啊。。不會不會!”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謝謝你。謝謝,謝謝。”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할머니는 본인이 사용했던 의자를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아 미안하다고 내게  번이고 사과를 했고 의자를 원래대로 돌려놔주어 정말 고맙다고 '새해  많이 많이 받으라' 말을 남긴  쿨하게 퇴장하셨다. 나는 머리를 말리려던 동작을 잠시 멈추고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그냥 가슴에서 뭔가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 때문이다.






 타이완엔 이곳이 살기가 어렵다고 한국보다 못한 점이 너무나 많고 또 그런 점들을 커뮤니티 사이트에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불평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다거나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도 동료나 주변 지인들에게 불평하고 불만을 터뜨릴 때가 적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런 불평과 불만이 일어날 때마다 이 할머니를 떠올리리라 결심했다. 이곳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에 고마움을 표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는 '혈중 순수 농도 100%'인 사람들이 많으니까. 단점을 들추어내어 내 얼굴에 침을 뱉기보다 장점을 크게 보면서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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