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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Aug 16. 2022

외과의사인 나에게 휴가란?

 7말 8초 많은 회사들의 휴가 기간이 몰려 있는 기간이다. 장마철이 지나고 제일 더운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피서를 위해 정한 기간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휴가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재충전의 시간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쉬는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외과의사인 나에게 휴가란 무엇이었을까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전공의와 전임의 시절 휴가기간은 정말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전공의 시절에는 1년 스케줄이 3월에 나오고 휴가 스케줄도 미리미리 짰다. 1년에 1주간의 휴가...(지금은 2주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덧 휴가가 다가와 있다. 저 연차 전공의 일 때는 치프인 4년 차 선생님께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나가야 했다. 다행히 치프 선생님이 주말부터 휴가를 보내주면 그래도 7일 정도를 쉴 수 있고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나가라고 하시는 경우에는 휴가 기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1주일의 공백 기간 동안 동기들이 내 환자를 맡아 준다. 휴가 가기 전에 인수인계 노트를 미리미리 챙겨 놓아야 정시에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휴가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2년 차 일 때 동기 중 한 명은 하필 휴가 시작일에 1년 차 한 명이 잠적을 하는 바람에 휴가를 며칠 손해 봐야 했다. 또 담당 환자의 상태가 안 좋다고 휴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그 일의 당사자들은 억울함을 울분을 토하며 술 한잔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손해 본 휴가는 보상받을 수가 없었다. 모든 연차의 휴가가 촘촘하게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빈자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휴가를 준비하는 각자의 자세는 다양하다. 휴가 날짜가 정해지는 순간 이미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휴가가 닥치면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지금의 아내와 연애 중으로 휴가를 맞추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난다. 전임의 시절에는 결혼 후여서 휴가가 주어진 1주일간은 우리 아기들 보러 부산에 내려와 있었고 애기들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고 시간만 나면 잠만 잤었던 것 같다.


  시절 휴가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외에 나에게  다른 의미가 있었다. 1주일간 환자를 머릿속에서 지울  있는 1  유일한 시간이었다.  담당 환자들은 동기나 선배에게 맡겨놓고 홀가분하게 병원 문을 나설 때는 아갈 듯이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휴가 기간 중에 병동에서 전화가 잘못 걸려오면 " 휴가 중입니다." 한마디 하고 전화를 듣지도 않고  끊어버리는 쾌감이란...  마음속에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사이다 같은 상황이다.  밤에도 전화  걱정 없이 온전히 잠을 이룰  있는 시간...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도 보고 고향 친구들도 보고...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공연도 보고... 마음 편하게 데이트도 하고... 환자들에 대한 생각이 지워진  머릿속은 그동안 채울  없었던 다양한 것들로 채워 넣는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것까지... 휴가가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조급함이 생긴다. 이제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릿속에 들어있던 온갖 것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휴가가 끝날 때쯤이면 조금씩 환자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다. '~  환자는 괜찮아졌을 려나...''합병증이 있던 환자는 괜찮아졌나?''수술 예정인 환자는 수술이  되었으려나?' 그렇게 휴가 기간이 끝나고 다시 병원  앞에 서면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들어가면 나에게 닥칠 현실이 무엇인지  아니까  무겁게 느껴진다. 병동 책상 앞에 앉는 순간 쏟아지는 노티와 콜들... 그리고 휴가 기간 동안 미뤘던 일들... 그렇게 휴가 복귀하면 며칠간은 정신을  차리다 조금씩 다시 적응이 되면 언제 휴가를 갔다 왔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루하루 일하게 된다.


 8월 들어서 짧게 휴가를 썼다. 아이들 여름 방학을 맞아 학원들도 다 휴원하여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휴가다. 지금은 주말에 별 다른 일이 없다면 온전히 가족들과 보내다 보니 긴 휴가를 낼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은 휴가의 간절함이 조금은 덜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전공의나 전임의 시절에는 환자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지만 지금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은 다르다. 담당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는 휴가 중에도 노티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 또 하나는 이전과 달리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이 있고 자식들이 있다 보니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언제가 더 좋았냐?라는 진부한 물음에 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휴가의 의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이리라 아마 10년 후쯤 우리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휴가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의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휴가 마지막 날이 되면 하루 더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이건 아마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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