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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루미처럼 살고 있는 걸지도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고 나서

by 혜윰이스트

연일 보도되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소식에 아이와 함께 볼까 싶어 확인했다가 12세 관람가라는 걸 보고, 결국 남편과 둘이서만 관람하게 됐습니다.

대부분 이 영화의 인기 요인을 K-POP과 한국 고유 판타지의 이색적인 조합, 매력적인 캐릭터 비주얼과 스타일에서 찾지만, 저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이 영화를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바로,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해서 말이죠.

물론 이 영화가 한국 문화 콘텐츠라는 점에서 글로벌 팬덤을 형성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또한 세계인의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에 이런 인기를 얻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성공할 때까진, 약점을 숨겨야 해”


영화 속 주인공 루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엄마의 친구이자 보호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루미에게 이렇게 조언하죠.
“미라와 조이에게 네 약점을 말하지 마. 그들은 널 이해하지 못할 거야. 골든 혼문을 완성할 때, 그러니까 ‘성공’ 한 후에 밝혀야 해.”

결국 루미는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자신의 진짜 모습을 털어놓지 못하고 외로워지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친구의 말은 어쩌면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성공하면 사람이 모인다"는 말의 그림자


언젠가부터 인터넷에는 이런 식의 글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약점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관계가 좋을 때는 위로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나를 겨누는 칼날이 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실패하거나 미성숙한 사람이다.”

“성공하면 주변에 사람이 생긴다. 그러니 우선 성공부터 해라.”


우리가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있진 않을까요?
루미처럼 나의 약점을 꽁꽁 싸매고, 성공할 때까지는 ‘홀로’ 이겨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요.


"말하지 못하는 사회, 말할 곳이 사라진 시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나 심리상담센터가 부쩍 많아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물론 과거보다 마음의 병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문턱이 낮아진 영향도 있겠죠.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내 이야기를 들을 ‘친밀한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사실 아닐까요?

과거에는 친구, 가족,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던 힘든 마음을 이제는 나를 잘 모르는 ‘전문가’에게 말해야 하는 세상.
약점을 드러냈다가 독이 되어 돌아올까 봐, 감정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우리는 그렇게 감정을 삼키는 법을 먼저 배워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을 상담할 때, 자신의 선택에 의해 앞으로 만나지 않을 수도 있고 소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저에게조차도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힘듦을 제대로 직면할 때 비로소 진짜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시간을 두고 라포형성을 하며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둠을 말할 수 있도록 애쓰던 제가 떠오르네요.

그래야만 비로소 그분들이 빛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게 되거든요.


"어둠과 빛은 함께 존재합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긍정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사람만이 성공한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둠과 빛은 늘 공존하고, 낮과 밤이 오고 가듯, 우리 안에도 그런 리듬이 존재합니다.


어둠을 애써 무시한 채 빛으로 덮어버리기보다는, 그 어둠 속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온전히 반짝일 수 있는 나를 만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머릿속 색들을 감추지 말아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막바지, 루미가 각성하며 노래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노래는 말합니다.
“어둠도 조화의 일부”라고.

우리도 머릿속의 색들을 감추지 말고, 진짜 우리의 소리를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은 지금, 어떤 색의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나요?

그 색을 감추지 않고 꺼내어 보여줄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있나요?

혹시 없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는 지금,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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