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힘든 하루였다.
애써 마음을 다했지만 전해지기는 커녕 오해만 쌓였다.
쓸데없이 밤은 깊어만 갔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들고 겨우 집에 도착했다.
짙은 어둠.
나를 반기는 것은 방 안의 차가운 공기 뿐이었다.
배가 고픈 것인지, 마음이 허기진 것인지 헷갈린 채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에 뭐 하나 뚜렷이 먹을 것이 보이질 않는다.
그럴 때 내가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리고 물을 붓는다.
팔팔 끓는 물에 면을 넣고, 스프를 털어 넣는다.
스프가 묘하게 물 속에 번지고 방 안의 차가운 공기는 어느덧 위로가 스며든다.
정말 운이 좋게 달걀 하나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탁, 하는 소리 뒤로 노른자가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마치 마음의 문을 살짝 여는 순간처럼.
휘휘 저으면 맑았던 국물이 탁해진다.
국물 색깔이 맛있어진다.
라면은 언제나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늘 거기 있다.
슬픔이 말로 다 풀리지 않을 때, 누군가의 따스한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없을 때.
그 어떤 것보다 빠르게 우리 곁을 채워주는 건,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이다.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며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속삭일 때, 왠지 그 순간만큼은 온전한 위로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며 마음을 데워간다.
누구나 아는 그 맛에 복잡한 마음이 녹아내린다.
위로는 복잡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국물 한모금이면 충분하다.
그 흔한 토닥임이 마음을 달래준다.
완벽한 해결책이 없어도 조금씩 회복된다.
그러니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에 인색하지 말자.
라면 한 그릇이어도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