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a Bersama) 1.
캐리어를 끌고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남편과 나는 조금 당황했다. 무려 적도라니 더위는 예상했다. 생각 못 한 건 사우나실을 연상시키는 습도였다.
고국의 기억은 뇌에만 있지 않았다.
백육십삼 센티 전신의 살갗에, 그 아래 똬리를 튼 땀샘에, 나뭇가지처럼 온몸에 뻗은 혈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생소한 환경을 접한 신체가 당장 반응했다. 이마 목덜미 등줄기로 낯섦에 아우성치듯 물기가 흘렀다.
우리를 맞이하러 정대리가 나와 있었다. 이년 먼저 나온 타지의 선배라 했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됐지만 회사 차로 공항까지 픽업 온 터였다.
남편이 쓰게 될 차량이었고 그 차를 운전할기사와의 상견례 자리기도 했다.
“진짜 너무 부럽습니다. 이렇게 같이 오는 게 맞는데. 와이프도 애도, 저는 뭐가 복잡하더라
구요.”
아파트 카드 키를 건네며 정대리는 반강제 이산가족이 됐다고 신세 한탄을 이어갔다.
“근데 진짜 습하네요.”
번지르해진 얼굴을 하고 남편이 말했다.
“우기 끝나고 건기로 넘어가는 환절기래요. 몇 년 살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맨날 똑같이 더우니까 계절 개념도 없고. 우기 땐 더 습하고 건기 땐 쬐금 덜 습하다 정도?”
계절이 하나뿐인 건 계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던 글귀가 떠올랐다.
계절이 없는 적도의 땅에 나는 결국 닿았다.
친절한 가이드를 자처한 정대리와 우리는 거주지에 도착했다.
데사 버르사마 (Desa Bersama).
내가 버텨야 할 무인도의 이름이기도 했다.
입구로부터 반원을 그리며 다섯 동이 있고 우리는 가장 마지막 건물에서 내렸다. 이미 지나친 옆 건물이 정대리가 사는 동이라고 했다.
카드키는 17층 전용이어서 다른 곳은 전혀 눌리지 않았다. 선택적 고립이 가능한 곳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조명을 켰다. 실내 등이 환했지만 조도는 낮았고 한국 아파트와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국보다 두 시간 늦으니 고국은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집을 둘러보기엔 둘 다 피곤했다. 트렁크를 펼쳐 갈아입을 옷만 끄집어냈다.
생소했지만 집이라는 공간 때문이었는지 씻고 나니 긴장이 풀려 졸음이 몰려왔다.
우리는 습하고 침침한 곳에서 어색하고 피곤하게 인니의 첫날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