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맨의 알코올 조절장애 셀프 치료기
"술 좀 그만 먹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한 지가 벌써 몇년째인지 모르겠다.
십여년간, 나는 세상 소식을 듣고 읽고 생각하고 정리해서 이를 다시 유통하는 일종의 소식 영업을 해왔다. 해당 소식을 유통하는 플랫폼(직장)은 바뀌기도 했지만, 업태(業態)는 동일하다. 그래서 남들보다, 그 누구보다도 술을 자주 마시고 많이 마셔왔다. 남성 영업맨이 일을 잘하는 데는 여러가지 기술이 있겠지만, 술로 인맥 쌓고 유지하는 게 손쉽고 가성비도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술로 만든 인맥이 내 주요 네트워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나는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일년에, 아니 한 달에, 아니 일주일에 얼마나 퍼마시는지 가늠할 수는 있다. 휴대전화나 다이어리 캘린더에 약속들을 다 기록해놨기 때문에.
일단 마시면 대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일도 항상 최선을 다해서 하지만, 술도 앉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마신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게 앞자리 앉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 같다(술을 마시러 나왔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술을 마신다는 이런 알량한 철학).
잔이 채워지면 소맥을 '퍽' '퍽' 때려꽂는 게 습관이다. 나는 내가 취하려고, 즐거우려고 이렇게 마시는 것 같다. 앞에 있는 사람들은 많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걸 근래에야 깨닫고 굉장히 부끄러움을 느낀다.
술을 적게 먹고 싶다. 일을 할 때 술자리에 가더라도 적당히 먹고 싶다(내가 적당히 먹으려고만 하면 사실 적당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만취하지 말고, 취했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택시비가 아깝기도 한데,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서 쉴 수 있다면 택시비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합리화였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아이 얼굴 한 번 더 보고싶다는 약간의 부정(父情)도 한 몫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술 덜 먹고 일찍 끝내고 지하철 타고 일찍 집에 가거나, 술자리를 적게 잡았으면 됐다. 그 뿐이다. 다 나 즐겁자고, 내 과업 성취를 위한 편리한 방식으로 술을 퍼먹었던 게다. 그 뿐이다.
그래서 2025년부터는 좀 적게 먹어보려고 한다. 조절해서 먹어보고자 한다. 근 십여년간 일주일에 술자리를 세네다섯개씩 뛰었다. 줄여보려고 한다. 일주일에 '업무약속 1개', '개인약속 1개'만 잡아보려고 한다. 나머지는 점심으로 대체하면 될 것이다.
물론 업무약속이야 5개를 8개를 잡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보려고 한다.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약속은 없으면 업무약속을 끼워넣을 수도 있겠는데, 나는 개인약속도 많으니까 이를 1개로 통제해보려고 한다.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런데 노력 안하고 살다가는 평생 술만 퍼먹다가 사망하겠다는 생각이 든지 오래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 해보려 한다.
물론 저녁 약속 2개가 3개가 될 수도 있고 4개로 늘어날 수도 있다. 전이라면 그냥 견디고 진행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좀, 마음을 먹은 김에, 다른 주로 미루거나 뒤로 약속을 미뤄보려고 한다. 상대방도 술 약속이 뒤로 미뤄지면 좋아하지 않을까? 일단 서로 살고 가족도 챙겨야지. 자기계발도 더 해야지. 술 퍼먹을 시간에.
그래서 제목에 써 놓은 것처럼, '음주달력'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나는 25.2.2에 이 글을 썼고, 브런치 작가로 등록(2.18)된 뒤 몇글자정도 다시 고치고 있다. '서랍에 있는 글을 어서 꺼내보라'는 카카오 측의 공지알림에 뜨끔했다. 사실 1월 말부터 글을 게시하려고 했는데 주정뱅이에 게을러서 안 썼기 때문이다. 반성한다.
앞으로는 매월말 음주 달력 사진과 함께 한 달 술자리를 정리해볼 생각이다. 물론 지금 2월까지의 술자리 총평을 할 순 없다. 피곤해서. 다만 이제 자주 써보려 한다. 시작이니까 좀 밍기적댄다고 이해해달라(도대체 누구한테?).
이를 위해 나는 1월 1일부터, 탁상 캘린더에 동그라미, 세모, 엑스표를 치는 방식으로 그날의 음주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퍼먹고 만취하는 게 기본값이니까 동그라미는 만취를, 세모는 적당히 먹었거나 취했지만 어느정도 괜찮은 상태로 귀가했을 때, 엑스표는 마시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어떤 날에는 안마실 줄 알고 엑스표를 쳤다가 부랴부랴 동그라미로 바꾸기도 했고(그래서 1월 달력은 지저분하다), 어떤 때는 엑스표를 쳐 놓고 이를 지켜낸 대견한 날들도 있었다.
1월 최종 스코어는 동그라미 5번, 세모 7번, 엑스표 19번이었다. 1월이 설날 연휴를 끼고 총 31일인데, 나는 12번 술을 마셨고 그 중 5번은 만취했으며(만취는 기억이 안남을 의미하기도 한다), 7번은 술을 마시고 그래도 적당하게 귀가했다. 19번은 술을 안마셨지만, 주말과 설 연휴가 주효했고, 특히 1.20부터 걸린 감기(독감인가 감기인가 코로나인가) 때문에 술을 덜 마시기도 했다.
2월에는 좀 더 세세하게 보기에 좋게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심 잘 기록하고 재밌게 기록해서 이 게 편집자님들의 눈에 띄어서 단행본으로 나갔으면 싶기도 한데, 아직 그렇게 될만큼 품을 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나도 그래도 글 쓰는 직업을 10년 넘게 해서, 정색하고 글 쓰면 단문으로 쭉쭉 잘 빼는 편이라고 나 혼자 뇌내망상을 해본다.
단행본이 안 되더라도(되게끔 하겠지만), 이 음주달력 기록은 내가 30대 중반에 폭음(暴飮)의 삶을 멈추고, 통제하고, 음주 방면에 있어서 어느정도 어른이 되도록 하는 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내 주변에는 술 퍼마시는 사람이 정말정말 많아서, 그들과의 에피소드, 그들의 에피소드, 전국 오백만 주당 및 주정뱅이들의 트렌드나 고민꺼리(거리?)에 대해서도 내 생각을 정리해볼 요량이다. 나 혼자서도 재미있고, 기록하면 글이 되고 글이 되면 또 공유되고 하니까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그 달의 음주 달력을 이미지로 올리겠다. 그렇다고 글을 한 달에 한 번만 쓴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때 그때 소위 야마잡히는 게 있으면 기록하려고 한다. 술과 관련된 생활에 관한 이야기이겠지만, 그냥 뻘소리나 재미난 이야기를 적을 수도 있다.(그냥 내 맘대로 하겠다는 거다).
혹시나 이 글을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그렇게 품들이거나 성의 있게 쓰지 않았음에도 여기까지 스크롤을 내려주신 것에 대단히 감사드린다. 그리고 앞으로 자주 만나보길 기대한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