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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간

by 방구석여행자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곳일까?

거기서 나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


여행은 떠나는 순간부터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활동이라는 걸 보여주는 그림책이라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 이 책을 참 좋아한다. 여행을 가고 싶을 때나 여행에서의 기억들이 떠오르면 종종 이 책을 꺼내 본다.


주인공이 여행을 떠난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갈 때부터 여러 방방곡곡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베네치아에 가면 곤돌라를 타보라고 하고 산마르코 대성당을 보고 오라고. 그러나 주인공의 인상에 남았던 건 물안개였다.


또한 로마에 갔을 때였다. 사람들에게 바티칸 미술관과 콜로세움을 꼭 보고 오라고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기억에 남았던 건 콜로세움에서 돗자리를 펴고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던 아주머니였다.

셀축에 갔을 때는 사람들이 에페수스 유적, 켈수스도서관을 보고 오라고 했었다. 그러나 역시 주인공의 인상에 남았던 건 버스 타고 가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한 소녀가 들고 왔던 보랏빛 한 움큼의 꽃이었다.


메테오라에 갔을 때였다. 사람들은 수도원들을 보고 오라고 했지만 주인공의 인상에 남았던 건 바싹 야윈 개와 비가 온 그날 함께 수도원에서 걸어 내려오며 친구가 되었고 간식도 나누어 먹었던 순간이었다.


바하리야 오아시스에 갔을 때였다. 사람들이 흰 사막과 검은 사막을 보라고 했고 낙타도 타 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인상에 남았던 건 밤하늘을 수놓은 쏟아질듯한 별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베른에 갔을 때였다. 이때는 딱히 보고 오라고 말해준 게 없었다. 천천히 걷다가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시간이 멈췄다.

주인공은 이러한 기억들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 저마다 이러한 여행에서의 기억, 설렘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직장 다닐 때 언젠가는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희망과 그동안 해왔던 여행 중 좋았던 기억들을 추억하며 힘들고 바쁜 직장생활을 버텨왔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직 아이가 어려 눈에 밟혀서일까? 쉽사리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했던 여행 중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무엇인지 추억해 본다. 대표적으로 3가지 기억이 있다. 첫 번째로 노르웨이 오슬로를 마지막 여행하던 날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를 빌려서 해안도로를 쭉 달렸다. 그때 맞은 바닷바람을 거의 십 년이 다돼 가지만 잊을 수 없다. 왜 자전거를 마지막날에야 빌리게 되었을까? 후회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두 번째로 오슬로의 유명한 관광지 중 아케르후스 요새가 있다. 이곳에 한번 가보라는 사람들의 말에 가서 구경을 하다가 한쪽 구석에 있던 해안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한참을 그 언덕에 앉아있다가 왔던 적이 있었다.

세 번째로 스웨덴에 있는 감라스탄이라는 곳은 올드타운이다. 올드타운답게 멋스러운 건물이 돋보이는데 이곳의 길은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덜그럭 덜그럭. 그때 당시에는 캐리어바퀴가 계속 돌길에 걸려 불편하고 짜증이 나서 감라스탄에 갔던 걸 후회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마저도 추억이었고 계속 생각이 났다.

이 책은 그동안 나의 여행에 대해 점검해 보는 시간을 안겨주었다. 옛날에는 여행지를 찾아가면 사람들이 다녀왔던 곳에 꼭 다녀왔어야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여행에서 내가 정녕 행복했을까?, 뭘 느끼고 온 거지? 돌아왔을 때 공허함이 가득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진정으로 여행하는 법을 터득했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즐겼다. 그랬더니 훨씬 풍성한 여행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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