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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다는 것

by 방구석여행자

‘나는 찻잔이지만....., 꼭 차를 담지 않아도 괜찮을지 몰라.’


찻잔이 있었다. 찻잔은 우유를 마시고 성장을 해 마침내 혼자 독립할 수 있었다. 찻잔은 장식장에서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렸고, 할머니는 찻잔을 선택해서 홍차를 따라 마시곤 했었다. 찻잔은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야외테이블에서 차가 따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찻잔. 갑자기 독수리에 의해 찻잔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떨어졌다. 찻잔은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것들이 보이지 않아 무섭고 속상했다.


차를 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찻잔은 차를 담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역할이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늘에는 날마다 비가 내렸다. 어느 날 찻잔 안에서 무언가 팔딱팔딱 뛰어올랐다. 찻잔에 빗물이 담겨있었고 거기에 물고기가 있었다. 찻잔은 그 이후로 토끼도 하룻밤 재워주고, 아기오리들도 돌봐주고, 개구리들도 헤엄치고 여러 동물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꼭 하나의 역할만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찻잔이 차를 담는데만 고집했다면 찻잔은 차를 담을 수 없었을 때 계속 속상했을 거다. 요즘에는 N잡세 대라는 말도 있다. 다양한 직업과 역할을 가지고 있는 삶. 꼭 차를 담지 않아도, 다른 역할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가치 있을 수 있다는 걸 고난과 시련을 겪고 비워낸 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에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내 역할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간간히 불러주겠다고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소식은 언젠가부터 뚝 끊겼고, 내 자리는 없어진 것 같아 막막했다.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하던 막막함과 걱정은 요즘 아이를 통해 다양하고 폭넓은 취미생활을 경험하면서,


’꼭 직장을 다녀야만 되는 건 아니었구나. 지금은 엄마로서 아이에게 내 본분을 다하며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삶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책의 찻잔이 성장한 것처럼 나도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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