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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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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Jan 12. 2020

고양이 R

21화

마당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간들거리는 애들이 조금씩 커졌다. 똥을 누러 나가거나 볕을 쪼이는 일이 시들해지면 그 애들을 발로 하나씩 툭툭 건드렸다. 막대 끝에서 몽글몽글하고 보들보들한 것들이 바람에 날려 마당 끝에 떨어지거나 문 앞에도 떨어졌다. 인간과 아이와 나는 마당에서 밥을 먹고 서로 몸을 만지며 잠을 잤다. 부드러운 바람이 털을 간질거리며 지나갔다. 따듯했고 배부르고 나른했다.     


낮이 몇 번 저물고 밤이 몇 번 지나자 집이 시끄러워졌다. 인간은 쉬지 않고 물건들을 이리저리 들었다 놨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쇠붙이에서 내린 인간들이 찾아와 물건을 싣고 모두 떠났다. 떠나기 전에 밥을 주던 인간은 밥그릇에 밥을 잔뜩 부어주고 내 등과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인간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아 자꾸 인간의 얼굴을 쳐다봤다. 인간은 나를 보며 발버둥치는 아이를 번쩍 들더니 쇠붙이에 싣고 문을 쿵 닫았다.      


쇠붙이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나는 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큰 문이 삐거덕 소리를 낼 때마다 목을 길게 뺐다. 마당애들이 바람에 휘청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열린 안쪽 문으로 들어갔다. 집에서는 이전과 다른 기분이 안 좋은 냄새가 났다. 바스락이 몇 개가 바닥에 뒹굴었다. 다리가 네 개 있던 아이는 그대로다. 인간이 떠나자 집안이 그새 마당만큼 커졌다.      

    

폭신한 내 자리에 몸을 누이고 까무룩 잠을 잤다. 열린 문으로 빛이 뿌옇게 쏟아졌다. 인간과 아이는 오지 않았다. 바닥에 흘려진 밥을 주섬주섬 먹고 컴컴해지는 집안을 한 바퀴 돌았다. 엄펑덤펑 밟아도 꿈쩍 안 하는 애들뿐이다. 금방 시들해진 나는 큰 문 앞쪽으로 나가 쇠붙이가 서있던 자리를 내다봤다. 꼬불꼬불한 길 끝이 시커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그많게 입을 벌려 작은 소리로 불렀다.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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