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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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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Jan 12. 2020

고양이 R

24화

길 끝에서 쿵~ 쿠아앙~ 쿠르릉~ 쾅~ 소리가 올라왔다. 큰길이 안 보일 정도로 뿌연 기운이 높이높이 날아 다녔다.    


_아이고, 시벌~ 이 오방살이 들어 죽을 오질 놈들아아~

_니들이 그러고도 인간이냐! 넌 부모도 없쟈? 응!

_아니 이 늙은이가 어디서 행패여. 시방 이거 못 놔요! 엉! 뜨건 맛을 못 봐서 그러는거냐구욧~

_그려, 뜨건 맛보기 전에 이 눔덜아, 나 여그다 묻고 부셔라 부셔. 이 쳐 죽일 놈덜아~아구구구 다리야~

_어쩌요. 울덜도 이 짓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녀~어. 법이 그런데 어쩌요. 자자 이 멱살 푸시고. 진정들 하셔, 진정~

_수십 년 산 내 집을 강제로 내쫓는 게 법여? 그런 게 법이냐구! 언 나라 법이 개똥같은거여!

_아이참, 영감님, 아니 아버님. 더 좋은 집, 아파트 지어준다잖아요!

_이 영감 말이 맞어. 그게 법이믄 일자 무식헌 내 보기에도 개같은 소리지. 애들 공깃돌 살 돈도 안 되는 거 손에 쥐어주고 보상금이라니. 야 이 새꺄, 그거 딱지장사하려는 거잖아. 이거뜰이!

_무신 법이 울덜처럼 가진 거라곤 쥐뿔도 없는 것들에게만 법타령이제. 어이! 거기 뒤에 뽀끄렌~ 여그 마당에 구덩이 딱 두 자만 파봐. 나 여그에 묻힐 텨. 갈데없는 놈은 여그서 죽어야제. 염병 헐 넘들~

_야! 김 사장 팀은 언제 투입해? 아, 씨. 죽갔다니까아! 진짜아~ 

         

인간들이 우르르 엉켜 있다. 뒤로 돌아 옆길 쪽으로 몸을 숨겼다. 밥을 주던 인간을 못 본지 꽤 지났다. 그동안 밥을 먹으러 큰길 쪽으로 내려갔다. 큰길로 내려가는 골목은 울퉁불퉁 바뀌어서 발바닥이 욱신댔다. 어떤 길은 막히고 어떤 길은 뚝 끊어졌다. 길을 돌아가면 나뒹굴어진 물건이며 옆으로 주저앉은 집들이 나왔다. 내가 첫애들을 낳은 바스락이 냄새가 나던 아이집도 안 보였다.     

     

내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다리가 쭉쭉 늘어났고 나는 배고픔에 시달렸다. 길마다 점점 더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럴 때마다 땅이 크게 흔들렸다. 인간들이 떠드는 소리와 쇠붙이 소리가 섞여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다. 떼로 몰려온 쇠붙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불을 켜고 쿠아앙~ 콰~앙~쾅~ 울렸다. 인간들도 소리소리 질렀다. 어떤 것이 인간 소리인지 쇠붙이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목구멍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겨우 길을 빙빙 돌아 큰길로 내려갔다. 입에 맞는 밥이 없는 날에는 시쿰한 밥을 깨작댔다. 그런 날은 혀가 찢어질 정도로 토했다. 그래도 안 먹은 것보다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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