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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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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Jan 12. 2020

고양이 R

26화

고양이가 뭘 알겠는가. 고양이는 앞으로 닥칠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양이에겐 잠깐잠깐만 있을 뿐이다. 잠깐 동안 나와 애들은 인간이 주는 밥을, 인간이 없는 집에서 먹으며 지냈다.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쁘지도 않았다. 밥은 맹탕이거나 눅진했다. 큰길로 내려가 먹는 밥처럼 토악질은 하지 않았다. 애들이 양양 대면 나는 애들을 데리고 마주 보이는 집에 가서 양양 댔다. 얼굴에 털이 난 인간과 털이 없는 인간이 번갈아 밥을 줬다. 애들도 내 옆에서 따라 먹었다.     


_쟤들, 어쩌지?

_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 힘없는 것들은 힘없는 것들끼리 챙겨야 해. 델꾸 갈까?

_아이고, 울 서방님. 그런 말씀 마세요. 시방 우리 목구멍이 포도청여

_에휴~ 야들아, 많이 먹어~어. 많이 먹어야 살 힘이 생긴단다


그래도 고양이는 아무거나 먹을 수 없다. 애들은 저들끼리 나갔다가 입에 작은 짐승을 물고 들어왔다. 작은 짐승은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달아나지는 못했다. 나는 그게 먹을 수 있는 건지 몰라 이리저리 들여다봤다. 내가 먹어온 밥하고는 딴판이다. 애들이 옆에서 계속 양양 댔다. 나는 가슴이 할딱거리는 짐승을 꽈악 물었다. 칙~ 물컹한 게 입안에 퍼졌다. 바닥에 내려놓은 짐승을 한 녀석이 앞발로 툭 건드리면 다른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서로 먹겠다고 성질을 냈다.          


애들이 날아다니는 작은 애들을 잡겠다고 풀쩍풀쩍 뛰어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 쇠붙이가 또 찾아왔다. 얼굴에 털 난 인간이 밥을 잔뜩 퍼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인간들은 동발동발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물건을 들고 나와 쇠붙이에 꽉꽉 옮겼다. 나는 애들과 밥을 먹다 말고 멀뚱하니 바라봤다. 털 난 인간이 나를 슬쩍 쳐다봤다. 털이 없는 인간은 나와 내 애들을 쳐다보고 숨을 한번 크게 내쉬더니 쇠붙이 문을 쾅 닫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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