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바트나이외퀴들(Vatnajökull) 빙하 아래에서
암흑의 공백으로 가득 찬 우주의 평균 온도는 섭씨 영하 270.3도.
이 행성의 바깥은 태초부터 줄곧 죽음처럼 차갑고 쓸쓸한 곳이기만 했다.
우주의 만물이 차갑게 식어갈 때 서로 손 붙든 세 개의 원자들은,
그러니 액상보다는 언제나 고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연계의 평범하고도 당연한 일상이다.
다만,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살아온 이 별의 생명들은
그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사실을 완전히 기억 상실하였다.
얼음으로 깡그리 뒤덮이거나 천지가 수증기로 가득하지 않고
이토록 많은 물이 출렁이는 별이 생겨난 것은,
연속된 우연과 우연이 무한히 겹쳐 이루어 낸
기적적인 단편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팔백 년을 얼어붙어, 그 더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척박한 토양을 긁어 가며 화산 아래로 떠밀려 온
바트나이외퀴들 빙하의 끝자락,
아주 조금 허락된 그 균열 사이로
나는 겸허히 허리 숙여 들어간다.
국토의 십일 퍼센트가 빙하로 뒤덮인 이 땅은
바깥 우주를 빼닮은 이색 풍경을 잠시나마 훔쳐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유별난 장소인가.
서늘한 냉기 속에서 나는 어렴풋이 기억이 깨어났다.
사실이 아예 와전되었음을.
이 얼음 동굴의 바깥, 내가 떠나온 곳이
얼마나 진귀하고 특별한 곳이었는가를.
도리어 온 우주가 이 유례없는 행성을 구경하기 위해
시선을 모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비와 강과 바다가 기다리는 바깥세상으로 탈출해
한 모금 빙하수에 목을 축일 때,
나는 또한 생각했다.
생명의 소임은, 그렇다, 두 번 다시 얼어붙지 않는 것.
이렇게 물속에서 물로 태어나 물로 맺히며 한데 섞이고 흘러,
다시는 얼음의 우주로 떠내려가지 않는 것.
이 모든 필연적 우연에 복종하여,
절반 넘게 물로 빚어진 이 축축한 육신을 출렁출렁 움직여
어떻게든 얼지 않고 뜨겁게
살고 또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지구 별 위의 빙하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곧 다시 얼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우스꽝스러운 역설이라는 것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