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가 되면 가끔씩 기억나는 낯 뜨거운 사건이 있다.
2008년~2009년쯤 추석 명절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에 나는 보험회사 전산 담당자로서 CSS(Credit Scoring System, 개인신용평가시스템)를 도입하는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었다.
(요즘에는 플랫폼(토스, 카카오페이 등)을 통해 대출 금리비교가 가능하고, 각종 통계 데이터와 머신러닝 모형이 가미된 CSS가 대출한도와 금리를 정교하게 산출한다. 만약 즉시 송금기능이 합쳐진다면 고객이 원할 때 실시간으로 비대면 신용대출도 받을 수 있다. 물론 금융기관을 통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대출이 가능하다.)
당시에는 개인 신용대출 취급 시 요즘과 같은 자동화된 시스템이 흔하지 않았고, 대출 담당자에 의해 수기로 취급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대출 담당자가 신용평가사(Credit Bureau)를 통해 고객의 신용정보와 타 금융기관의 대출 현황을 일일이 확인을 하고, 나름의 평가방식을 통해 대출한도와 금리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후에 일련의 심사 절차를 거친 후, 고객에게 송금을 함으로써 대출을 발생시켰던 것이다.
내가 진행을 했던 프로젝트는 고객에게 송금 전의 단계까지, 즉 CSS 통해 대출한도와 금리가 자동 산출되는 기능을 도입하는 프로젝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향도 측면에서 매우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혈기왕성한 대리급 직원 1명이 신용평가사 직원과 진행해도 될 법한 프로젝트로 여겨졌던 거 같다.
약 5개월간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오픈이 되었고, 평소 대비 5~10배 규모로 대출이 급증하자 개인여신팀과 IT개발팀은 한껏 고무되었다.
그러나 오픈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예상치를 훌쩍 넘는 대출 급증을 이상히 여긴 심사팀에서 대출 현황을 점검했고, 치명적인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음을 알려왔다.
타 금융기관의 대출현황을 확인하는 과정(CSS 과정에서 타 금융기관의 대출현황을 확인하고 이를 고려한 대출한도와 금리가 산출됨)에서 대출금액 (단위)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요즘은 신용평가사에서 당연히 (원) 단위로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당시에 특정 신용평가사는 (천원) 단위로 제공을 했던 것이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모두 (원) 단위로 취급을 했고, 이로 인해 고객의 타 금융기관 대출금액이 현저하게 적게 산정되었던 것이다.
타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금액이 많아 대출이 불가한 고객이 가능한 고객으로 뒤바뀌게 되었고, 차주들의 대출 한도도 늘어나 더 큰 금액을 취급하게 된 것이다.
개발된 시스템의 문제를 인지한 후 즉시 수정을 했던 기억이 있지만, 사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배 직원분들과 팀장님은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과도하게 자신했고, 수정한 프로그램으로 모든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었다고 자만했던 것이다.
오히려 혼자 진행한 프로젝트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 일을 불필요하게 시끄럽게 만든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사건 이후에도 나는 과도한 자신감에 사로잡혀, 사태를 쓸데없이 키운다는 잘못된 판단 끝에 경솔하게도 이직을 감행하는 철없음을 보이기까지에 이르렀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수를 통해서 많은 것을 얻는다.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실무 현장에서는 업무 담당자의 착오나 실수가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울러 본인이 저지른 과오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때때로 주변을 돌아보는 태도도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실수를 통해 배움을 축척함은 물론이고,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함으로써 미처 몰랐던 더 값진 배움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