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동시에 밀려들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부담은 회사에서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프로젝트 관리 문제였다.
여전히 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히지 않아 걱정이 크고, 프로젝트 기한도 훌쩍 넘겨 지루하게 진행되는 상황이 나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주었던 거 같다.
매일같이 독려해도 진도는 더디기만 했고, 밤늦게 퇴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패턴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비슷한 날들이 반복됐다.
그러는 동안 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사에서는 올해 실적 평가(KPI)와 내년도 사업 계획, 예산 편성까지 요청을 하고 있어 업무는 점점 쌓여만 갔다.
그날 금요일 저녁은 유난히 피로가 몰려왔던 것 같다.
주말 동안 쉬면 괜찮아질 거라 스스로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생각해 보니 다음 날(토요일)은 1년에 두 번 있는 전사 봉사활동이 오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지금은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 푹 쉬면 좋아질 거야..’
휴식만 취하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에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으로 봉사활동을 마치고, 오후에는 프로젝트 팀을 찾아 진행 상황을 확인한 뒤 귀가했다.
‘이제 정말 쉴 거고, 그럼 괜찮아지겠지..’
이런 마음으로 다시 잠을 청했지만, 이번에도 어딘가 불편하고 힘이 들어 잠들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체온을 재보니 38.5도가 나왔다.
토요일 저녁이라 당장 병원에 가기도 애매해서 일단 다음 날까지 버텨보기로 했고, 이튿날 병원을 찾아갔지만 간단한 처방과 휴식을 권고할 뿐이었다.
하지만 고열은 계속되어 내릴 기미가 없었고 저녁 무렵에는 결국 39.5도까지 치솟았다. 그제야 휴식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 판단되어 응급실로 향했고, 거기서 너무나 익숙한 A형 독감임을 확인했다.
“이 정도 고열이면 꽤 힘드셨을 텐데요. 병원에는 안 가셨어요?”
응급실 선생님은 괜히 고생을 사서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체온계와 나를 번갈아 보면 말했다.
독감 치료를 위한 수액을 맞고 새벽 무렵 응급실을 나왔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미열과 며칠 동안 이어진 불면 탓에 온몸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몸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해 2~3일쯤 후에는 거의 평소 컨디션으로 돌아온 듯했지만, 아직 목소리는 예전 같지 않게 잠겨있는 듯 잘 나오지 않고 있다.
며칠 동안 앓으며 새삼스럽게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건강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도 가끔은 속도를 조절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되었고,
조급함에 밀려 일정에 끌려다니는 생활을 더는 이어가선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
(이 생각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사실 장담할 수 없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독감이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