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의 이름은...

레옹으로 살기로 했다

by 레옹


나는 2010년에 개명을 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7살까지 불리다가, 유치원 입학한 후로는 호적상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 이름은 늘 불편하고 어색했다.

받침이 거칠고 입에서 굴러가지 않는 이름, 말보다 숨이 먼저 막히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내 어린 시절을 지나 청년이 될 때까지 늘 나를 낯설게 했다.

군생활, 사회생활, 연애까지.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마음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곤 했다.
이건 내가 아닌 것 같아.”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결혼 후,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름에 문제가 있는 걸까?’

이름은 내 첫인상이고, 세상과 나를 잇는 첫 언어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름부터 바꾸자고.

아들 이름을 지을 때 보던 작명책 세 권을 다시 펼쳐 내 이름을 스스로 지었다.
인감도장을 새로 파러 갔을 때, 작명가는 이름을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름이 만들어지고, 말로 태어날 때 그 가치가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름이란 게 결국 나의 언어라는 걸 깨달았다.

이후 나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기 시작했다.
포털 아이디를 새로 만들며 세례명 ‘레오(Leo)’와 이름 끝자를 붙여 ‘leomini’라 입력했다.
그런데 손이 미끄러져 ‘n’을 하나 더 눌렀다.

그렇게 오타로 탄생한 아이디 ‘leonmini’가 새롭게 나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수년 전, 나는 인터넷 라디오에 빠져 있었다.
“해방일지”라는 작은 방송국에서 우연히 닉네임이 같은 ‘미니’라는 진행자를 만났다.

그녀는 방송을 막 시작한 CJ었고, 나는 그저 음악을 들으며 낮 시간을 버티던 청취자였다.
하지만 몇 번의 인사와 신청곡이 오가며 우린 어느새 하루의 대부분을 라디오 방송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이가 됐다.

초보 청취자인 나는 그녀를 따라 타 방송국 여러 채널을 함께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낯선 방송에 우리가 등장하면 다른 청취자들은 "둘이 뭔 관계냐? 궁금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내게 자기 손을 꼭 붙잡으라고 했다.

(심쿵거리게...)

그녀의 방송엔 늘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시간만큼은 세상이 멈춘 듯했다.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방송 중 불쾌한 청취자가 등장했다.
나는 스텝 자격으로 채팅창을 지키고 있었지만 강퇴 권한은 없었다.
분위기가 싸해지고, 그녀의 목소리엔 미묘한 떨림이 묻어났다.


방송이 끝난 뒤, 나는 그녀에게 쪽지를 보냈다.

“그런 일이 또 생기면, 괜한 오해를 받더라도 당신 옆에 있어드리고 싶어요.”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도 서툴렀지만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데도 각자의 해석은 다를 것이다.

녀가 다치지 않길 바랐다.

그녀는 한참 후 답장을 보내왔다.


“괜찮아요. 오히려 고마워요. 방송이란 게 원래 이런저런 일도 있는 거죠.

누군가 대신 싸워주려는 마음, 그거면 충분해요. 하지만 전, 제 자리에서 부딪혀볼래요.”


그녀의 말은 단단했고, 그 안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하려는 용기가 있었다.


그즈음 나와 같은 네 글자 닉네임을 가진 어느 CJ가 내게 제안을 해 왔다.


"닉을 바꿔봐요. 모두가 부르는 이름으로요. 난 레옹이 좋던데..."


며칠 후 나는 닉네임을 레옹으로 바꿨다.

레옹으로 바뀐 후 그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레옹"이 "레옹미니"보다 더 친근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후로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스텝으로 참여했던 방송국은 문을 닫게되고 우리는 각자 개인방송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갔다.


그녀는 여전히 방송을 이어가고, 나는 지금 내 자리에서 음악을 만든다.
그 시절의 인연은 그렇게 흘러갔지만, '레옹'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정민'이 아닌 ‘레옹’이라 부른다.
내 심장도, 가게 간판도, 배달 앱에도, 옆 가게 김밥집 사장님의 연락처에도 나는, ‘레옹’으로 저장되어 있다.

‘정민’은 내 과거의 이름이 되었고,
‘레옹’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난,

시간을 얹은 기다림 위에 00을 굽는다.

정민이 아닌 레옹으로...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