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시작하는 임신. 설렘과 행복감으로 시작하는 임신은 명확한 저 두 줄에 비해 복잡하고 어려운 여정입니다.
점점 임신이 힘든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끊기게 될 경력이 걱정되어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결혼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자연임신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결혼 후 내 집 마련이나 다른 이유들로 인해 임신이 늦어지다가 막상 아이를 가지려고 할 때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는 부부들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임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배가 나온 임신부의 모습, 입덧, 출산의 두려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되는 게 임신입니다. 저도 열 달의 과정을 보내면서 상상도 못 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기서 상상도 못 했다는 건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말이 아닙니다.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남자에게 군대 이야기가 있다면 여자에게는 임신과 출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자들끼리 모여 임신과 출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각자 겪었던 일이 어찌나 파란만장했는지. 그 모든 것을 지나고 엄마가 된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임신의 첫 관문은 입덧입니다. 사람마다 입덧의 양상은 다릅니다. 속설로 친정 엄마의 입덧 양상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먹어야 속이 편한 입덧,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입덧, 역류성식도염으로 속이 쓰린 입덧. 입덧이 심한 경우 수액까지 맞아야 할 정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겪은 입덧은 술을 엄청 먹은 후의 숙취 느낌이었습니다. 울렁거리고 머리 아프고 속도 쓰리고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입덧인 상태로 계속 살라고 하면 그냥 죽을 거라고 남편에게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유독 먹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맛도 느껴지지도 않고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이 기분이 정말 싫었습니다. 입덧이 심할수록 아이가 건강하다는 주변 위로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죠.
입덧이 지나가고 나면 조금 편안한 시기가 옵니다. 안정기에 접어들고 배도 예쁘게 나옵니다. 그러나 배가 나오면서부터 작은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아! 누워서 편하게 자고 싶다.”
“엎드려서 자고 싶다.”
내가 원하는 자세로 편하게 잘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임신 전에는 몰랐습니다. 배가 나오게 되면 주로 옆으로 누워 잘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보고 누우면 숨이 막히고 엎드리는 자세는 아예 되지 않습니다. 철퍼덕 침대에 눕지도 못합니다. 항상 조심스레 몸가짐을 해야 했습니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동작도 점점 버거워지고 그냥 내 몸 가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옆으로 자는 것도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온몸이 가려웠습니다. 특히 손가락 사이사이가 가려워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죠. 임신 소양증이었습니다. 임신 중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함께 면역력도 약해지면서 예상치 못한 피부 질환이 찾아온 것입니다. 임신 중에 감기라도 걸리면 약도 제대로 못 쓰고 아이를 위해 견뎌야 합니다. 너무 심한 경우 약을 먹기도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의 임신 과정 중 가장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자궁경부수술입니다. 자궁경부라는 신체 부위도 임신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신체 부위가 힘이 없어서 아이가 조산될 위험이 높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제가 받은 병명은 자궁경부무력증이었습니다.
자궁경부무력증으로 인해 자궁경부를 묶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면 마취를 하고 이루어진 수술은 그나마 견딜만했습니다. 하지만 출산 몇 주 전 묶은 실을 풀어야 할 때 저는 출산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이걸 풀어야 아이가 나올 수 있음을 아는데도 도중에 몇 번이나 그만이라고 외쳤는지.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셋째는 꿈도 꾸지 말라고 남편과 시어머님께 이야기할정도로 아팠습니다.
임신 기간 동안 임당검사와 기형아 검사 등을 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야 하고,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변비와 허리 통증 등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육체적 고통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습니다. 내가 행동을 잘못해서 아이가 잘못될까 봐 하는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내가 이렇게 먹어서 아이에게 안 좋으면 어떡하지? 무리하게 직장 다니다가 유산되면 어떡하지? 배가 뭉치는데 괜찮은 걸까? 이런 불안감을 임신 과정 내내 안고 갔습니다.
불안감과 함께 내 편이 없다는 서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나는 커피 못 마시는데, 맥주 못 마시는데 남편만 아주 맛있게 먹고 있으면 그리 얄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배가 나오게 되면 옷을 입는 일도, 허리를 구부려 신발을 신는 이 간단한 동작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자꾸 재촉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밤에 잠 못 이룰 때면 옆에서 코 골고자는 남편이 부럽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들이여! 무엇보다 부인의 불안감을 잘 다독여주고 잘하고 있다고 애쓰고 있다고 하루에 1번은 꼭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겨드랑이는 까매지고 쥐젖과 튼살이 생겨 본인조차 보기 싫은 부인의 몸을 아껴주고 쓰다듬어 주세요. 눈치 없이 본인만 맛있게 먹지 말고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을 잘 챙겨주길 바랍니다. (임신 때 서럽게 하면 평생 갑니다.)
열 달 동안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시간을 지나오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일찍 출산하기도 합니다. 너무 슬프게도 아이가 유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임신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겁주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아이의 우렁찬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때의 뭉클함, 내 뱃속에서 움직이는 첫 태동의 순간, 점점 배가 불러가는 인체의 신비로움도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부분이죠.
이 모든 과정을 지나왔기에 내 아이의 소중함이 더 커졌고, 엄마로서 필요한 자제력과 인내심, 책임감이 길러졌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나를 엄마로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남성의 경우 아이를 낳은 후로도 한참 동안은 아빠가 된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지나왔기에 바로 엄마가 될 수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