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딸아이 입에서 벌써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제 엄마의 돌봄이 간섭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됐나 봅니다. 치사해서 관심을 끄려고 해도 자꾸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됩니다. 도와줄 것은 없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상처받지는 않았는지.
아이만큼 내 관심을 가져가는 존재도 없습니다. 저는 세상에 관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오래가는 편은 아니었죠. 발리댄스도 조금, 클라이밍도 조금, 펜드로잉도 조금. 조금 하다가 손 뗀 게 한 두 개가 아닙니다. 관심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만큼은 지속적으로 관심이 생깁니다. 내 노력과 시간, 에너지가 이만큼 들어간 게 없으니까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내 시간과 나 자신도 없어질 만큼 관심을 가져야 했습니다. 저렇게 이야기하는 딸을 보면'잘 크고 있구나.' 생각하다가도 열이 뻗치는 게 솔직한 제마음입니다. 지나간 내 젊은 날이 떠올라서 말이죠.
요즘 제 손을 보면 엄마의 손을 닮아갑니다. 손마디가 굵어져 가고 굳은살 모양도 딱 우리 엄마 손입니다. 젊은 시절 엄마는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걸 버티고 사셨을까 싶을 정도로요.
가정적이지 않으셨던 아빠로 인해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린 저와 동생을 자물쇠로 잠근 방에 두고 일을 나간 적도 있다고 합니다. 엄마가 되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갇혀 있었던 우리보다 두고 가야만 했던 엄마의 마음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두 아이를 두고 가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어린 새끼들 걱정에 일이 손에 잡히기나 했을까요.
사진 속에 있는 엄마의 싱그럽고 날씬하고 예뻤던 시절. 이제는 너무나 잘 압니다. 엄마의 젊은 시절이 거름이 되어 우리가 이렇게 잘 자랐다는 것을. 남편은 챙기지 않았던 가정을 지키느라 고군분투하셨다는 것을. 그렇게 엄마는 인생의 젊은 날을 바쳐 우리를 돌보았습니다.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엄마가 된 나 자신도 생각나서요.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엄마
꽃 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김진호 <가족사진>-
엄마는 우리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주셨습니다. 엄마의 돌봄을 받아 저는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절 돌본 것처럼 이제는 제가 엄마가 되어 딸을 돌보고 있네요.
요리도 뚝딱, 살림도 뚝딱, 뭐든 야무졌던 엄마처럼은 못하지만 엄마에게 받은 돌봄을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엄마 마음도 몰라주는 딸의 한 마디가 마음을 콕콕 찌르지만 언젠가 딸도 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