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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Jun 21. 2021

쉽게 말 할 수 없는 공정

 공정과 공평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 보면 공정(公正)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한다. 공평(公平)은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름으로 풀이 돼 있는데, ‘공정’안에 ‘공평’의 뜻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바로 ‘올바름’이 따라오는데 이는 공평하다고 무조건 올바르지 않음으로 풀이될 수 있다.
      

 공평을 말하는 건 쉽다. 열 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있고 팀이 사업성과를 우수하게 내어 100만원의 성과금을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팀원이 열 명이니 각각 10만원씩 나누면 공평해진다. 공평을 말할 땐 별다른 판단은 필요하지 않다. 수학공식처럼 딱 떨어지게 맞추면 그만이다.     
 

 하지만 공정으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앞서 말한 팀에 일을 잘 한 팀원과 일을 잘하지 못한 팀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에게 똑같이 10만원씩 ‘공평’하게 나눴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아니 성과 기여도에 따라 보상해야 공평한 것 아닌가요?”     

 공정한 보상     

 2030담론에서 ‘공정’이 주요 키워드가 됐지만 ‘공정’보다는 ‘적정한 보상’에 가깝게 느껴진다. 학교와 사회에서 말하는 대로 공부하고 스펙을 쌓았는데, 좋은 ‘남자’ 좋은 ‘여자’가 되기 위해서 살아왔는데, 성실하고 착실하게 일 했는데, 돌아오는 ‘보상’은 없다. 오히려 너는 잘못 됐다 말하고, 더 노력하라 말한다. 당연히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했던 청년의 노력은 왜 짓밟느냐는 목소리와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징집되어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고 온갖 고생을 다한 청년들이 군가산점 폐지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 각자 각자의 위치대로 험난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또 제대한 청년들에게 군가산점을 부여한다면 사회는 비로써 공정해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공정은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공정으로 나아가는 험난한 과정      


 군가산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군 입대 대상 범주에 속하는 ‘남성’이 군대에서 보내는 2년 가까운 시간은 사회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과 비교하면 큰 손실이 발생한다. 복학 후 그동안 쉬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거나 자격증 취득이나 어학연수 등, 스펙을 쌓거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2년 동안 유예되기 때문에 손해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돈을 모을 수 있을까, 21년 기준 병장 월급 608,500원, 어처구니없는 임금이다. 


 군가산점에 대해서 남자는 군대에서 고생할 동안 여자는 맛집 다니고 연애도 하고 어학연수 다니는데 이게 공평하냐고 말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공정담론에서 빠진 게 있는데 군대를 갈 수 없는 남성,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여성, 취업시장이 아닌 영역을 희망하는 남성이다. 군가산점은 오로지 군을 제대한 남성만이 취업시장에서 수혜를 받을 수 있다.      


 1) 이식수술로 인해 군 면제를 받은 남성 vs 군 제대 후 가산점을 받은 남성

 2) 학비 문제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는 여성 vs 제대 후 지원을 받아 스펙 쌓고 취업 후 군 

   가산점으로 승진도 빠른 청년

 3) 예체능이나 자영업으로 아무런 군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청년 vs 군가산점을 받는 청년      


 위 세 가지 예를 보면서 공평하다는 생각과 공정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렇게 말 할 수 있겠다. 아니 그렇게 예를 들면 어떻게 하냐고. 근데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하니까 저런 예를 드는 거 아니겠냐고 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가 할 말이 있는 것이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남성, 그리고 각자가 처해있는 환경에서 봐야하는 문제다.       


 비정규직 정규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놀 때 놀지 않고, 잠 안 자고, 착실하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스펙을 쌓고, 여러 테스트를 통과해서 겨우 정규직이 됐는데, 놀 때 놀고, 공부도 안 한 사람이 본인과 같은 대우를 받는 다면 불공정하다 이야기 하는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과잉경쟁 시대로 진입했다. 다시 한 번 예를 들어보자.     


 한 국가의 고등학생이 100명이고 명문대학교인 A, 지역대학교인 B, 부실대학교인 C인 학교가 있다(학비는 동일하다 가정한다) A대학의 정원은 30명, B대학의 정원은 30명, C대학의 정원은 40명이며 100명 모두 A 대학을 지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100명 모두 A대학에 갈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정원이 있으니 분별이 필요하다. 분별이 필요하다는 건 등수를 정하고 필수적으로 우열이 가려지며 등급은 매겨진다. 우리는 부여된 상대적 등급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진다. 1등급의 자리는 정해져 있다. 그건 2등급, 3등급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100명 모두 노력한다고 의사나 변호사가 될 수 없다. 사실 100명 모두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누군가 의료와 법조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어야 하며, 누군가는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를 치워야한다. 사회가 작동하는데 있어서 각각의 자리에 사람은 필요하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필수요소이며 존중 받아야한다. 하지만 우리의 직업은 승자와 패자의 논리로 귀천을 가린다.      


 진정한 공정이 되기 위해서는?     


 군가산점이나(군가산점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젠더문제로 포괄할 수 있겠다) 비정규직·정규직 문제 같은 우리 사회에 터지고 있는 공정성에 대한 문제들은 명목상의 공평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문제다. 행동경제학에서 사람은 자신이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 손실을 보는 것을 더 기피한다는 것을 ‘손실회피심리’라 말하고 있다. 즉, 사람은 이득을 보는 것보다 손해를 보지 않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인데, 이를 바꿔 말하면 자신이 강자일 때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자신이 약자일 때 잃게 되는 손실을 더 신경 쓴다는 말이 될 수 있다. 군가산점 문제나 비정규직·정규직 문제 역시, 자신이 더 잃고 손해를 보는 입장에서만 이야기한다. 자신이 강자이고, 이득을 보고, 사회 시스템적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서로 이해할 수 없으니 혐오표현이 남발한다. 혐오표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자의 입장에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뱉어내는 말이 대다수다. 진정한 공정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강자의 입장과 약자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한다. 객관적 판단과 윤리적 판단이 고도로 요하는 측면이다. 이러한 판단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심하고 진득하게 봐야만 겨우 공정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세심하고, 진득한,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파진다.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이 당신을 빼놓지 않도록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공평을 이야기 하는 건 쉽다. 하지만 공정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는 동일한 출발선에 다 같이 있는 것이 공정하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경쟁에서 탈락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회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을 빼놓지 않겠다고 하지만, 서로의 진영에서 인정하는 ‘당신’은 너무도 다르며 무척이나 허망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 ‘당신’이라는 범주에 들기 위해서 무단히도 노력해야 하고 또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정은 무엇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쉽사리 판단하고 공정을 외치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 역시 누군가에는 불공정이 될 수 있는 문제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진정한 공정이란 나에게 있어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합리적일 수 있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는 머리가 복잡해지고 만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함부로 공정을 말하지 말자는 것이다. 성급한 정책도 내놓아서는 안 된다. 공평과 공정을 구별하고 공평이 무조건 옳지 않음을 알아가야 한다.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은 어제와 오늘, 빼놓은 ‘당신’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당신’의 범주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공평은 쉽지만, 공정은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좋은 기회의 평등의 유일한 대안은 냉혹하고 억압적인 결과의 평등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또 다른 대안이 있다.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이다. 그것은 사회의 존경을 받은 일에서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널리 보급된 학습 문화를 공유하고, 동료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숙의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다. - 공정이라는 착각 中 마이크 센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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