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브리핑 퀘스천

못된 습관

by Piper

아마 모든 항공사가 그럴 것이지만,

우리 항공사도 비행 전에 브리핑을 한다.


다른 곳은 다녀보지 않아서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비행 전 슈퍼바이저로부터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질문을 받는다.


만약 그 질문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날은 '오프로드'(비행을 못 하고 집으로 가는 것)가 된다.

한 번 대답을 못해도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질문을 받을 기회는 공식적으로는 총 두 번인 것이다.


그럼 사무장이
“I will get back to you!” (다시 돌아올게)


하고 다른 사람한테 질문을 주고,
다시 나에게 와서 질문 하나를 더 한다.


여기서도 대답을 못한다면? 윽, 생각하기도 싫다.


솔직히 말해, 오프로드를 당해도 상관은 없지만
나는 브리핑 퀘스천의 압박감이 너무너무 싫다.


항상 예상 가능한 질문만 받는 다면야 괜찮지만

갑자기 예상치 못한 습격... 아니 질문을 받으면 정말 당황스럽다.

애초에 긴장을 잘하는 내 성격도 한 몫하고.


출근 전에 일하러 가기 싫은 건 어느 회사나 다 똑같고,

비행기만 타면야 자기 몫 정도는 해낼 수 있는데,
문제는 질문받을 위기에 놓인(?) 긴장감과 무거운 마음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일제히 나를 보며 기대하는 눈빛,

대답을 못했을 때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실망감, 탄식, 안타까움...? (좀 오버했나?)
무엇보다 모르는 질문을 들었을 때의 그 초조함이 정말 싫다.


사실 질문을 틀렸다고 해서 오프로드를 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슈퍼바이저도 결국은 비행을 해야 하니, 크루가 하나 없어지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에 대답을 못해도 힌트를 주며 어떻게든 끌고 가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우리 착한 크루들이 대놓고 알려주기도 한다.

그마저도 잘 안 들려서 문제지만.


내 생각엔 아마 영어라서 더 긴장되는 부분도 큰 것 같다.

한국어로도 잘 안 들리는데, 영어는 오죽할까?


아무튼 그놈의 브리핑 퀘스천.
2년 차가 되니 “어쩌라고” 하는 못된 배포는 생겼지만, 아직도 분명히 긴장되는 부분 중 하나다.


전 비행도 브리핑 퀘스천을 말아먹고 공부를 단디 해야지,
생각하다가도 자포자기하고 '아 몰라' 하고 누워 있는 나.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내가 만약 드라마 주인공이라면 시청자는 공감할까, 비난할까?


아무튼, 그놈의 브리핑 퀘스천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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