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난 하 팀장 언니와의 만남!]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오고 나니 하 팀장 언니에게 전화가 와있었다.
지금 글레이즈 빌에서 나자고. 늦은 저녁이라 돌아다니기가 조금 무서웠지만(그 어떤 나라도 한국보다 치안이 안 좋을 거라는 편견이 있어서) 용기를 내어 언니를 보러 나갔다.
해가 지고 있는 시간대에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서는 또 무섭고 내가 누가 봐도 관광객처럼 보일까 봐 태연하게 앞에 사람이 하는 대로 행동했다. 왜 관광객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했을까? 아무튼, 앞에 사람을 따라 Thank you 외치며 버스를 타고,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았다.
5시 경이였다. 내가 구글 맵으로 검색했었을 땐 도착지까지 40분 거리였었다. 그러나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히는 바람에 1시간 30분을 넘겨 도착했다. 해는 져가는데 만나기로 한 하 팀장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주황빛 하늘빛이 섞인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니 저기 멀리서 피부가 조금 까맣게 탄 하 팀장 언니가 보였다. 너무 반가웠다. 언니의 목소리와 얼굴을 보니 마치 내가 24살로 돌아간듯한 느낌을 받았다. 언니는 나에게 여전히 다가가기 조금 어려운 팀장님으로 보였다. 언니는 내가 사회초년생으로 보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언니와 나는 어제 만난 사이처럼 이야기를 나누었고, 한국인들이 여행하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며 한 공장으로 날 데리러 갔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역시 키가 컸고 나는 쪼그마했다.
호주는 캄포 도마가 참 유명하다고 한다. 나에게 한인 캄포 도마 공장으로 안내해줬다. 이 공장에서 바로 사는 게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보다 더 가격이 싸다고 말해주었다. 최근엔 스카이캐슬에도 협찬을 했었다고 한다. 들어가자마자 향기로운 캄포 나무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나무의 냄새는 아니 그냥 자연의 냄새는 사람을 조금 더 안정시켜주는 것 같다. 캄포 나무가 코알라의 번식지를 위협하는 중이라 벌목이 호주 내에서 장려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상품이 많이 나오는 걸까..? 아무튼, 캄포 나무 도마는 김치 국물이 따로 스며들지 않아서 좋다는 장점들을 잔뜩 들었다. 벌레도 쫓아주고.. 천식에도 좋고.. 그 자리에서 뭔가 홀린 듯이 한국으로 도마 5개를 구매하여 한국으로 배송시켰다.
[왜 호주에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하 팀장 언니랑은 서큘러킬로 향했다.
언니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나에게 호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니는 언제나 책임감이 강했던 사람이었기에, 이야기를 해 주는 동안 나에게 '짧은 시간 내에 호주를 소개해주자' 하는 책임을 가지는 것 같아 보였다. 급해 보이고 다급해 보였다. 나는 몇 번이나 언니에게 "언니 저 괜찮아요. 저 다시 호주 올 수도 있어요. 그냥 저 언니랑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온 것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서큘러키로 도착하자 허리케인 그릴이라는 레스토랑을 갔다.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라고 불리는 곳이라고 하더라. 식욕이 딱히 없었던 때라, 어느 맛집을 가야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좋은 곳을 오게 되어 행복했다. 그리고 한번 더 실감했다. 와 나 정말 호주에 왔구나. 신기해라.
하 팀장 언니와 결혼한 남편분도 같이 합석하여 식사를 시작했다. 나에게 호주에 대해서 궁금한 거나, 워킹홀리데이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고 했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건 너무 많았는데,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았는데 그날 호주에 바로 도착한 날이어서 그런지 너무 피곤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 궁금한 건 있어 질문을 던졌다.
"왜 한국에서 지내는 게 아닌 호주에서 지내고자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요"
"일단, 호주 사회 문화 자체가 평등하다는 게 좋었어요. 그리고 회사 중심적인 것보단, 가족중심적인 문화가 좋았죠. 그래서 사람들이 회사에서 야근하며 종일 일 생각을 하며 지내는 것보다 본인의 일상을 위해 살아가요. 취미생활도 즐기고요. 한국에서 답답했던 부분들이 여기선 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나라도 가보려고 했는데 커피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호주를 선택한 것도 있어요."
말하는 도중 고구마튀김도 나오고, 폭립도 나왔다. 나는 맥주를 마셨고, 종교가 있는 언니 부부는 음료를 마셨다. '
그날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 위의 대화가 제일 기억이 남는다.
호텔에 도착해 잠들기 전, 한국에서 들고 온 무드등을 켜고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아. 그러네.. 내가 다닌 회사들도 회사에 충성하기만을 바랬지.... 그 직원이 가정을 챙기는 거엔 별반 관심이 없었네.. 아휴.. 직원의 가정이나 개인생활을 존중해주기만 해도 참 살만할 텐데..'
오랜만에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있었던 나였지만 혼자 호텔에 누워있고 시드니의 새로운 것들을 보았을 때 함께 감탄할 사람이 없다는 게 문득 외롭게 느껴졌다.
혼자가 더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그렇게 시드니의 첫날이 지났다.
[시드니 한 바퀴 패키지여행]
해가 떴다. 한국에서는 아침이 되면 짹짹 짹짹하면서 참새들의 수다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여기는 무슨 알 수 없는 새의 아아악 아아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목소리가 살짝 굵은 여성이 내는 소린 줄 알았다. 심장이 철렁해서 일어났다.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았지만, 아직은 아마 혼자 여기에 있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다. 아직은 들뜨면서 불안함이 함께 있었나 보다.
여행 온 지 이틀째였을 때는 피곤해서 하루 종일 누워있었고, 근처 마트에 가서 초밥과 라면을 사 먹었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었다. 딱히 특별하지 않은 날은 이였다. 그렇게 하루를 멍하게 보냈다. 사실 그렇게 멍하게 보내고도 싶었다. 난 여행 스타일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아닌 여유 있게 멍 때리는 스타일임을 그 날 알았다.
여행 3일째는 여행사에서 여행 패키지를 예약해서 새벽 6시 30분에 한 호텔 앞으로 갔어야 했다. 실수로 시간을 제대로 보지 못해 10분 남짓하고 호텔 밖을 빠져나와 미친 듯이 달렸다. 한국에서 러닝을 열심히 뛰었던 게 여기서 빛을 바라다니.
그렇게 열심히 뛰어가니 큰 버스 한 대가 보였다. 뭔가 느낌이 저 기사분이 날 기다리는 것 같아 달려가서 말했다.
"저..! 저예요!"
기사 아저씨는 이상한 나의 외침에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들고 있던 체크 리스트를 한 번 보더니
"오! 여기..! 있군요! 이 OO 님 본인 맞으시죠? 들어가세요~!"
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내가 그 많은 여행 인원 중 제일 꼴등이었나 보다. 겨우 숨을 고르며 버스를 탔다. 한 손엔 작은 물통을 들고, 가방 안에는 단백질 셰이크를 넣었었다. (단백질 셰이크를 넣은 이유는 내가 탈이 많이 나는 스타일이라 여행 도중에 급설사를 하지 않을까 하여 최대한 적게 먹고자 들고 탔던 거였다.)
그렇게 겁이 많은 나는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 시드니 시티 한복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차 안에는 혼자 온 사람, 커플, 모녀, 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무슨 사연으로 어떻게 여기에 타게 되었을까? 너무 궁금했다. 누구는 피곤해했고, 누구는 설레어했다. 그리고 누구는 나처럼 들뜸과 설렘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관광가이드분의 호주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달리니 하버브릿지가, 오페라하우스가, 그리고 지어진지 얼마 안 된 레일이 다르게 보였다. 가이드 아저씨는 호주에 어떻게 영국인들이 최초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호주의 양이 몇 마리인지, 소가 몇 마리인지.. 시간이 흘러 중국인들이 어떻게 하여 호주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도 말해주었다. 호주의 역사를 말해주던 가이드 아저씨는 호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말했다.
"호주는 노동자의 나라입니다. 여유롭고 살기가 좋죠.
전 세계에서 최저임금이 제일 높은 나라 이기도합니다. 특히 몇십 년 전엔 말할 것도 없었죠.
저도 그런 호주에 반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남의 나라에서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가이드 아저씨의 말이 끝나고 난 뒤, 한인 김밥가게에 버스를 세워주셨다. 우리가 앞으로 가는 곳에는 생각보다 식당이 많지 않거나, 식당이 있더라도 다른 관광객들이 많이 있으니 기다리기 싫으신 분들은 김밥을 미리 이 한인 가게에서 구매하시길 바란다며 안내해주셨다.
나는 일단 내렸다. 김밥을 먹을 생각보단, 물을 챙겨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10월이었지만 그래도 여행을 하다 보면 목이 마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블루마운틴에 처음 도착했다. 정말 많은 파리도 있었다. 나는 혼자 들고 온 셀카봉으로 유튜버가 된 것처럼 사진을 찍고 부모님께 보낼 영상을 찍곤 했다. 그러고 나서 느꼈다.
호주는 정말 건조한 나라이다.
목이 미친 듯이 말랐다. 필리핀에서 살 때도 이렇게 갈증이 빨리 나진 않았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화장실이 가고 싶을까 봐 조금씩 조금씩 마셨다. 그랬더니 얼마 가지 않아 물의 반통을 비우게 됐다. 모래바람이 계속 불어서 선글라스엔 모래가 살짝 묻었다.
혼자서 당차게 셀카봉을 찍고 있으니,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관광객들이 나를 불러 세워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을 했다. 나는 최대한 예쁘게 찍어주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바닥에 몸을 눕기도 했다. 한 번 사진을 찍어줄 때마다 20장은 연속으로 찍어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같은 버스 타고 온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스몰토크를 하게 되었다.
[가슴을 울리는 칭찬]
그중 내 나이 또래로 보이던 한 여성분과의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그분은 학술제를 위해 다른 나라를 가던 도중 시간이 남아 호주에 들려 여행을 한 분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때 당시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그림 그리는 거 너무 멋져요!!"
"감사합니다 하하.. 저도 학술제 이런 거 한 번가 보고 싶었었는데 전 본인이 더 멋져 보이세요!"
"아니에요! 그래도 그림을 그린다는 게 자유롭고.. 창 의롭고.. 전 그런 분들 너무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아..! 아아 근데 저 하나 뭐 물어봐도 돼요?"
"네 말씀하세요!"
"제 주변에 보통 이렇게 예체능 칭찬해주시는 분들 보면 학업이 좋더라고요..!(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다..)"
".. 하하 맞아요..! 나쁘진 않아요!"
이런 알 수 없는 농담을 하면서 함께 블루마운틴 근처에 있는 포토스폿을 향해 걸어갔다.
수많은 파리떼둘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진을 열심히 함께 찍었다. 나중에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전달해주기로 했지만, 아쉽게도 번호나 카톡 아이디를 주고받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식사시간이 다가오자 갈증이 너무 났다.
아까 들고 온 물을 뜯으려는 찰나, 옆에 계신 여성분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목 안 마르세요?"
"네.. 조금 마르네요.. 물 들고 올걸 그랬나 봐요"
"저 마시던 물 있는데 드시겠어요?"
"아뇨! 드세요 드세요! 전 괜찮아요"
"아, 저는 별로 목이 안 말라서요...! 사양 말고 다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남은 물을 다 마시고, 페트병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 그분은 목을 좀 축였는지, 나에게 넌지시 말을 다시 걸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뭐하실 거예요?"
"글쎄요.. 저는 호주에 다시 워킹홀리데이라도 오고 싶어요.."
"에고...... 아쉬워라..."
"오잉 뭐가요..?"
그 여성분은 살짝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뗐다
"이렇게 좋으신 분이 한국에 없다는 게 아쉬워요.."
세상에 오늘 우리 처음 봤는데, 같이 대화한지 2시간도 안지났고 선글라스를 쓰고있어서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데!! 정말 오랜만에 받아본 과찬이라 기분이 하늘까지 올라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에 빈말이라고 한들 너무나도 기분좋은 말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네? 세상에! 어떻게 말을 그렇게 예쁘게 하세요..! 감사해요!"
"아니에요 저 진짜 성격 더러운데요?! 친구들이 저 진짜 나쁘다고 해요!"
나의 고마움을 들은 여성분은 살짝 놀란것같았다.
아, 내 인간관계랑 삶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우리 팀을 태우러 온 버스가 도착하여 다 같이 우루르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살면서 이런 좋은 칭찬을 몇 번이나 들어볼까
메아리처럼 퍼지던 긍정적인 그 말에 온 몸이 깨끗한 물로 청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오늘 처음 만나서 처음 말을 한 사람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되다니.
오늘을 잊지 말아야지. 뭔가 힘든 일이 있어도 이 말 한마디면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꼭 해야지!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예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블루마운틴을 다녀오고 블랙타운을 지나가 소나기가 쏟아지는 동물원을 다녀온 후 다시 시티로 돌아왔다.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 날은 오랜만에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을 채 잠이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