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아트리포트

48호_혜경씨

by 윤혜경
%EC%8A%A4%ED%81%AC%EB%A6%B0%EC%83%B7_2025-07-17_185907.png?type=w773

참과 거짓 2


한여름에도 서늘한 곳이 장례식장이다.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은 것은 오늘 오후였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아랫집 아저씨였다. 우리 집은 이층이었는데 계단이 많은 양옥집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세 들어 살았고 아저씨네가 주인집이었다. 어릴 땐 몰랐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셋방살이인지. 엄마나 아빠는 꼭 집을 돌아서 뒤쪽 계단을 올라 베란다로 집에 들어갔는데 나랑 오빠는 현관문으로 들어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집에 갔다. 아저씨가 현관문을 항상 열어주셨다. 나와 엄마가 시장에서 함께 돌아오는 날은 나도 집을 빙 돌아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철제 계단이었고 손잡이는 녹슬었고 매우 가팔라서 무서웠다.


우리 그냥 현관문으로 들어가면 안 돼?

오늘만 여기로 가자. 엄마랑 손잡고.


거의 울다시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 마당이 나오고 그 마당에 있는 기다란 화분이 두 개 있는 곳을 지나면 베란다 문이 나왔다. 기다란 화분에는 파가 심어져 있었다.


거기 파 좀 뽑아와.

오빠 보고 뽑으라고 해.

한 개만 부탁해~


손에 흙이 묻는 것이 싫어서 파를 뽑는 것이 싫었다. 뽑아도 뽑아도 또 새로 나는 것이 싫었다. 매운맛도 싫었고 색깔도 싫었다. 투덜대며 뽑고 있는데 옆집 언니가 보였다. 담장이 낮아 옆집 마당이 훤히 보였는데 언니는 항상 나무 아래에서 웃는 얼굴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상대방은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꼭 누구랑 얘기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엄마가 어깨를 두드리며 귓속말을 한다.


그렇게 쳐다보면 언니한테 실례야.

인사하고 어서 들어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언니도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에게 파를 건네주고 손과 발을 씻었다. 밖에서 들어와 손과 발을 씻고 나서야 만화책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집의 룰이다. 다른 집에 가서도 발을 씻으려고 해서 엄마가 당황한 적이 많았다. 엄마는 귓속말로


다른 집에서는 손만 씻어도 되는 거야. 그리고 화장실 써도 되는지 정중하게 물어보고. 먼저.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 되고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는 버릇이 생겼고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발을 벗고 발뒤꿈치를 들고 봉투를 건네는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목례만 하고 이름을 적었다. 세로로 이름을 적는 것이 오랜만이라 줄이 흐트러져 신경이 쓰였다. 저쪽으로 가자는 오빠의 눈빛에 뒤꿈치를 들고 따라가 옆에 섰다. 향에 불을 붙이고 향로에 꽂은 후 절을 하려고 하는데 오빠는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아. 절을 하는 것이 아니었나. 나는 절을 해야 하나. 어떡하지. 하는 동안 오빠는 이미 몸을 돌려 상주와 절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상주와는 절을 하는 거구나 엉거주춤 따라 절을 했다. 엎드린 등이 서늘했다. 어떤 말도 나누지 못한 채 상에 앉았다. 사이다를 마시며 둘러보니 누군가 휴대폰을 충전하며 울고 있었다. 고인과 어떤 사이일까. 왜 울고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자세히 보니 그 언니였다. 옆집 나무 아래서 항상 웃고 있던 언니. 지금은 소리 없이 계속 눈물을 흘리는 언니 옆으로 가려고 하자 오빠가 소매를 잡았다. 왜?라고 눈으로 묻자 고개를 흔들며 사이다 잔을 내 앞으로 밀었다. 다시 앉으며 왜?라고 다시 눈으로 묻자


이거나 마셔. 울고 있는 사람한테 가는 거 아니야.

아니 그 언니야. 옆집 언니. 기억 안 나?

기억나.

가서 인사하려고.

그냥 앉아.


실례가 되는 행동인 건가. 언니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사이다를 마시다가 아저씨 영정사진을 보았다. 아저씨는 웃고 계셨다. 저 사진을 누가 찍어줬더라. 아. 내가 찍었나? 다시 가까이 가서 보려고 나도 모르게 일어섰다. 오빠가 또 소매를 붙잡았다.


왜 그래. 앉아 좀.

아니 저 사진 내가 찍은 거 같아서 가까이 가서 보려고.

영정사진을 누가 그렇게 가까이 가서 보냐. 실례라고.


내가 찍은 사진이 분명하다. 아저씨가 찍어달라고 몰래 오만 원도 주셨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입구가 시끄러웠다. 누군가 오신 모양이다.


아이고. 어떻게 온 거야. 내일이나 올 줄 알았더니.


아저씨의 쌍둥이 여동생들이었다. 가끔 집에 놀러 오신 것을 본 적이 있다. 아까 인사했는데 또 인사해야 해서 당황했던 쌍둥이 이모들.


이모라고 불러. 나는 여기 점이 있어. 이걸로 구별해 봐. 그럼 쉬워.

쟤는 없어. 너한테만 알려줄게. 사실 오빠도 몰라.


쌍둥이 이모 중 언니분이 알려준 비밀 때문에 하루 종일 배가 아팠다. 아저씨도 모르는 비밀을 왜 나한테 알려줘서 곤란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 쌍둥이 이모들을 구별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몇 년 만이야. 오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만나게 되네.

미안해요. 진작에 왔어야 하는데.

아니야. 이렇게라도 만나니 얼마나 좋아.


아저씨 영정사진 앞에서 쌍둥이 이모와 삼촌이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별 내용은 없었다. 미국은 지금 몇 시냐. 하는 그런 얘기였다. 갑자기 쌍둥이 이모 중 언니분이 나에게 왔다.

너 나 기억해?

그럼요. 이모.


하면서 귀 뒤쪽을 만지작 하자 이모가 웃었다.


기억하는구나. 우리 사진 찍어줘. 오빠랑 우리.

여기서요? 장례식장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나요?

뭐 어때. 나 오빠 진짜 오랜만에 만나는 거란 말이야. 돌아가셨지만.


아닌 것 같으면서도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장례식장 가면서 카메라를 가져간다고 면박을 주던 오빠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눈짓으로 잘 찍어라 하면서.


여기 이렇게 서면 되겠니?

네 사진을 중심으로 이렇게... 서보세요. 자 찍을게요

웃어야 되나.

네 뭐 편하게

그럼 우리 웃자 손잡고


쌍둥이 이모 두 명과 삼촌이 손을 잡고 아저씨 영정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처음으로 찍어본다는 가족사진. 이제야 찍어보는 가족사진.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사실이 아닐까요


참 ☐

거짓 ☐


**십대여자아이와 피프티피프티 진행상황


지난 주말 H를 만나기로 했다.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비가 온다고 해서 만나지 못했다. 촬영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이미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만나려면 만날 수 있었으나 다음주로 만남을 미루기로 했다. 대신 카톡으로 질문을 몇 개 보내보기로 했다. 대답을 곧 준다고 했는데 고민중인지 아직 받지는 못했다.


흑백필름을 사서 피프티피프티를 생각하며 사진을 몇장 찍었다. 예전에 찍었던 필름들과 함께 현상소로 택배를 보냈다. 스캔을 해서 받아보고 좋은 이미지가 있으면 인화를 해보려고 했다. 이틀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홈페이지에도 글을 남기고 메시지도 남겨보았다. 이틀동안 정기휴일이라고 했다. 미안했다. 제대로 정보를 보지 못했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사진관에 맡기고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었는데 이틀 기다렸다고 동동거리다니. 나를 반성했다. 내가 찍은 이미지이지만 어떤 이미지가 어떻게 찍혔을까 기대도 된다.


효정 씨가 혜경 씨에게 질문합니다.


1> 지난번 ‘참과 거짓’ 글에 대한 사람들 후기가 좋더라고요. 저도 재밌게 읽었고요. 그런데 <참과 거짓>이라는 틀이 혜경 작가가 글을 쓰는데 어떤 자유를 주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는데요. 본인 생각은 어떤가요?


보통 일기를 쓰거나 느낀 것을 쓰거나 하면 좋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써보려고 시도를 많이 해봤거든요. 그런데 사실을 쓰는 일이 굉장히 괴롭고 싫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실을 바탕으로 저의 상상력을 더해서 쓰면 기분이 좋아져서 언젠가부터 그렇게 써보고 있어요.


2> 필름 사진 이미지들이 기대되는데요. 주로 어떤 것들을 찍었는지 궁금해요.


사람들을 찍거나 사람들의 손을 찍었어요. 그리고 처음 봤을 때 이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이미지들 찍고 싶어서 시도해 봤는데 모르겠네요. 잘 찍혔을지요.


3> 참과 거짓 글에서 사실은 몇 프로인지 ㅎㅎ 어느 부분이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지어진 이야기인지 궁금해요. 알려줄 수 있는 부분이 있나요?


최근에 장례식장을 다녀온 것은 사실이에요. 장례식장 관련한 이야기는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4> 혜경 작가 개인 블로그에 <참과 거짓> 같은 짧은 글들을 연재하는 걸로 아는데 그 글의 목적이나 방향이 있을까요?


1번 질문에 답한 것처럼 사실을 쓰다 보면 기분이 더 안 좋아져서 이런 방식으로 쓰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연결이 되지 않을 때도 많아요. 그런데 이것을 잘 연결해서 하나의 완성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주간아트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