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씨의 이야기
마음의 생산성
앤트러사이트 2층, 통창을 통해 나무와 햇빛을 바라볼 수 있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느 카페와 달리 공간을 채우는 음악 소리가 없는 곳이다. 조용한 가운데 기계 소리, 조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발소리가 만드는 생활 소음이 실제 고요보다 더 의식적인(ritual) 고요한 아침 공간을 만들어 낸다. 커피값이 제법 비싼 편이지만 배경음악 없이 조용한 엔트러사이트 2층에 앉아 창을 보며 며칠을 보냈다. 책을 읽지도, 스케치하지도 않고, 호사스럽게 비어 있는 시간을 지켰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눈에 보이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시간을 허비했다고 느꼈다. 한데, 오늘 그리고 지난 월요일 아침, 이렇게 가만히 창가에서 흔들리는 나뭇잎, 나뭇잎 위에 앉은 햇빛과 날아다니는 잠자리, 벌 그리고 바람이 움직이는 걸 바라보며 내면이 여유롭게 기지개를 켤 수 있는 시간 또한 생산적이지 않나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근래에 생겨난 생각과 감정이 그리고이미지들이 처리되고 변환되는 과정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때 이뤄지지 않나? 생각됐다. 마음이 처리해야 하는 것들을 처리할 수 있는 빈 시간과 물리적 열린 공간이 한 번씩 필요한 것 같다. 덕분에 한동안 내면에서 엉켜 다니던 생각과 감정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삶, 여전히 삶.
얼마 전부터 노트북 드라이버에 저장용량이 부족하다는 알람이 떠서 구글 드라이브에 이 큰 파일들을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구글 드라이브도 저장 용량이 넉넉지 않아서 필요 없는 파일들을 지워내기 시작 했다. 10년은 더 된 사용하지 않는 옛 파일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리하는 김에 대용량 메일도 함께 지우기 시작했다. 선택과 삭제 버튼을 단순 반복 클릭하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파일과 메일을 지워 나갔다. 그러다 우연한 클릭으로 한 메일이 열려 읽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각별하게 지낸 옛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아, 이런 메일이 있었구나!] 힐끔 봤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 있어서
[이건 지우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손가락이 이것까지 쓸어 클릭해 버렸다.
[영구삭제에 동의하시겠습니까? 네!] 하고 체크했다. 당연히 휴지통에도 없고 서버에서 바로 지워진다고 한다.
[아차…] 아쉽다고 생각했다가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메일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마음이 분주했다. 그 후 이런저런 시도 끝에 결국 영구삭제 메일을 복구시켰고, 다시 마음에 평화가 찾아 왔다.
며칠 전부터 그리고 오전 내내 지웠던 파일들이 속속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달라진 건 내가 그 메일을 열어보게 된 것과 메일을 살리는 과정에서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하게 된 것이다. 메일 속에는 이 친구가 나를 보는 시선이 담겨있었다. 때로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에도
[그게 나라는 사람이려니]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래도, 다 괜찮다] 하는 시선이 메일을 읽는 순간 떠올랐고, 동시에 그때의 내 모습이 함께 보였다. 그러고는 뭔가 든든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안정된 기분? 드디어 어떤 편한 의자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안도감과 함께. 언젠가부터 내가 그저 나인 척 애쓰며 살다가 그걸 읽는 순간 진짜 나를 다시 발견한 기분이라고 할까?
[아, 그래. 나 그냥 나라도 괜찮았지? 괜찮지] 하는 믿음이 한순간 문을 활짝 열고 나온것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계기로 연락이 닿은 친구와 안부 인사를 나누고 7월 내내 나를 사로잡은 삶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삶이 무엇이지. 다를 것 없는 하루들로 이어진 시간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겨나고, 그로인해 잊고 있던 걸 기억하게 하고, 생각해 본 적 없던 걸 생각하게 만드는, 이 삶이라는 것은 마치 내게 가르침을 주는 것도 같고, 때때로 보물을 찾아내는 보물섬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의 계기로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버렸다. 만난 지 10년도 더 지난 옛 친구에게 전하는 말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이전에는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마음에 생겨난 생각들을 전했다. 그 이야기를 전하라고 삶이 이런 계기를 만들어 낸 건지, 또 진짜 내 모습을 다시 만나라고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알 수는 없으나, 삶은 살아있는 어떤 에너지처럼 느껴졌다. 물론 여전히 이 삶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다만 매 순간의 나와 호응하는 신비롭고 거대한 어떤 것이라는 정도밖에.
현재의 내가 부재의 나를 발견한다, 120x160cm, oil on canvas, 2009
예술학부 졸업 작품인데, 드라이브 정리 때 발견했다. 오랜 메일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고 이 그림을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게다가 나의 과거가 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로웠다. 많은 철학자의 말로 시간은 선형적이 아니라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스케치
별로 진도는 나가지 못했지만, Pan(판)과 사할(Sahar)의 얼굴을 스케치하고 있다. 9월이면 12월 전시를 위해 가차 없이 페인팅을 시작해야 하므로 7, 8월은 가벼운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며 작업 하고 싶었다. 일주일에 하루는 꼭 집에서 빈둥거리며쉬자는 계획도 지난주부터 지키고 있다. 덕분에 주말이 다가와도 덜 피곤하다. 무더운 공기와 달콤한 여름 과일 속에서, 제각각 다른 초록색을 드러내는 흘러넘치는 생생한 여름이라는 시간에서 나는 여전히 삶에 관한 질문을 마음에 품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름 이미지는 더 진행하지 못할 것 같더니 미련이 또 남아 끄적거린다. 그래, 여름방학이라고 생각하고 또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고 생각하며 화면 가득 다른 초록 잎들을 언젠가 그려보고 싶어 색연필로 스케치를 시작했다. 스케치는 7월 초에 방문했던 경북 의성 한마을에서 본 풍경이다.
스케치를 위해 찍어둔 밤 식물들
새로운 인물화 작업 구상
수요일에 새로운 영어 모임에 가게 되었다. 회원이 된 지 3개월이 가까워지도록 참여를 못 하다가 3개월 동안 참여가 없으면 강퇴라는 말에 억지로 갔더랬다. 요즘의 나는 나답지 않게 사람 만나는 게 피로한 탓에 마음을 달래며 겨우 나갔다. 모임에 두 번 이어 참석해 보니 사람들이 꽤 괜찮았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문득 영어 모임 회원 중 몇 명을 인물 모델로 제안해 볼까 싶었다. 물론 이름도 모르고 모임에서 사용하는 닉네임만 알뿐 아무것도 모르는 관계다. 그런데 작년 인물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내면이 외면으로 결국 드러남을 느꼈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켜낸 그들이 었기에 그 얼굴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결과에 닿았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반대로 영어 모임에서 새로이 알게 된 사람들의 내적 매력은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외부로 드러난 얼굴을 그리며 그들의 마음과 정신의 형태를 짐작하며 작업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자력을 가진 매력적인 얼굴이 몇 봤는데, 눈의 생김새나 눈동자의 리듬 그리고 말할 때 손가락의 움직임 등을 보며 그들의 내면을 짐작해 봤다. 분명히 어떤 내면의 자질이 그들의 얼굴에서 내 눈길을 끄는 힘을 만들어 냈을 테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순간 새로운 창작 욕구가 피어올랐다. 이 인물화 작업은 잘 아는 사람이 되기 전에 해야 하니, 다음 모임 참석 후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몇몇 분에게 의사를 여쭤야겠다 .
스케치를 위해 찍어둔 여름 이미지
혜경 씨가 효정 씨에게 질문합니다.
1> 나를 잘 아는 어떤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요. 언급된 친구 이외에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있을까요? 그 사람으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시나요?
혜경 씨도 물론 저를 잘 아는 사람이겠지만 의식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어릴 때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 저를 더 잘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몇몇 얼굴들이 떠오르는데, 언급한 옛 친구만큼의 안정감을 주지는 않는 것 같네요.
2> 저도 얼마 전 숲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을 경험했어요. 정말 좋더라고요. 음악도 때로는 소음이 되죠. 지금 그런 순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으로 최근에 내면적으로도 외면적으로도 제 삶에 인풋(input)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버퍼링 같은 게 걸린 것 같아요. 마음속에서요.
3> 12월 전시를 위한 페인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새로운 것을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리포트에서 예전에 보였던 것 같은데 내면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스케치한 게 있어요. 그걸 페인팅으로 옮겨보려고요. 우리의 내면 의식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것도 추상화로 그려볼 생각입니다.
4> 잘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그린다니 정말 새로운 시도 같아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생각해 보면 처음 있는 일은 아닌데, 예전에도 토지문화관 같은 곳에 입주했을 때 1~2주 함께 보낸 잘 모르는 작가님들 얼굴을 그리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얼굴을 그리는 것이 당시 작업과 동떨어져 본격적으로 작업하진 못했고 그들의 의사도 물어보지 못했었죠. 다만 혼자 스케치북에 기억을 더듬어 그려 본 적은 있었어요. 만일 이번에 이 인물화 작업을 하게 된다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외형의 얼굴을 보면서 제가 느끼며 짐작하게 될 이들의 내면 형태를 글로도 기록하고 싶어요. 조금 관상학이 떠오르긴 하지만, [신체와 영혼은 서로서로의 겪음에 대한 원인이 된다]라는 책에서 발견한 문장도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