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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리 Aug 05. 2022

가족이 될 결심

유기견을 입양했습니다

바둑이와 똑 닮은 유기견의 이름은 ‘해리’였다. 몸집은 바둑이보다 조금 컸지만 털 색깔이며 귀 모양, 얼굴 생김새 등등, 마치 바둑이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해리를 품에 안은 채 인터뷰를 하고, 산책 봉사를 하면서 나와 동생은 점점 '해'며들었다. 반면 해리는 생전 처음 보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을 임시 보호해주던 단체 운영자 바라기였다. 우리 품에 안겨 있어도 눈으로는 계속 엄마를 찾았다. 그런 아기 같은 모습까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단단히 콩깍지가 씌었다.


첫 만남 때 우리. 이때만 해도 정말 가족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와 동생은 개를 좋아하고, 늘 키우고도 싶었지만 스스로 반려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바둑이를 교통사고로 보낸 건 우리의 부주의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해리를 본 순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마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견생이 돌고 돌아, 저 안에 정말 바둑이의 영혼이 들어있기라도 한 건 아닐까? 집에 돌아온 후에도 해리의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두 팔로 안았을 때, 들숨과 날숨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작고 귀여운 몸통이 자꾸만 떠올랐다.


우리는 해리를 입양하기로 했다. 살고 있던 원룸이 좁아 투룸으로 이사를 가려던 참이었고,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강아지  마리는 책임질  있을 정도였다. 이삿날까지 2개월 이상의 간격이 있어 바로 데려올 수는 없었지만 해리를 보호해주던 단체의 배려 덕분에 입양을 진행할  있었다. 원래 입양이 결정된 아이는 가족이 빨리 데려갈수록 좋다. 그래야  다른 아이를 구조하고 임시 보호할  있으니까. 이미 가족을 구한 임보견을 2개월 넘게 보호해 준다는  생각보다  엄청난 선의였음을, 이제는 안다.


당시 해리의 입양홍보 사진. 너무 예뻐서 냉큼 입양 가버릴까 봐 걱정했다. 혹시 내 눈에만 예쁜가?


우리는 입양 절차를 밟기 위해 입양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름, 연락처, 주소 등 간단한 인적사항을 시작으로 반려동물 양육과 관련된 질문들이 매우 구체적이고도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 다른 동물이 아니라 왜 이 동물을 입양해야 하나요?

- 동물을 돌볼 주요 책임자는 누구인가요?

- 결혼, 분가, 출산 등으로 가족 구성에 변화가 생기면, 입양한 반려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 가족의 출근 등으로 집에 동물이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은?

- 반려동물은 몇 번의 산책을 하게 됩니까?

- 만약 동물이 실내에서 배변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용납할 수 없는 동물의 행동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예상되는 연간 동물병원 비용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 가정의 월 수입은 어느 정도입니까?

- 나의 반려동물이 유기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하시겠습니까?

- 당신은 이 동물의 평생을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지금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이렇게나 많다. 입양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반려동물과의 삶은 정말 엄청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털이 많이 빠져서', '겁이 너무 많아서', '외모가 밉게 변해서', '자녀들이 반려동물에 흥미를 잃어서' 등등의 이유로 반려동물을 유기하고 파양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려동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과거와 현재 반려동물 양육 상태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과거에 함께 살았던 반려동물이 있었는지, 현재 함께 살고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사고로 사망했다면 어떤 사고였는지까지 설명해야 했다. 우리는 바둑이 생각에 눈물을 흘려가며 10년 전 교통사고의 상황과 왜 목줄을 하지 않았었는지, 어떤 반성을 했는지, 해리를 입양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구구절절 답변을 써 내려갔다. 이 내용 때문에 입양 신청이 반려될 수도 있기에 '다신 안 그러겠다'는 진심 어린 반성문을 쓴 것이다.


다행히 입양 신청은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공식적인 해리의 가족이 되었고, 고심 끝에 우리 자매 이름의 공통 이니셜 'J'를 따서 '제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새로 이사 갈 집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한 달에 한 번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만났던 월드컵경기장 반려견 놀이터에서.


입양이 확정되고 9월에 다시 만난 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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