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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은 Mar 11. 2019

이불 보따리

해마다 개학을 앞둔 즈음이면 생각난다. 40여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하루 기억은 하나하나 올올이 생생하다. 대학 입학식을 하루 앞두고 고향에서 상경했다. 5시간 넘게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날은 추웠다. 휙 얼굴에 감기는 찬바람을 느끼며 어머니가 싸 주신 커다란 이불 보따리를 매고 붐비는 광장을 건넜다. 이불은 도착해서 작은 걸로 사겠다 했지만 아들 서울 올라갈 때 보낼 거라고 미리 준비하셨다며 어머니는 한사코 가져가야 한다고 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어색한 느낌도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내 길을 갈 수 있는 힘도 이불 보따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가는 길을 적어온 쪽지를 수시로 확인하며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낯선 시장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골목길을 올랐다. 새벽 기차를 탔지만 오후 3시가 넘어 친척집에 도착하고 짐을 맡길 수 있었다. 이제 머물 하숙집을 구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몇 달 하숙을 하며 서울이 익숙해지면 자취를 하거나 입주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등 적절한 방식을 찾을 계획이었다.

  

대학촌에서 하숙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내일이 개학인데 이제 구하는가’고 나무라듯 묻긴 했지만 하숙집 아주머니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다. 긴장 속에 하루가 지났지만 혼자 상경해서 괜찮은 위치에 비싸지 않은 방을 구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을 즐기며 맡긴 이불 보따리와 책가방을 찾아들고 나왔다. 불빛 가득한 밤, 내 인생 처음 걷는 서울의 밤길이었다.


산속에 자리 잡은 대학촌은 버스 종점이다. 가로등이 적막한 정류장에 내렸다. 버스가 지나친 길을 되돌아 내려와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주변은 어두웠다. 눈에 담았던 낮에 본 느낌은 어둠에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한참을 걸었을 때 잊지 않으려고 기억해 둔 다리가 먼발치에 보였다. 조바심이고 설렘이었을 것이다. 미처 다리에 이르기 전에 차도를 먼저 건넜다. 다 왔다는 안도감이 스멀스멀 피는 순간 둔중한 물체에 발길이 차이고 나는 꽃잎처럼 낙하했다. 


어둠 속의 낙하, 순간 눈앞이 번쩍이고 골반에서 척추로 강한 전기가 흘렀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다음날 조간신문 기사가 스쳐 지나갔다. ‘시골에서 올라온 대학 입학생 복개 공사 중인 개천에 실족하여…..’ 한 동안 그렇게 있었다. 작은 물소리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차가 지나는 소리도 들렸다. 의식을 모으며 상황을 되짚어갔다. 차도 한 편에는 인도가 있었지만 반대편은 인도가 없었고 바로 개천이었는데 전혀 몰랐던 것이다. 천천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상당히 큰 개천이지만 겨울 끝자락에 물길은 작았고 바닥은 크고 작은 돌들이 가득했다. 조금씩 몸을 움직여 보았다. 묵직한 통증이 골반과 다리에서 느껴졌지만 다행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흠 살아 있구나! 


어떻게 개천을 나왔는지 모른다.  밤늦게 하숙을 찾아 문을 두드리니 불을 켜고 나온 아주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젖은 바지와 신발 그리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불 보따리를 매고 선 내 모습이었으니. 자초지종을 듣고 ‘어떻게 그런 일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내가 들고 온 무거운 이불은 다 젖어 쓸 수 없으니 내일 빨아주겠다고 했다. 천만다행을 되뇌던 아주머니는 어서 씻고 몸 좀 눕히라며 당신이 가진 이부자리를 깔아 주셨다. 그날처럼 고맙고 따뜻한 이부자리도 없었을 것이다. 


욱신욱신하는 몸으로 입학식을 마치고 현장을 찾았다.  저곳이구나! 족히 3m가량 되는 높이다. 복개공사 중인 듯 개천 양측에 시멘트 벽을 쌓았고 바깥으로 일방통행 차도가 있었다. 산에서 굴러 내려온 크고 작은 바위가 바닥에는 널려 있었다. 낮에 보면 저렇게 분명한데, 당연히 인도가 있으리란 착각은 바쁜 나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두움 속에서 멀리 보이는 불빛에 설레며 한 발 내딛는 순간 한자 정도 솟아오른 시멘트 벽 끝에 발이 걸리며 그대로 앞으로 날은 것이다. 


저 높이에서 속절없이 떨어졌는데 이렇게 멀쩡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공중을 돌며 이불 보따리를 놓치지 않았고 떨어지는 순간 어떤 형태로든 몸의 충격을 완화해 준 듯했다. 저런 바위 위로 그냥 떨어졌다면 중상을 입었거나 머리가 크게 다쳐 생명도 위태로웠을 현장이었다. 홀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집을 나올 때에도 마음 편치 않았고 상경하는 내내 애물단지처럼 느껴졌던 이불 보따리가 나를 살렸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어쩌면 그 이불 보따리에는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들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시던 어머님의 정성이 가득했을 것이다. 한 올 한 올 이불을 누비며 담아 놓으신 마음이 어둠 속에서 낙하하는 나를 지켜준 것이다. 개학을 준비하는 3월이면 떠오르는 큼지막한 이불 보따리, 어머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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