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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은 Mar 11. 2019

포도원 친구들

대학시절 자취방을 알아보다가 한적한 야산 기슭에 있는 조그만 포도원까지 갔다. 학교에서 걸어 다니기에는 조금 먼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은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인기척을 내니 포도가지를 손보던 할머니 한 분이 구부정한 허리를 펴며 포도밭에서 나오셨다. 쉼 없이 일하실 분을 방해한다는 생각과 그렇게라도 해야 좀 쉬실 것 같은 느낌이 교차하는 자그마한 할머니, 마른 수건에 닦는 그분의 거친 손은 포도 가지와 많이 닮아 있었다.


‘혹시 자취할 만한 방을 구하는데 빈 방 있나요?’  방은 없다고 하신다. 별 기대 없이 돌아서는데 방은 아니지만 안 쓰는 포도 저장 창고가 있는데 관심 있으면 보라고 하셨다. 모퉁이를 돌아 문을 열어 보았다. 온돌이 아닌 시멘트 바닥이지만 방 두세 개는 족히 되는 널찍한 공간이었다. 도배만 다시 하면 살기에 충분할 것 같았는데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공간 같은 친밀함이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잃어가는 감각일 수 있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린 공간과 다양한 교감을 나누며 산다. 짧은 순간에 깊은 교감을 나눈 특징적인 공간으로 그 장소는 내게 남아있다.   


아들 딸과 셋이 사시는 할머니는 자녀들이 자주 오지 않으니 적적하시다며 원하면 마음대로 쓰라고 하셨다. 그래도 무료로 쓰는 것은 도리가 아닐 듯해서 주변 시세의 반값이 채 안 되는 비용으로 나만의 공간을 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부엌으로 쓸 만한 조그만 별실이 별도로 붙어 있어 가스만 들이면 될 것 같았다. 난방이 문제인데 시멘트 바닥에 온돌을 설치하는 것은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아 방 가운데에 연탄난로를 설치하기로 했다. 마침 안 쓰는 난로가 있어 연통만 사서 설치하고 연탄을 넣으니 오래 머물던 냉기가 사라지며 온기가 피어났다. 내친김에 주변에 있는 자재들을 모아 침상을 만들어 벽면에 고정했다. 군대 막사의 침상과 비슷하였지만 이불을 충분히 깔아 놓으니 포근하기 그만이었다. 내 공간으로 익숙해지기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양해만 구하면 고성방가를 해도 좋을 완벽한 내 공간이 생긴 것이다. 맥주 한 병을 들고 온 어느 날은 기타 줄이 끊어질 듯 맘껏 스윙을 하기도 했다. 송창식, 김정호, 이장희…. 레퍼토리가 다할 때까지.    


두어 달 지난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내 작은 왕국을 보더니 그도 마음에 들어했다. 자기도 자취를 할까 한다는 이야기에 ‘그럼 같이 지내지 뭐’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내 침상 반대편에 나무 침상을 추가로 설치했다. 제1호 룸메이트가 생긴 것이다. 환영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뚝딱뚝딱 침상을 붙여 만들던 시간이 선명하다. 목수 일은 내게는 어느 정도 친숙한 작업이다. 아버지로부터 야단맞아 가며 곁눈질로 배운 솜씨 아닌가? 아버님은 인근에서 내노라 하는 목수이셨다. 시절이 맞지 않아 그렇지 20여 년만 젊으셨다면 명장 대열에 들어갈 분이라 생각한다. 간단히 함께 만들어 낸 잠자리에 감탄하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친구들이 적지 않은 1호로 인해 수시로 여러 방문객이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1호의 과 후배 하나가 갈 곳이 없다 길래 침상 하나를 추가했다. 룸메이트가 셋이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살지는 않지만 수시로 우리 아지트를 드나드는 준 룸메이트가 넷이 추가되었다. 모두 나와 1호의 친구나 후배들이다. 그렇게 일곱 명의 포도원 친구들이 탄생한 것이다.  언제라도 들려 쉬다가는 펜션같은 공간을 공유하던 친구들이다. 누추하지만 어디보다 정스런 펜션!  


‘포친=포도원 친구들’ 이란 이름으로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곤 한다. 얼마전부터는 함께 여행을 가기로 조금씩 경비도 모으고 있다. 똑 소리 나는 한 후배의 리더십에 통장은 탐스런 포도송이처럼 자라고 있다. 교감을 나눈 친구들, 함께 만들어 가는 추억은 이어져야 한다. 포도 창고에서 젊은 시절 한 때를 보낸 인연이 있어서일까? 모두 자기의 길을 걸어가며 각자의 영역에서 숙성된 향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가끔 만나면 시사성 있는 이슈도 나누지만 그 시절 에피소드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대여섯 명이 난롯불에 라면을 끓여 밤참을 해결하고, 밤새워 포커를 치거나, 내기 바둑과 장기, 싱거운 실수 등 세세한 이야기들을 누군가는 너무나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도 어떤 궁합이 있는지 저마다 선택적으로 다양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 함께 풀어놓으면 다채롭기 그지없다. 35년이 훌쩍 넘었으니 적지 않은 시간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친구들이 있고 언제라도 부르면 풍성히 살아나는 추억이 있다는 것은 내 삶의 마르지 않는 힘이며 소중한 자산이다.


창가에서 봄기운을 빚어내는 숲을 바라본다. 처음 포도원을 찾던 때도 이즈음이었지. 겨울을 녹여낸 따스한 햇살에 자그마한 할머니가 비친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선머슴 같던 총각들이 이제 다들 결혼하고 60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 덩치 큰 1호는 손주도 봤지요.” 살아 계신다면 이제 100세가 조금 넘으셨을 것이다. 콩국수를 좋아하는 걸 아신 후로 당신 드실 양의 곱절은 만들어 가만히 우리에게 나눠 주시던 분, 포도가지를 닮은 할머니의 정겨운 손과 따뜻한 미소가 스친다. 포친을 응원하는 미소다. 명예회원으로 모실 수 있을까? 개발과정에 포도원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지만 마음의 포도원은 봄이면 새롭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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