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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은 Feb 02. 2022

3월 9일 대선, 어떤 리더를 선택해야할까?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누는 네 가지 제언

2022년 3월 9일 20대 대선이다. 대한민국 리더를 선출하는 중요한 일정이다. 어떤 리더를 선택해야 할까? 폭발하는 네거티브 공세와 내로남불식 대응으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어느 때보다 크지만 차분하게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리더십 본질을 생각하는 바른 선택이 필요하다.


급속하고 아주 새롭고 광범위한 변화 속에 있다. 글로벌 초연결 시대에 변화와 변화는 충돌하며 증폭하고 불안정하며 불확실성이 증대한다. 커다란 기회와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이 혼재하는 변혁의 시대다. 국내외에서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보면서 시대적 난제를 풀어갈 대통령의 리더십을 생각한다. ‘중요한 시점의 더 중요한 선택’에서 몇 가지 점을 생각해 본다.


첫째, 비호감 대선이라는 언론의 프레임을 거부한다. 주요 언론에서 ‘비호감 대선’이라고 프레임을 짓는데 이는 무책임하다.  정당의 후보로 정해진 인물들이기에 그중에서 누군가 대통령이 될 텐데 싸잡아 ‘비호감 대선’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가? 여론조사에서 후보의 비호감율을 묻고 40%가 넘기에 ‘비호감 대선’이라고 하는데, 양당 후보 각각 약 40% 수준의 고정층 지지가 있기에 비호감도 또한 유사한 비율로 나오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조사 방식도 1,000여 명에 대한 표본조사인데, 총유권자의 0.000023 비율이니 10만 명 중 두세 명 정도에게 물어본 결과를 가지고 굵직한 제목을 붙여 현혹하고 있다. 후보의 비전이나 리더십 역량에 대한 비교에는 전혀 관심 갖지 않고 긴 시간 폭로와 가십성 보도로 일관하더니 어느 날 주류 언론은 ‘비호감율 40% 혹은 50%”란 숫자로 후보들을 폄하한다. 어떤 의도일까? 진영을 고착시키고 그 골을 깊게 하는 것이며, 중도층 유권자에게는 선거에 대한 혐오감이나 무관심을 조장하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정을 책임질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는 일이다. 선거는 국민이 주권자라는 상징이며 민주주의의 꽃이며 축제다. 유권자로서 흔들리지 말고 깊은 관심으로 후보를 세세히 평가하고 투표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지만 그 영향은 10여 년 이상 아니 국가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다. 변혁의 시대이기에.


둘째, 미래지향적이고 역량 중심으로 선택한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이며 미래다. 주요 국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는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소통하고 설득하며 통합과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인가? 한반도 평화와 국민 삶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가? 그간의 이력이나 에서 유연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인가?

현 정권을 겨냥한 좌충우돌식 날 선 비판과 공격만으로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하는 모습도 있는데, 일시적인 쾌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혀 미래지향적이거나 발전적이지 않다. 상대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통해 선택을 받으려는 것은 정당의 한 속성이겠지만 합리적인 대안이 없는 편협한 시각과 흑백 논리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부를 뿐이다. 과거에 집착하며 더 큰 현재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짧은 쾌감이 지나고 나면 커다란 실망과 다수의 피폐한 삶으로 이어진다. 비판은 과거지향적이지만 삶과 국가 비전은 미래다.

 

주요 후보들 모두 개인적 혹은 가족 관련 약점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곁가지에만 한눈팔지 말고 근본적인 비전이나 국정철학 등 리더십 역량 중심으로 차분하게 판단해야 한다. 후보를 평가한다면 대략 30% 정도는 곁가지, 70%는 줄기라고 할 수 있는 리더십 역량과 능력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곁가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만 함몰되어 있다면 정작 후보 본인의 역량이나 능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투표할 우려가 크다.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도 문제다. 가족이 건강보험 국고 수십억을 사취한 사례는 애써 침묵하고 수십만원의 다른 사례는 대서특필한다.

주요 언론이  균형추 역할을 하며 올바른 여론 형성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진영을 대변하고 주도하는 이익 집단이 되어 있으니 난망할 뿐이다. 유권자 개개인의 깨인 의식과 선택이 더욱 필요하다. 지난 수개월 동안 30%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고 피로감 또한 크다. 의도를 가진 정치 공학적인 시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성한 곁가지만 흔들며 정작 숨기려는 것은 무엇인가? 무능인가,  무속인가,  무지인가? 대선이 불과 30여 일 남은 지금 대통령으로서 리더십 역량인 70%에 더욱 집중해야 할 때다. 정원수 하나를 고를 때에도 큰 줄기가 어떤 모양인지 수형을 먼저 보지 않는가? 시대에 대한 통찰을 통해 단기-중기-장기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국내적으로는 통합을 이끌어 내고 다원화된 국제질서에서 균형외교를 통한 협력을 이끌어낼 일꾼, 그런 수형을 가진 균형 있는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셋째, 혐오와 냉소주의를 경계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나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얼버무리기 쉽다. 냉소적인 결론이다.  “누가 돼도 비슷하지 않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스포츠 팀에서도 감독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은 좋은 예인데, 전임 산투 감독과 후임 콘테 감독 하에서 팀 모습은 전혀 다르다. 2021년 11월 초 시즌 중에 감독이 교체되었는데 승률 40%대로 하위 팀이 승률 65%대의 강팀으로 변하고 있다.

리더의 역할은 어느 팀이나 조직에서도 중요한데 국정을 책임진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갖는 포괄적인 영향력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한 나라는 물론 국제관계나 국제적인 리더십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치열한 네거티브 공세,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 진실을 외면한 반박, 자극적인 보도가 혼탁하다. 민주주의 광장을 오염시키는 것들이다. 그런 혼탁함 속에서 피어나는 냉소주의를 경계한다. 분명 더 나은 선택은 있다.


넷째,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근. 현대 세계사에서 보면 가장 짧은 시간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하는 경제 성장과 함께 민주주의 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전 세계 230여 국가 간 상대적인 비교인데 이제 절대적이고 질적인 면에서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하게 다듬어야 할 때다. 후퇴할 수는 없다. 자칫 방심하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퇴행할 수도 있다.

 

막강한 권력 실세로 있던 검찰총장이 퇴임 직후 졔1야당 대선후보가 되는 기이한 현상은 분명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다. 공적인 권력으로 수사나 기소를 자의적으로 진행하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기에 캐나다, 영국, 호주, 유럽 선진국 등 민주주의가 앞선 나라에서는 금기시하는 일이다. 법을 교묘히 활용한 정치 공작이나 공권력 남용의 오해를 피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가고자 하는 암묵적인 절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절제가 있었다고 보는데, 지난 43대 검찰총장까지 보면 현재 유력 후보 한 사람을 제외하고 대권 행보를 보인 사람은 없었다. 이집트나 브라질 그리고 러시아 등에서 비슷한 위치의 권력기관의 수장이 대권을 지향하거나 막후 실세로 등장했는데 정치적, 사회적 퇴행이며 극심한 혼란은 불가피했다.

 

많은 희생을 통해 이 자리에 선 우리의 민주주의다. 아직 완벽하지 않기에 미래세대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위해서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시켜 글로벌 모델로 만들어 가야 할 변곡점에 서 있다. 우리의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듯이, BTS나 한국영화가 글로벌 문화 지형을 바꾸듯이,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는 민주주의 제도 면에서도 대한민국의 위상은 드러날 수 있다. 그 중대한 기로에 있다.

 

왜 이 글을 쓰는가?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상황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소위 중도에 가깝다. 생명 현상의 특징인 유기적인 연결과 균형, 소통과 항상성을 연구하면서 체득한 것일 수 있는데, 대학에서 동물 연구와 강의 그리고 글로벌 기업에서 경영자의 역할을 원만히 마무리한 힘이기도 하다. 현업을 떠나 이제 새로운 무엇보다는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사회’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인데 ESG리더십 전파와 절전 그리고 플라스틱을 줄이는 실천적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시대적 변화에 대한 감성을 잃지 않으려 할 뿐 어떤 진영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중도는 그리 화려하지 않으며 힘없어 보이지만 내면을 보면 상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존재다. 축구에서 공수를 연결하는 미드필더 역할과 같다. 30-40% 내외의 소위 보수와 진보를 빼고 남는 20-30%의 중도를 가정한다면 중도가 어느 쪽에 힘을 싣는가에 따라 판세가 결정되지 않겠는가? 중도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며 지치지 않고 깨어 있을 때, 바른 선택을 할 때 그 정치와 사회는 건강할 것이다.


1,900년대 이후 세계사에서 보면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등장한 독재자나 인류에 해악을 끼친 혐오의 리더들이 있다. 등장 배경에는 자극적이고 흑백을 가르는 선동적인 언어로 지지층을 공고히 하면서 교묘한 방식으로 일반 대중의 정치 혐오를 유발하는 정치공학적 시도가 있었다. 중도의 무관심이나 피로를 야기해 권력을 취하지만 인권과 민주주의의  퇴행은 값비싼 대가였다.

삶이나 역사에서 가정은 없으며 선택은 돌이킬 수 없다. 지금의 선택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로 진행되는 수많은 난제와 위기 그리고 갈등을 보면 결국 리더십이 중심에 있을 것이다. 분열과 혐오의 리더십이 아닌 역량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생각한다.

 

3년에 걸쳐 진행되는 코로나19로 대부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출구가 멀지 않았다는 느낌도 있지만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듯이 자칫 포기하거나 지칠 수 있다. 글로벌로 외부 시각에서 보면 대한민국만큼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잘 이겨낸 국가도 드물지만 내부 시각에서 보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체감적으로 드러나고 갈등이 증폭할 수 있으며 감정적인 선택의 우려도 있다. 1997년 IMF 극복처럼, 2002년 월드컵처럼 우리의 긍정의 에너지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2022년 3월 대선이 그런 전환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폭발적인 긍정 에너지가 필요하다.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임인년 호랑이의 기상으로 새롭게 국운을 열어갈 우리나라의 일꾼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후보의 리더십역량과 능력기준이다. 빛을 반사하는 위성이 아닌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과 같은, 비전을 나누고 실천하는 리더다. 앵무새 아닌 준비된 리더십 역량으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균형과 통합의 리더십을 구현하는 리더다.


2022년 2월 2일 이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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