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4번 타자죠.
안녕하세요. 드리님. 편지 잘 읽었습니다. 2주마다 한 번씩 반드시 받게 될 편지를 기대하며 이번 주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드리님의 정성 어린 글을 기차 안에서 읽었습니다. 한 번을 쭉 보고, 또다시 처음으로 올라가 천천히 봤습니다. 그렇게 4번 정도 반복해서 정독했지요. 혹시나 오해하지 마시고요. 편지가 이해되지 않아 여러 번 읽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감탄했습니다. 공감을 절로 자아내게 만드는 글이었거든요.
매일매일 ‘그냥’ 하는 걸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잘’ 해내는 수준까지 올리는 걸 권유해 준 이번 글은 마음마저 와닿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니까요. 훗날 전문가가 되었을 때, 맡은 바를 편하게 하더라도 그 일을 ‘전문가’적인 수준만큼 ‘자연스럽게’ 해내는 게 제 인생 목표 중 하나입니다. 이게 드리님이 말하는 것과 맥락이 일치하죠.
저만을 겨냥한 글을 써 내려가는 걸 보니, 드리님이 쓰는 다른 편지들 역시 기대가 됩니다. 확실히 매일 1~2시간씩 두 달 이상 블로그에 글을 쓴 이는 다르네요. 솔직히 저는 그렇게 해낼 자신 없습니다. 스스로와 타협했죠. 일주일에 한 편 글을 쓰자고. 이 결심을 지난 1년간은 어떻게든 해냈습니다. 최소 52편의 글을 썼다는 말이 되겠군요. 그런 저에 비하면 드리님은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드리님의 열정을 보고 저 역시 배워야겠어요.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오늘은 비슷하면서도 살짝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MBC에서 김연아 선수를 인터뷰한 영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죠. 저는 한 예능에서 이 내용을 접했습니다. ‘무슨 생각 하면서 (스트레칭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김연아 선수는 답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냥 하는 거지’의 대표적인 인물이 김연아 선수 말고도 더 있지 않을까요? 야구계에서 말입니다. 제가 누굴 말하는지 드리님은 이미 눈치챘을 겁니다.
맞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바로 롯데 자이언츠 레전드 선수, 이대호 선수입니다. 저는 오늘 이대호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님과 좀 나눠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왜 이대호 선수 이야기를 하냐? 정답은 ‘별 이유 없다.’입니다. 말 그대로예요. 그냥 제가 하고 싶으니까요. 좋아하면 마땅한 명분 없이도 말할 수 있잖아요?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이자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선수. 왜 전설이고, 어째서 국가를 대표하는 4번 타자가 되었는지를 성적으로 말해보고자 합니다.
KBO 리그 유일한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으로 세계 최초 신기록 달성
두 번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
국가대표로서 타점 1위, OPS 1위, 홈런 2위, 안타 3위.
일본 프로야구 진출 후 두 번의 베스트나인과 타점왕 타이틀,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시리즈 MVP 달성.
메이저리그 진출 후엔 두 자릿수 홈런 기록하여 한미일 리그에서 모두 활약한 한국인 최초 타자.
22년 프로 생활 동안 2,895안타 달성.
용어 설명
1) 트리플 크라운 : 한 시즌 동안 투수가 방어율ㆍ다승ㆍ탈삼진, 타자가 타율ㆍ홈런ㆍ타점의 주요 3개 부문을 동시 석권하는 것을 말합니다.
2) OPS : 출루율 + 장타율, 쉽게 말하면 한 번 때리면 멀리 보내고, 아웃 없이 베이스로 잘 나갔다는 말입니다.
3) 베스트 나인 : 시즌 기간에 좋은 성적을 남긴 투수,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외야수 (3명) 등 각 포지션 별로 1명씩 기자단 투표에 의해 총 9명을 선정하는 일본 프로야구 수여하는 상 중 하나예요.
정말 대단한 야구 선수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은퇴 당시의 성적입니다.
142경기 540타수 179안타 23홈런 101타점 타율 0.331 출루율 0.379 장타율 0.502 OPS 0.881 sWAR 3.63(팀 내 1위) wRC+ 146.2. 그리고 골든글러브 수상.
용어 설명
1) 골든글러브 : 매해 각 포지션별로 가장 우수한 활약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2) WAR : 대체 할 수 있는 2군 선수보다 팀에 기여한 승리 정도, 수치가 높을수록 이 선수를 대체할 선수가 없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됩니다.
3) wRC+ : 조정 득점 창출력, 타격만을 반영하는 지수, 현존하는 타격 지표 중 가장 정확한 수치로, 높을수록 잘 친다고 보면 됩니다.
고백하자면, 제가 헤비한 야구팬이라서 이걸 다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해서 찾은 내용입니다. 저 역시 WAR, wRC+ 등 야구계 용어를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압니다. 은퇴하는 시점에 골든글러브라는 엄청난 상을 받기란 쉽지 않다는 걸 말이죠. 보통은 물러날 때쯤이면, 기량이 떨어져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요.
여담으로 2023년 8월 8일 새벽, 저는 잠들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뜬금포 같은 소리냐고 하겠죠? 7일 월요일에 방영된 예능 [최강야구] 때문입니다. 그날 이대호 선수는 홈런을 4개 쳤습니다. 그냥 홈런이 아닙니다. 4번 연속 홈런. 이게 말이 됩니까? KBO 역사상에서도 4연타석 홈런은 3명이라고 합니다. 박경완, 나바로, 로사리오. 그중에서도 당일 한 경기에서의 4연타석 홈런은 박경완, 로사리오 두 사람뿐입니다. 와. 예능에서 세운 기록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소름 돋았습니다. 은퇴한 선수가 이런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현역 시절의 이대호 선수를 보는듯한 기분에 흥분이 한껏 몰려왔습니다. 덕분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현역 때부터 지금까지 야구를 놓치지 않는 이대호 선수. 사실, 이대호 선수에 대해서 야구장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나 성적 말고는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마침, 책을 내셨더라고요. 바로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입니다.
이대호 선수 역시 자신의 책을 통해 기본기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게 바로 기본기라고요. 그게 드리님과 지난 편지부터 해왔던 이야기죠.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에서 경험한 야구는 조금 달랐다.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엄격함’과 ‘절실함’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면 워낙 선수층이 두꺼운 일본과 미국에서는 1군 리그에 올라오기까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고, 1군에 올라와서도 계속 성적으로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당연히 선수들의 절실함은 우리나라 선수들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야구를 진심으로 좋아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경기에 설렁설렁 임하는 것도 아니었다. 경기에서는 무섭게 집중력을 발휘했고,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던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그런 선수들이 모여 있다 보니 팀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한번 해 보자”,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잘하는 팀일수록 더욱 그랬다.
[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201, 202쪽
한번 해 보자! 할 수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 시절의 롯데 자이언츠 슬로건 “두려워 말라 : No Fear"가 딱 떠오릅니다. 이대호 선수를 비롯하여, 황재균, 강민호, 손아섭, 김주찬, 전준우 선수 등 어떻게든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던 롯데만의 야구를 보여주던 그 시절이 No Fear와 함께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그때의 자이언츠는 말 그대로, 일단 부딪히고 보는 팀이었죠.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던 그 롯데가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그때만큼 야구가 재밌었던 시기가 있었을까요?
여기까지 쓰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할 수 있다. 두려워 말라! 이 마음가짐이 저에게서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겪다 보면, 이런저런 힘든 일이 많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마음으로 견디기 힘든 일을 마주할 때마다 “괜찮아.”라고 외치며 잘 버틴다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부턴 괜찮은 게 아니었던 겁니다. 그렇게 자꾸 시간이 지나며, 하나둘 쌓이다 보니, 실력만이 아니라 두려움마저 꽤 축적된 듯합니다. 두려움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고 보지만, 그만큼 자신감도 당당하게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스스로 놓치고 있었던 셈이죠. No Fear 정신을 보면서 자랐던 제가 어느 순간부턴 Fear만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었더군요.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진짜 부끄러운 건, 알아도 바꾸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조금씩 달라지겠습니다. 스스로에게 No Fear 정신을 꾸준히 쭉 적립하겠습니다. 당당함을 하나둘 모아, 그 시절의 롯데 자이언츠와 같이 살아보고 싶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해내자!
한번 해보자!
우리 드리님도 긍정적 마음으로 풍부한 분이시니, 드리님을 통해서도 해내고자 하는 마인드를 잘 배워야겠습니다.
하던 이야기에서 살짝 벗어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대호 선수! 그를 직접 마주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이대호 선수가 은퇴하던 시즌에 롯데 자이언츠 홈 경기장인 사직 야구장에 의료 지원 3번 정도 갔습니다. 솔직히, 가까이서 볼 때마다 좀 무서웠습니다. 한동희 선수보다 머리 한 개 정도 더 큰 형의 덩치에, 거기다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아우라에, 저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부끄럽지만, 겁먹은 거죠. 그렇지만, 팬을 향한 마음은 다르더군요. 사인 요청을 드렸을 때 웃으면서 해주셨습니다. 이건 자랑하고 싶어서 말했어요.
드리님이 가장 좋아하는 야구 선수는 누구일까요? 참고로 여기서 야구 선수 말고, ‘저는 아버지, 어머니를 가장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제가 불효자가 되기 때문에, 그런 멘트는 사전에 차단하겠습니다. 드리님의 애정하는 선수가 누군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왜 좋아하는지도 기대되고요.
개막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23년 5월 31일, 그날이 저희가 1년에 한 번 본 날이자, 함께 야구를 봤던 날이며, 제가 지각했던 날입니다. 이 글을 통해 변명 아닌 변명을 좀 하자면, 제 업무를 다 마치고 퇴근하려고 했는데, 상사가 업무 관련 이야기를 나누자고 연락하셨습니다. 거기다가 “저 퇴근해야 하는데요?”라고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매우 중요한 이야기였기에, 드리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올해는 1회부터 갈 수 있도록, 무조건 노력하겠습니다. 드리님과 야구장에서 신나게 응원할 수 있는 2024년을 그리며 이번 편지 마무리하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꽤 길게 글을 쓰고만, 오늘도 헤비한 팬이라고 오해를 살만한 편지를 쓴 주니킴 드림.
[이전 편지]
http://brunch.co.kr/@drikim/20
[이후 편지]
http://brunch.co.kr/@drikim/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