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운 샤워실을 등록했다.)
24세에 잡지 계에 발을 들이고 그 다음 해에 에디터가 됐다. 그리고 어언 7년 마감 또 마감으로 한 해 한 해를 보내던 중...
문득 한 번 뿐인 내 소즁한 인생인데 마감만하다 마감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진짜 뭐라도 해야겠다싶어서 벌떡 일어났더니 글쎄, 너무 어지러웠다. 운동부터 해야겠다.
사실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31년간 내 인생에서 운동한 순간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도 다 못쓴다.
마지막 운동이 아마... 고등학교 체력장 때? 그때 하필 반장이어서 반 친구들의 달리기 기록을 다 작성한 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지막으로 뛰었다. 너무 긴장돼서(?) 그랬는지 평소보다 더 못 뛰었고, 50m를 뛰는데 무려 18초나 썼다. 당시 너무너무 창피해서 트라우마처럼 남게 됐고 그 이후로 운동을 끊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 만 했다. 술을 새벽까지 퍼 마셔도 다음 날이면 멀쩡한 척 제 때 출근하고, 출장지에서는 하루에 7시간 이상을 걸어도 주물주물하고 자면 다음 날 또 7시간을 걸을 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 몸은 축복 받았구나!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몸이구나!
그렇게 체력을 흥청망청 쓰다가 내 나이에서 앞 자리가 바뀌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몸이 아니라 20대의 그 젊은 나이가 축복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끊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동해야 하는데, 라는 말만 반복하다보니 1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진짜 운동을 할 때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더니 마침 후배 기자가 헬스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수 년 간 헬스장을 다닌 경험이 있고 복싱도 3년이나 배운, 운동으로 치면 대대대대대선배인 후배 기자다. 그녀는 1년이나 헬스를 쉬었다면서 같이 다녀보자고 했다. 고작 1년...? 귀엽다.
우리는 마감이 끝나자마자 회사 근처 헬스장으로 달려갔다. 이미 회사 내 다른 직원도 다니고 있어 어느 정도 입증 된(?) 곳이었다. 운동으로 치면 대대대대대선배인 후배 기자와 함께 있으니 피티 따위 필요 없다는 초 안일한 생각으로 그냥 6개월 권만 끊었다. 설명을 듣고 수십 만원의 돈을 지불하고 나니 어쩐지 벌써 피곤해져서 그 날은 운동을 패스했다.
첫 운동을 하는 대망의 다음 날, 땀 흘려 운동한 후의 개운한 샤워를 꿈꾸며 목욕 용품부터 챙겼다. 꽃 향기가 나는 샴푸, 머릿결을 매끈하게 가꿔줄 트리트먼트, 보드라운 샤워 볼 등을 챙기고 있으니 엄마가 헬스장 가면 다 있다고 했다.
헬스장의 첫인상은 무슨 호텔 지하에 있는 클럽 같았다. 형형색색의 조명, 고막에 때려박는 엄청난 사운드의 댄스 음악, 쿰쿰한 땀 냄새까지... 시작도 전에 지쳐버렸던 것 같다. 트레이너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가장 먼저 인바디를 쟀다. 무슨 통계학 교재처럼 숫자와 그래프로 가득 채워진 A4용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시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ㅎ 골격근량과 체지방 모두 표준보다 한참 못 미쳤다. '체지방이 적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라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 '아~대회 나가시려고요?'하는 비아냥을 들었다.
후배 기자는 골격근량도 표준이었고 근육량도 꽤 됐다. 다만 상체의 오른 쪽을 더 많이 써서 근육량이 밸런스가 맞지 않다고 했다. 반면 나는 밸런스는 맞았는데, 좋아할 게 아니라고 했다. 둘 다 안써서 똑같이 근육이 없단다.
운동을 하러 온 게 아니라 혼나러 온 기분이었다.
신기한 건, 상체는 근육이 쏘쏘인데 하체는 표준 이상이라는 점. 그동안 쉬지 않고 출장을 다닌 보람을 여기서 느낄 줄이야.
그 날도 기분이 상해서 배운 기구만 깔짝깔짝하고 샤워나 하러 갔다. 등록한 날과 인바디를 측정한 날, 2일치 돈을 날린 기분이어서 샤워라도 빡세게 해야지, 하고 30분 가까이 씻었다. 샤워실은 넓고 쾌적하고 두 구간으로 나눠져 있어서 사람이 적은 쪽으로 가면 됐다. 한 마디로 마음에 쏙 들었다. 좋은 샤워실을 등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