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우리 서울집에는 방마다 하얀 형광등이 하나씩, 거실에는 매립등이 무려 열 여덟개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켜본 적은 거의 없다. 밤마다 켜지는 조명은 은은한 불빛의 노란 스탠드들이다. 그마저도 밝기가 조절되는 스마트 전구인데, 밝기를 50%이상으로 켜본 적은 없다. 이럴거면 그 많은 매립등과 형광등은 왜 설치했나 싶다. (사실 그건 이 집을 누군가에게 되팔아야 할 때를 대비한 어쩔 수 없는 투자에 가까웠다.)
아내는 어두운 곳으로 나를 끌고 다녔다. 아무리 유명한 맛집이어도 도서관처럼 하얀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으면 탈락이었다. 간접 조명이 은은하게 켜져 있는 곳만이 우리에게 (아내에게) 선택되었다. 음식점이든 카페든, 진짜 도서관인 경우를 제외하면 늘 그랬다.
실은 나도 아내처럼 백색의 환한 조명을 싫어했던 것 같은데, 그 사실을 규정하지 못했다. 아내를 통해 그걸 알았다.
마치 초고해상도의 TV로 헐리우드 유명 배우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마주할 때처럼, 현무암같은 모공을 보고 그들이 그렇게 미남 또는 미녀가 아님을 깨닫게 될 때처럼, 타인을 적나라하게 마주하는게 싫었다. 어둠이 우리와 타인들 사이에 적절한 두께로 자리하지 않으면, 모두가 너무 가깝게 느껴져서 그게 싫었다. 마치 출근길의 지하철처럼 타인과 나의 사이에 공백이 사라진 기분, 너무 환한 조명은 내게 필요한 타인과의 거리를 소멸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