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가 된 교무실
출근을 하면서 각종 불편함에 시달려야 했다. 머리로 아직 참을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배와 옆구리 주변으로 가려움이 올라왔고, 하체 부종이 심해져 신발이 꽉 끼는 날이 많아졌다. 버스에서 병든 닭처럼 졸다가 고개를 꾸벅이는 빈도가 잦아졌고 속이 부대끼는 동시에 허기가 지는 모순에 봉착하는 순간이 늘어났다. 스트레스가 올라가고 있다는 빨간 신호였다. 마음만큼 체력이 따르지 않은 나의 하루는 노동과, 노동을 위한 최소한의 활동으로 겨우 채워졌다. 노동하는 기계가 된 기분이 들었고, 그 마음이 스트레스 지수를 조금씩 더 올리고 있었다.
아직 화요일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새벽에 눈을 떴다. 출근 생각에 우울했지만 도시락 생각에 생기가 돌았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렌틸콩 볶음을 할 참이었다. 레시피에 나와 있던 샐러리와 당근이 없었으므로 패스. 대신 싹이 나기 시작한 감자를 쓰기로 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잘게 썬 양파와 다진 마늘을 볶았다. 달큰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훅 올라왔다. 아, 내가 사랑하는 이 조합! 거기에 잘게 썰어둔 감자를 넣고 달달 볶았다. 집 안의 냉기를 확 밀어버리는 열기가 올라왔다. 거기에 소금을 더했다. 그리고 전날 자기 전에 미리 불려두었던 렌틸콩을 투하! 또 볶았다.
눌어붙을 때까지 볶은 다음에 채수를 넣는 게 감칠맛의 포인트라는 인터넷 레시피를 따라 하고 싶었지만 채수도 없고, 대체재로 언급됐던 화이트 와인도 없었다. 왠지 물 대신 다른 걸 넣고 싶었기에 냉장고에 처박아 두었던 양파즙을 뜯었다. 이것도 채수지 뭐, 합리화하며 몇 스푼 투하했다. 촤아악~! 따라 할 순 없지만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소리와 연기를 내며 재료들이 엉키고 있었다. 간을 봤다. 조금 짰지만 구제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대신 내 입엔 조금 짠 렌틸콩 볶음 옆에 삶은 고구마를 썰어 넣었다. 고구마의 달콤함이 짠 기운을 상쇄해주길 바라며.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걸 몇 시간 후에 알게 되었다.
그날은 온라인 개학날이었다. 전날 급하게 시범 운영을 했음에도, 시스템 오류와 인간의 버벅댐이 사정없이 꼬이면서 교무실은 난리법석이었다. 조회 체크가 안 된 아이들이 각 반에 몇 명씩 존재했고, 나를 비롯한 담임들은 그들에게 확인 전화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계속 전화를 시도해도 받지 않아 보호자와 통화를 하기도 했다.
매 시간 반 아이들이 수업을 들었는지 출석 체크를 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 사이에 '그 반 아무개가 무슨 과목... '으로 시작하는 교과 담당 교사의전화나 메세지를 받고, 또 해당 아이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잘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고, 내 교과 수업을 안 들어온 아이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정신이 없었다. 나뿐 아니라 앞, 뒤, 옆 사방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랬다. 그곳은 교무실이 아니었다. 카오스의 콜센터였다.
저마다의 이유로 녹초가 된 점심 멤버들이 모였다. 내 도시락을 보고 콩 따위가 밥이 되냐는 핀잔에 난 ‘단백질’이라며 맞받아쳤다. 과연 콩과 감자 덕에 든든했지만 기름기가 거의 없어서 그런지 무겁진 않았다. 무엇보다 크기에 비해 야무지게 단단한 렌틸콩은 아직 씹지 못한 업무의 비효율성과, 나를 미저리 수준으로 만드는 연락두절 학생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꼭꼭 씹어내며 마음을 다스렸다. 짠기가 올라올 때쯤 샛노랑 고구마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단맛과 짠맛이 오가면서 나의 화기를 눌러냈다. 역시 화날 땐 단짠! 온갖 화학제품과 인스턴트식품 따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게 유기농 스타일 단짠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내 도시락 메뉴에 자주 등장할 것만 같은 요물 같은 녀석, 너 때문에 오늘 내가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