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도시, 락 02화

씹는 재미가 쏠쏠한, 콘치즈

직장에서 마주한 씁쓸한 현실을 와구와구 씹고 싶은 날

by 정담아

SKY 00명. 교무실에 새로 들어온 전자레인지의 대가였다. 물론 그 값은 물건을 보낸 분께서 매긴 것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주지를 말든가. 여러 명 있는 장소에 고작 전자레인지 하나 덜렁 던져주고 대가를 논하다니. 치사하다 치사해. 흥! 물건 값을 듣자마자 시끄러워진 속을 정제된 한 마디로 뱉어냈다.

“... 전 사용하면 안 되겠네요.”


교육이 사라진 시대. 경쟁만 난무한 세대. 교육 현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있다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꽤 많다. 이미 아이들은 경쟁이 익숙하고 경쟁이 너무 당연하다. 능력 없는 자가 도태되는 것 역시 너무 당연하다. 그런 시스템이 왜 만들어졌는지, 그게 옳은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그저 달리라고만 채근당했으니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열망만 학습했으니까. 그 안에서 무기력감이 밀려올 때가 많다. 이 조직에서 난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1년 동안 물음표 몇 개를 쥐어준들 저 아이들에게 무슨 소용일까. 오히려 달려가는 길에 덜컥 걸려 넘어질 걸림돌을 던져준 건 아닐까.


빙글빙글. 전자레인지 앞에서 늘 끝없는 생각도 돈다. 빙글빙글. 띵- 소리가 날 때 내 마음속을 돌던 잡념도 잠시 멈춘다. 전자레인지를 앞에 설 때마다 SKY가 왔다 갔다 거려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치즈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래, 물건이 뭔 죄야. 이왕 있는 거 열심히 쓰고 기대에 부응하진 말자, 고 홀로 타협했다. 콘치즈는 열기가 필요하니까.


엄마는 통조림으로 해야 맛이 난다고 했지만 집에 있는 건 찰옥수수였다. 삶아서 하나하나 떼어 놓은 통통한 옥수수알이 냉동실 안에 가득 있었다. 그것들이 냉동실의 냄새를 온몸으로 다 흡수하기 전에 조치가 필요했다. 자연해동이 된 옥수수를 기름 없이 팬에 살짝 볶은 뒤 달달함을 입히기 위해 꿀을 살짝 뿌려두었다. 그 사이 썰어서 잠시 재워둔 양파를 옥수수와 함께 마요네즈와 약간의 소금을 넣고 버무렸다. 통에 담은 뒤 치즈를 얹었다.


사르르 녹은 치즈와 옥수수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찰진 옥수수알의 탄력이 씹을 때마다 느껴졌다. 초당옥수수나 통조림 옥수수처럼 또렷한 달콤함이 확 느껴지진 않았지만 은은하게 단맛이 퍼졌다. 마요네즈와 치즈의 고소함도 함께 다가왔다. 느끼함이 올라올 때쯤 양파가 등장해 밸런스를 맞춰주었다. 특히 재료들의 식감이 흥미로웠다. 쫀득하고 부드러운 치즈 안에 탄탄한 옥수수와 아삭한 양파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괜찮았다. 마음에 들었다. 할 수 있다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했다. 점심 식사의 즐거움이. 하지만 종은 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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