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면 말이지.
김영하, <여행의 이유>에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 중
만약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림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는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 그림자를 소중히 여겨라. 하지만 만약 그것을 잃었다면, 남은 운명은 방랑자가 되는 것뿐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면 굳이 그림자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며 때론 환대받고 때론 인정받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무엇.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받거나 무시당하거나 어떤 계기로 인해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여겨지는 때가 있다.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고,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때가 있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세상에 홀로 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운 것들을 잃은 상태.
그런 때는 차라리 혼자 있고 싶어진다.
무엇을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은 언제나 적응하기 어렵고, 부정당하느니 써서 없앨 수 있는(눈에 보이고 쓸모가 있는) 돈과 바꾸고 싶어진다.
사람일 수 없다면 사람이길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림자를 판 사나이처럼 자신의 그림자를 돈과 바꿔 살아가면
인정받을 필요도 부정당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지만
어딜 가도 자신의 자리는 없다.
스스로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내몰 뿐이다.
잠깐 인정받지 못하고 부정당하고 상처받더라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라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그림자’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던 타인의 마음을,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운 우리라는 연대를,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는 타인과 섞여 살아가기 위해
그럼으로써 더 나은 자신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면 말이지.
그림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
나를 더 나답게 만들고
함께 하는 우리를 더 정겹게 지키는 그림자가
오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보자.
나를 사람으로 지켜낼 그림자를 붙들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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