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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라는 바다를 유영할 자유이용권을 드립니다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by 다시봄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이것,
즉 고독,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이니까요.
우리는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 시절 어른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중요하고 대단해 보이는 일과 얽혀 있을 때 그들이 너무 분주해 보이고 그들의 행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고독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어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시시하고 그들의 직업이 경직되어 있으며 삶과 더 이상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가 지닌 깊이와 자신의 고독이 지닌 넓이를 가지고도 왜 어렸을 때처럼 낯선 것보다 더 멀리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걸까요?

자신의 고독 자체가 바로 일이고 지위이며 소명인데도 말입니다.





자신의 세계가 지닌 깊이와 자신의 고독이 지닌 넓이를 가지고 내면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고독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안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풍부한 자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안에 있는 깊고 넓은 고독이라는 바다를 유유히 헤엄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얻게 된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욕망은 여전하지만

드라마작가가 되지 못해 TV에서 내 이름을 보는 날이 오지 않았지만

드라마작가가 되기 위해 드라마를 습작하던 때가 내겐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그 이전에 TV 교양국에서 다큐멘터리 위주의 대본을 썼고 영화 시나리오도 썼지만, 드라마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드라마 속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바닥까지 들여다봐야 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쓰레기 대본에 머물게 된다.

내가 아닌 허구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내 속을 파고 또 파야하는 이유는 드라마 속 인물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분명 나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고 어려움을 겪고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이해해야 했고 내 무의식을 파고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고독 속으로 들어가 내면을 만나야 했다.


처음엔 고독으로 들어갈 방법을 몰라 헤매고 방황하다가 도망가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

내면 속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직 나와 대면하는 일은 고통 그 자체였지만, 한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은 결과적으로 나를 성장하게 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비겁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지를,

내가 얼마나 나를 나약하고 비겁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비난했는지를,

내가 얼마나 나의 소중한 것들을 소외시키며 엉뚱한 방향을 향해가고 있었는지를,

내가 얼마나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고 싶은지를 알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나와 똑같을 수가 없다.

고독 속에서 내면을 만난 나는 인간 1에서 인간 2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내면의 깊이와 넓이를 드라마 속 인물에 다 반영하지 못해 드라마작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바닥에 있는 나를 만날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 내 삶에 큰 자산이 되었다.

방황하고 길을 잃을 때마다 고독이라는 바다를 유영할 자유이용권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이것,
즉 고독,
위대한 내면의 고독뿐이니까요.
우리는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몇 시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독은 성장 촉진제다.

고독할 수 있다면,

자기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나 자신하고만 대면할 수 있다면

그 이후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자신의 고독이 지닌 넓이와 깊이를 알게 되면

흐트러진 삶의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화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수 [오늘보다 행복한 날은 없는 것처럼]

목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토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일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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