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래 위에도 배를 띄울 수 있다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by 다시봄
모래 쪽에서 생각하면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확실한 것은 오로지 모든 형태를 부정하는
모래의 유동뿐이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모래를 퍼내는 여자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거의 물을 휘저어 집을 지으려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물에 배를 띄울 수 있다면 모래에도 배를 띄울 수 있을 것이다. 집이란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모래와의 덧없는 투쟁에 힘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

모래에 띄운 자유의 배….

유동하는 집, 형태 없는 마을과 도시….





살다 보면 우리는 형태 있는 것에 집착한다.

완성된 모양을 쟁취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정답인 듯 여긴다.

갖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집처럼 마음을 짓누른다.


하지만

모든 것이 형태를 가질 필요는 없다.

삶도 마찬가지다.

바람처럼, 소리처럼, 향기처럼, 바다처럼

그리고 모래처럼

형태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 속에서도

삶은 분명히 움직이고, 흐르고, 변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집을 가지지 못해도,

보이지 않는 ‘나만의 형태’를 찾아가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진실하다.


모든 삶은 흘러간다.

고정된 형태조차 흐름 앞에서는 부정당한다.

그러니 조금 무르고, 부서지고, 흔적이 희미하더라도

삶 위에 띄워 흘러보낼 ‘한 톨의 모래’가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모래 쪽에서 생각하면
형태가 있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확실한 것은 오로지 모든 형태를 부정하는
모래의 유동뿐이다.


모래를 퍼내며 끊임없이 집을 짓는 『모래의 여자』처럼

나 또한 삶이란 공간 안에서

나를 덮어주고 빚어주는 따뜻한 유동을 느끼며 살고 싶다.

형태의 억압에서 벗어나

모래에도 배를 띄울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목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일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