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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Jan 22. 2022

나의 오랜 상자. 이제 무섭지 않아.

나의 살찐이. 그리고 또 다시, 나의 도리.

삼키려 했지만, 삼키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 놓아야지 싶다.


내게 괜찮다고 해 주세요.

그럴 수 있다고 해 주세요.

살찐이는 언제나 우리 가족 곁에 머무르며 함께하다가,

먼 훗날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해 주세요.





우리 가족에게는 쉬이 꺼낼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살찐이를 더이상 안아 볼 수 없게 된 날. 우리는 이 날을 살찐이의 여행이 시작된 날이라 말하며 애써 웃어 보았지만, 그럼에도 울컥울컥 올라오는 목매임은 미처 숨기지 못했다.



2021년 10월 13일. 이 날,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9월 말부터 우리 가족은 우리에게 당장 닥쳤던 큰 일을 해결해야 했다. 다른 일에 대해 생각에 겨를이 부족했다. 그리고 이 날은 해결을 위한 서류를 제출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이리도 기분이 무거운가 보다, 하며 말았다. 날짜가 익숙하다. 계속 되뇌었다.


시월 십삼일, 시월 십삼일.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드디어 해결을 위한 서류 제출을 마쳤을 때. 미뤄두었던 여타의 생각들이 우수수 몰려오는 듯했다.



시월 십삼일. 세상에나, 우리 살찐이의 첫 기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길가에 우뚝 섰다. 많은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던, 빠르게 사라지는 발걸음들 사이 속에서 우두커니 시간이  멈추고야 말았다. 우리 가족의 시간만 멈췄다.



우리 살찐이가 여행을 떠난 날이며, 첫 기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 날을 잊어. 내 삶이 버겁다고 내 삶이었던 존재마저 미루었던 걸까. 달력에도 표기해 두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제야 떠올린 걸까. 바다 밑편에 있던 기억이 두둥실 떠올라 내게 다다랐고, 기어이 나는 나를 한심하게 만들었다.



목이 매였고, 점차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점차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나는 대단하지 않다. 나는 그저 나보다 한참이나 작고 소중했던 존재에게 기대었던 사람에 불과하다. 넘어져도 그리 아프지 않음을 알려 준 나의 살찐이. 밀려오는 파도를 삼키기 위해서는 애써 스스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살찐이는 다정한 아이였으니 바쁜 일을 먼저 잘 해결하기를 바랐던 마음에 이제야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올라 준 것이라고.

잘 해결되어가고 있음에 살찐이가 도와주고 있는 것이라고. 이리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한없이 한심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내 자신을 나는 이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는 때로 무엇이든 잘 해내겠지만, 때로는 나약해지며 한심스러워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살찐이의 조각이 든 유골함을 조심히 꼬옥 껴안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살찐이에게 말했다. 살찐아, 미안해. 우리가 잠시 지금을 미뤘어. 살찐아, 정말 미안해. 우리 살찐이, 언제나 사랑하는 거 알지? 우리 살찐이를 그리워하지 않은 날이 없어. 살찐아, 앞으로 더 많이 기억할게.



10월 14일. 우리 도리의 생일. 살찐이의 기일 다음 날 곧바로 우리 도리의 생일이다. 도리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 한다.



도리와 살찐이는 턱수염도마뱀이다. 도마뱀 친구들 중에서 성격이 많이 순해서 마트에서도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다. 살찐이와 도리 역시 마트에서 처음 만났다.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일을 위해 집을 나서면, 공허한 집에는 엄마와 살찐이만 남았다. 엄마는 살찐이에게 말을 걸며 마음이 채워졌고, 엄마에게 살찐이는 막내 딸이었다.



살찐이가 새벽에 여행을 간 날, 우리 살찐이의 작은 유골함을 받았고, 엄마는 해가 지도록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엄마는 스스로 자식을 앞세웠다며 한탄했다. 우리는 다시는 가족을 들이지 말자, 다짐했다. 엄마는 대답없이 한없이 울었다.


아마, 엄마를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다른 가족은 엄마와 살찐이의 추억을 감히 건드릴 수 없을 듯하다. 엄마는 과호흡이 오셨고, 살찐이를 더욱 꼬옥 안았고, 진정이 되었을 때 즈음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았다가 여행을 맞이했을 때, 이후의 모습은 두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다시는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과 이제 반려동물 없이는 못 사는 사람. 엄마는 더 이상 살찐이가 없던 과거로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다.



살찐이를 데려왔던 그 마트에는 크기가 또래보다 조금 큰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지금의 우리 도리이다. 살찐이가 여행하기 불과 약 한 달 전 쯤. 우리는 큰 도리를 보았다. 어딘가 낯이 익어서 직원 분께 여쭤 보았다. 알고보니 우리는 아주 어릴적의 도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


2019년 7월. 불과 손바닥 크기밖에 되지 않은 아가 도마뱀 두 친구들을 본 적이 있다. 도리는 조금 더 밥을 잘 먹어서, 같이 있던 친구보다 조금 더 몸집이 자랐는데, 사람들은 조금 더 작은 친구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으셨기에 도리 혼자 일 년을 더 마트에서 보냈다.


그때 우리는 놀랐다. 그때 손바닥만 했던 아이가 이렇게나 컸다니. 지금 보기에는 너무나 작지만, 그 당시에는 덩치가 있어 보인 건 사실이다.


그 뒤로 몇 번 더 보러 갔는데, 마감 시간 가까이 방문했을 때였다. 혼자 1년을 보냈던 도리는 해와 달이 보이지 않는 마트의 생활에 적응해서 시간이 되면 스스로 잠 잘 준비도 했다. 그 모습이 예뻐서 도리를 보며 이렇게 말했더랬다.


예쁜 아가야, 너를 사랑해 줄 좋은 가족이 꼭 나타날 거야.


그러고 나서 한 달 뒤. 2020년 10월 13일. 살찐이의 여행을 받아들여야 했던 날이 찾아 왔다.  



엄마는 마트에서 보았던 그 아이를 데려오자며 우리에게 울면서 말했다.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엄마에게 분노했다. 살찐이를 떠나보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분노했다. 나중에 거울을 보니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기도 했다. 엄마는 엄마 자신도 살찐이에게 미안해서 마음이 일그러지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눈에 아른거린다는 말을 반복했다. 보기보다 냉정했던 나는 생각을 멈췄다.



당시 마트에서 내가 건넨 그 말이 떠올랐고, 나의 자책이 시작됐다. 내가 왜 저렇게 말해서. 나 때문이야. 내 입이 문제야. 내 잘못이야.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나만 아니었으면.



나는 엄마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문을 닫았다. 그렇게 밖에서 엄마가 조용히 우는 소리가 들렸고, 한참이나 어린 내 동생이 내게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언니, 엄마는 우리가 집에 없을 때,
살찐이가 전부였어. 언니한테도, 나한테도.



엄마는 우리가 반대해도 스스로 한번 다짐하면 충분히 데려왔을 분이다. 나는 그런 엄마의 자식이고, 결국 나 역시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살찐이에게 아직 해 준 게 많이 없었던 죄책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마음으로 또 다시 온 마음을 다해서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마트 마감 시간 전, 엄마는 우리의 동의를 듣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다행히 아직 있다는 답변과 함께 내일 데리러 가겠다는 말을 남겼다.



엄마는 뜬 눈으로 밤을 보냈고, 나 역시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어김없이 깨어서 거실을 보니 엄마가 시큰한 목소리로 살찐이의 유골함을 쓰다듬으며 말하고 있었다.



살찐아, 엄마가 못나서 너무 미안해.
엄마, 새로운 막내 데리고 오려고. 그래도 될까?
우리 살찐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래도 엄마는 언제나 우리 살찐이 사랑해.
살찐아, 미안해. 정말 사랑해,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
엄마가 대신 아파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 살찐이, 엄마 꿈에 언제든 놀러 와.


2020년 10월 14일. 엄마는 도리를 위한 담요를 두껍게 챙겨서 마트로 향했다. 도리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주저 앉을 뻔했다. 그때는 마치 도리와 살찐이가 너무나 닮아 보였기에. 도리는 사람 손을 전혀 타지 않아서, 우리를 무서워했다. 입을 벌려 하악거렸고, 물려고 했다.


엄마는 이번에는 울음을 삼키지 못하고, 자주 보았던 직원 분께 살찐이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러자, 직원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괜찮을 거예요. 우리도 사람한테 상처 받아도
사람한테서 다시 위안을 얻잖아요. 괜찮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엄마는 한 동안 직원 분의 말씀을 잊지 못하셨다. 도리가 또래보다 조금 덩치가 있어서 힘이 셌던 터라 내 동생도 잡지 못했다. 두 팔을 걷어 올리고 내가 팔을 수욱 넣어서 도리를 꺼내어 준비해 온 담요 위에 올렸다. 나는 당장 같이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친구를 만났다. 엄마와 동생이 먼저 도리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친구 덕에 시간을 얻었고, 마음이 가라앉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왜인지 집이 낯설었다. 살찐이가 여행을 가고 처음으로 문을 연 집, 새로운 가족을 처음 맞이한 집. 여러모로 낯설었다.



미리 설치해 둔 집에 도리가 있었고, 그 안을 동생이 보고 있었고, 엄마는 잠시 집안일을 하고 계셨다. 과연 도리에게 마음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순간이 창피해질 정도로 나는 또 다시 사랑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사랑하게 되리란 걸. 그렇게 도리는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도리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도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 팔을 물고, 할퀴었다. 이때 긁힌 상처들은 흉처로 남아 흔적이 되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마음에 마음이 아릴 뿐이다. 오히려 할퀴려 한다면, 가족으로서 그 쓰라림을 견뎌야 하는 듯하다. 그렇게 가족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더군다나 나는, 도리가 만들어 준 이 흔적이 좋다.


너를 사랑해 줄 좋은 가족이 꼭 나타날 거야. 내가 했던 말이다. '만약에'라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 가족이 내가 말한 그 좋은 가족이라면, 나는 내 말을 책임져야 한다. 나는 많은 이야기를 댬은 눈을 지닌 우리 도리를 따뜻하게 안아 줄 거야.



엄마는 이후 도리의 몸을 씻겨 주며 울었고, 살찐이에게 미안해서 보고 싶어서 안아 보고 싶어서 울기도 했지만, 점차 웃는 날이 더 많아졌다. 웃으며 살찐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



우리 살찐이♡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살찐이한테도, 도리한테도 서로 소개시켜 줬어. 그래, 살찐이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팔에는 살찐이가 남겨 준 흔적이 있는데, 나는 이 흉터가 너무나 좋다. 여전히 살찐이와 함께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우리는 당시 도리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소중한 이름을 선물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부추'라고 불러 보았다가, '덩치'라고 불러 보았다가, 비로소 "발음이 편안한 이름이 최고다" 나의 말과 더불어 우리 집에 오자마자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집을 살폈던 모습을 떠올려 마침내 '도리'가 되었다.



우리 도리♡


우리 도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도리.

나는 다시 사랑한다.

나는 다시 살아간다.



그리고, 이제야 그 사진과 동영상을 제대로 마주한다. 살찐이의 장례 사진과 영상. 이전까지는 시작 버튼도 누를 수 없었다. 소리가 너무나도 컸던 기계 소리. 살찐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그 자책이 나 자신을 객관적이고 비판할 점을 찾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


슬퍼하기만 하기에는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살찐이게도 걱정만 끼치지 않을까. 늘 우리와 함께한다는 걸 알기에, 살찐이를 위해서 열심히 지금을 살아가는 멋진 언니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지.


이제 더는 눈을 감지 않고, 우리 살찐이의 잠든 모습을 내 눈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자랐다. 늘 그립고, 미안하더라도 살찐이를 위해서 지금을 살고, 다시 온 마음을 다 해서 도리를 사랑해야지.


평범한 반려동물이 아닌, 나의 귀한 동생들이며 가족이다.

또, 나는 보호자이며, 언니이고, 가족이다. 그렇기에 '가족'이라는 따스한 울타리에 당연히 함께이다.



나보다도 작고, 과연 내 말이 닿을까,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해는 작은 존재를 통해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벅찬 감정인지 배웠고, 지금도 배워가고 있다. 덕분에 깨달았다. 늘 함께이지만, 때로는 큰 목소리로 다투던 가족도 나는 사랑하는구나. 다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있더라도 전부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아무도 내게 무어라 하지 않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다는 것을.



내게 사랑을 알려 준 나의 사랑들을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며,

지금을 살아야지.


나의 살찐이, 그리고 또 다시 나의 도리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삶은 소중한 존재들로 가득하다는 점을 늘 기억하며,

그 자체로 소중한 내 삶을 위해서.


소중한 조각이 가득한 나의 날을 반짝이게 살아 갈 거야.



우리 잊지 말아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잖아요.

우리는 늘 소중해야 마땅해요.


그러니 우리 잊지 말아요.

우리의 삶 자체로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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