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다. 춘천교대에 아동문학교육과라는 것이 생겼다는 말에 2010년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십 대의 젊은 선생님, 제대로 아는 것 하나도 없이 시작한지라 정말 열심히도 배웠다.
그로부터 일 년 후, 결혼을 앞두고 교수님께 전화로 이 소식을 전했다.결혼하면 이걸 어쩌나, 어허.. 축하가 아닌 미적지근한 반응. 그땐 그게 참 기분이 나빴다. 그렇지만 왜 그런 표현을 하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경력단절.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좀 어색하지만, 그 이후 한참을 어린이문학과 멀어진 채 살았으니까. 그때 썼던, 마무리되지 않은 동화 습작 몇 편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동안 어린이문학은 점점 더 커지고 새로운 작가들과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와 작품을 보면 질투가 났다. 내 눈엔 잘 쓴 것 같지 않은데, 아쉬운 점이 분명히 보이는데 왜 다 작가가 된 건지 괜히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나만 멈춰버린 기분을 느끼기 싫어 보지 않으려 더 애를 쓰며 못 본 척했지만, 나 스스로 그들과 비교하며 좌절의 시간을 한동안 보내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2021년.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줌을 통해 마지막 학기를 끝냈다. 논문도 쓰지 못한 반쪽자리 졸업이었지만 이상한 것이 속에서 꿈틀거렸다. 이제 앞으로 나는 뭘 해야 할까. 이것 말고는 새로운 것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용기를 내어 동화를 읽는 책모임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참으로 다정한, 어린이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다시 가슴이 뛰는 느낌. 거기서 다시 반짝이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깨달았다. 과정을 즐기지 못한 이전의 나는 결과만을 바라보고 지레 겁먹고 도망치고 있었구나.
이제는 동화나 그림책, 동시를 읽을 때 질투를 느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작품을 깊게 읽고 어떻게 해서든 좋은 점을 찾아내고 하나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내 것으로 만들려 한다. 그들도 처음부터 잘 쓰지 않았으며, 오늘도 내일도 나와 똑같이 머리를 싸매고 글을 쓰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최근엔 에세이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원래 에세이는 관심 밖의 장르였는데-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도 질투의 다른 모습이다-이제는 꽤 즐겁게 읽는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이 곧, 내가 쓰고 싶은 글일 테니까. 최근 백수린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고 딱 느낌이 왔다. 이런 글을 나도 쓸 수 있을까. 누가 봐도 쉽게 읽히는데 결코 가볍지가 않은 글.
궁금한 마음에 작가의 소개를 본 나는 그녀가 2011년 이른 나이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여성소설가로 2022년 첫 산문집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등단 후 여러 작품으로 문단의 주목받았고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는것도.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 작가를 꿈꾸는 입장에서본다면 참 부러운 인생이다.
그럼 난 그녀의 삶이 부러울까.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한 건 '작가가 된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면서 그 사이에 보이는 어떤 조각들, 반짝이는 순간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쓰는 나'가 진정 바라는 나의 모습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브런치작가가 것만으로도 나의 꿈은 이미 실현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난 좀 더 편하게, 그렇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책속의그녀를 바라볼 수 있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방식으로 바라보고 자기만의 언어로쓴 것처럼, 나도 내 삶을 나만의 방식을세워가며 나만의 언어로채워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