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괴물은 확실히 자신과 같은 부류였다
―쌤 오늘 어때요? 저 쌤 보고 싶어요.
최영은의 문자였다. 황정우는 슬쩍 웃음을 지었다.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은 당직근무자 서씨밖에 없다. 이제 곧 여기를 나갈 것이다. 그는 공무원을 하다 퇴직하고 당직근무 전담으로 얼마 전 새롭게 채용돼 야간 근무를 하고 있다. 선생들에게 깍듯해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의외의 사건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첫 순찰시간은 9시 반에서 10시 사이다. 조금 전 순찰을 돌았을 것이기에 쉬러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예외는 있을 수 있기에 언제든 조심하는 게 낫다. 황정우는 cctv를 피해 조심스레 밖으로 나와 장서관 건물로 향했다. 비번을 열고 들어오자 뒤에서 최영은이 황정우를 껴 앉았다. 둘은 학교에서 만날 때마다 그들만의 약속을 만들었다. 검지 손가락을 펴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금기와 터부. 하지만 금기는 깨뜨리라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둘의 만남은 그렇게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황정우의 오피스텔과 도서관 장서실이 그들의 밀회장소였다. 2학기가 시작되고 주말마다 둘은 그의 오피스텔에서 만남을 가졌다. 황정우는 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궁금한 부분이 있었다. 최영은은 가끔씩 묻지도 않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그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했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니 아이들의 역학관계가 재미있었다.
― 정미소는 어때? 정미소와 최현락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는것 같아요.
― 방준호는 왜 너한테 충성이야. 그 애는 날 좋아하죠. 내 말이라면 뭐든 다 들을 걸요? '
―반에서 혼자 따로 노는 애는? 수업시간에 보니까 민소진은 공부를 잘하는듯 보이는데 왜 어울리는 애가 없어?
― 아우 쌤 뭐 애들 호적조사하세요?
― 그냥 궁금해서. 애들은요 공부라는 것을 하는 아이와 포기한 애들 두 부류에요. 하지만 내 말을 안듣는다면 왕따는 각오해야죠.
―네가 권력이야?
―그런것은 모르겠고. 암튼 맘에 안드는 애들은 아예 제외시켜요.
이 괴물은 확실히 자신과 같은 부류였다. 황정우는 가끔 그녀가 다른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과 자신의 왕국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멀리서 우주선을 타고 동물들의 사회성과 권력다툼을 관찰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 무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는다. 외계인인 자신이 동물원 같은 지구 생태계를 지켜보고 조금씩 알게 모르게 변화를 주는 것이다. 최영은은 그가 준 아이템 이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왕국의 통치에서 달아나려는 세력에게 본보기를 보였다. 오주희는 탈주에서 실패해 처단 당한 것이다. 하지만 사망을 해서는 안됐다. 더군다나 선생들은 사건을 사전에 예방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마땅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최영은도 한번쯤은 주의를 받아야 한다.
이들의 행동은 시스템을 망치려는 시도였다. 황정우는 최영은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시 그런 위험한 짓을 벌이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내기 위해 한번쯤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 애가 두려워하는 것을 써 먹어야 한다. 하지만 황정우의 그 방법이 오히려 최영은이 약점을 잡을 빌미를 가져왔다. 좀 더 주의해야 했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사건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오주희와 관련된 일 때문인지 이들은 몇 주간 만남을 갖지 않았다. 12월 첫 번째 주였다. 일요일 오전 그녀가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황정우의 오피스텔을 찾아왔다. 오랜만에 이들은 거친 섹스를 한 뒤 잠에 빠져들었다. 황정우는 잠에서 깨어났다. 암막 커텐을 살짝 열자 오후의 낮은 해가 영은의 몸을 비추고 있었다. 황정우가 그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최영은은 이불을 끌어 몸을 덮었다. 수염이 파리한 그의 얼굴을 최영은은 쓰다듬었다. 잠시 후 황정우가 샤워를 하러 일어난 사이에 최영은은 뒤척거리다 테이블에서 서류뭉치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최영은은 엎드려 내용을 살폈다. 황정우는 뭔가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르며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최영은 앞에 섰다.
― 이제 나가볼까?
― 그녀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저건 뭐에요? 황정우가 나오자 그에게 침대 옆 테이블의 서류를 가리키며 물었다.
― 별거 아냐. 너는 봐도 모르는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서 씻고 나와.
― 그녀는 살짝 웃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지하주차장을 나와 둘은 차로 황지 유원지로 향했다. 이들이 가끔 찾는 장소였다. 형주시 외각으로 오래된 유적지로 사람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 장소였다. 170cm정도의 키에 짧은 미니스커트에 엷은 화장을 한 최영은은 주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둘은 스파게티를 먹고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나란히 앉아 창문을 바라보았다. 나뭇잎은 짙푸른 생기를 잃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평화로운 오후는 그렇게 지나가는 중이었다. 시간은 금방 끝날 것이다. 그는 내후년쯤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군대처럼 3년간 학교 행정과 운영 및 수업을 해 봤으니 시스템을 파악 했고 학교법인과 관련된 일들. 아버지 황의원에게도 이야기할 명분은 충분했다. 황의원의 건강은 다시 악화되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그는 황정우에게 당분간 학교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지만 황정우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인 황정우는 왜 그렇게 학교법인에 애착이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운영했던 학교법인이기는 했지만 막대한 운영비와 시설자금과 인건비에 많은 비용이 든다. 이런 것은 이제 없애 는게 여러모로 좋다.
무리가 되더라도 지난번 임기 때 학교 부지도 완전히 넘겨버리고 반석동재개발과 함께 이전을 해야 했다. 낙선하자마자 여러 곳에서 아버지를 물어뜯었고 그로인해 많은 돈을 그들의 입에 처 넣어야 했다. 특혜다 뭐다 해서 여론도 악화됐다. 이렇게 되면 또 힘든 시간을 버터야 한다. 조합원들과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 시위를 벌였다. 에이 참. 그놈의 우유부단함이란. 아버지 황의원이 그런 면에서 못마땅했다. 교육청과는 협의가 진행중이지만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학교비리를 문제 삼아 퇴직한 선생들은 진정과 민원을 넣었고 이사장과 학교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형주고는 안팎으로 이래저래 시끄러웠다. 학폭위도 열리는데다 오주희 사건 그리고 교무부장이 급식비 횡령을 문제 삼고 학교 이사진 구성에 황의원 입김이 작용했다는 비리의혹을 언론에 뿌려댔다.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시민단체와 일부 선생들은 아침에 교문에서 일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황정우는 황호민을 찾아가 오주희 삼악산 수련회 사건에 이들을 끌어 들이겠다고 말했다. 시끄럽게 구는 것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할 생각이었다. 시민단체와 기자들이 정문에 찾아와 학교는 난장판이었다. 평판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입시를 앞둔 학부형들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었다. 황정우는 전략을 떠올렸다.
황정우는 재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돌리고 선생 개개인의 일탈로 사건을 써먹어야 한다고 했다. 황호민은 교감을 교장으로 올리고 오주희 사건을 부각시키고 여론전을 편 것이다. 조금씩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법인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황호민은 곧 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허수아비 같은 대리인을 세웠다. 황호민은 황정우의 제안으로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해 중요한 선거에서 황호민은 부정적 여론 때문에 낙선할 수 밖에 없었다. 건강의 악화는 그때부터 찾아왔다. 황호민이 낙선하자 재단의 비리의혹을 들춰대고 수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는 상태였다. 황정우도 그의 입장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선거에서 반드시 당선돼야 반석동 개발과 동시에 비싼 값에 학교 부지를 매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일이 처리되지 않으면 기한이 없다. 귀찮은 일이었다. 자신을 계속 학교에 묶어 재단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 대해 정보를 파악하라는 아버지의 요구도 넌덜머리가 났다.
교무부장과 몇몇 선생들이 학교 운영에 반기를 든다는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종용으로 교사 자격증을 땄고 채용논란이 도드라지지 않도록 교사공모를 통해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한계였다. 황정우는 차를 몰고 시 외각으로 향했다. 다시 가서 확답을 받아야 할 것이다. 형주시 부촌인 조현동 일대의 단독주택단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올 때마다 숨이 막히는 이상한 곳이다. 잘 포장되고 관리된 아스팔트를 따라 모던한 외간으로 둘러 쌓인 몇 채의 집을 지나 고풍스러운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2층 벽돌집에서 멈췄다. 지역에는 새로 단독주택 여러 채가 들어선 듯 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황정우는 안으로 들어 갔다. 소파에는 황호민이 절반쯤 누워 인상을 쓰고 앉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온지도 몇 년 만이었다. 황의원은 업무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부하직원을 나무라듯 황정우를 보고 있었다.
― 오지 말라니까 굳이 오는 이유는 뭐냐? 황의원의 낮은 톤의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떨떠름한 목소리로 황정우가 말했다.
― 말씀드렸잖아요. 학교를 그만둘 생각입니다.
― 그만두고 네놈이 뭘 하려고.
― 법인 토지 매각절차가 끝나면 사모펀드나 투자회사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후 오랫동안 생각해 온 정계로 갈 것이고요.
― 아버지에게도 학교 법인에게도 그게 도움이 될 텐데요.
― 네놈은 너무 성급한 게 탈이야. 아직도 정신 못 차린거야? 그 일은 내가 다시 당선이 되고 여러 가지 상황이 무르익어야 한다고 했어. 오랫동안 공들인 일이야. 쉽게 처리가 될 성 싶으냐? 황의원은 못마땅하다는 듯 황정우를 보았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그는 그 말을 마치고 절반쯤 상체를 일으켰다.
황정우는 황호민의 느긋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난 낙선은 그의 건강도 악화 시켰다. 신장과 췌장이식 공여자를 구해야 할 정도였다. 당뇨합병증까지 생겨났다. 소문은 곧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거실 뒤편에서는 황호민의 보좌관 출신 송민지가 팔장을 끼고 두 부자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황정우는 그녀를 힐끗 본 뒤 거실의 오브제를 대하듯 무시하는 듯 고개를 돌렸다. 황호민과 사실혼 관계이기는 하지만 송지민은 실질적인 그의 아내였다.
― 선거 한번 이겼다고 야당의 양숙희가 설치고 다니고 기자들 시켜 내 뒤를 캐고 다녀서 그것 막느냐고 공을 들였는데 네놈까지 성급하게 굴 테냐. 선거에 떨어졌지만 이번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어. 황호민은 상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는 형주에서 3선을 했다. 그는 국토위를 거치고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이전에도 관여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난 선거에서 낙선했다. 양숙희는 지역출신으로 미디어 출현이 잦았다. 지난 선거는 신구의 대결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사회적 이슈를 형주시에 끌어들였다. 그녀는 여성친화와 양성평등 바람을 타고 몇 천표 차이로 그를 누른 것이다. 신도시가 개발되고 젊은 층이 유입돼 만들어진 일이다. 황호민은 도심재개발과 ktx노선 확보 등의 지역 개발을 이슈로 선거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여러 악재가 터졌고 형주 학원의 여러 채용비리와 성추문 형주학원을 둘러싼 논란을 양숙희는 절묘하게 써 먹었다. 황호민 측은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
―학교에 여러 일들을 처리해야 하니 일단 몇 년은 더 학교에 남아. 양숙희는 이번이 끝이야. 그년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어. 법인과 학교 이전 ktx역사 설치 여론도 만들어야 하고.
― 학교는 그냥 내던져 버리세요. 뭘 그렇게 집착하세요. 그놈의 학교 누가 신경 쓴다고. 황정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황호민은 황정우를 힐끗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거실 밖으로 나갔다. 황정우도 그를 따랐다. 황호민은 정원에서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다음에도 낙선하면 재기가 힘들어진다. 다음이 마지막이다. 기자나 경찰에서 힘이 다한 그의 약점을 물어뜯는다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쓸모없는 사냥개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새로 부임한 서장은 아직 우리 사람이 아니다.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다. 검사가 새로 물갈이 된다면 실적을 내기 위해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잡고 늘어질 것이다.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황호민도 무엇인가를 하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교장에게 얘기해 내년에는 담임을 맡지 않는 것으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