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쓰리랑카 놈은 진범은 아닐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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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는 정주현에게 요청한 자료를 받았다.
― 형주 학원 말이에요. 학교부터 보육원까지 운영하는 곳이 한 두 개가 아니었어요. 중 고등학교만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자료를 좀 찾아보니 설립자가 황보인이네요. 오다 요시타카로 창씨개명도 한 유명한 친일파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법인은 모든 보육사업에서 지원을 다 끊어버렸네요. 그 시기가 기묘해요. 한정혜 사건이 있었던 그 시점이에요.
― 나도 확인했어. 왜 그때 다 지원을 끊었을까. 오다 요시타카라. 그 당시 친일파 아니면 그렇게 재산을 모을 수 있었을까? 다 그렇지. 그리고 한자리 하면서 재산 불렸던 거야. 당시에는.
― 황호민과 황정우가 관련된 사건은? 뭐가 있어? 그렇게 공을 들이던 그런 보육사업에서 손을 뗀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다 얻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고. 그런 게 있을까? 있다면 뭘까?
― 오래전 황호민의 보좌관이 실종돼서 대대적으로 조사를 했는데 미제로 남았죠. 그리고 황호민의 부인은 그 사건이 있기 전 삼년전 쯤 교통사고로 사망했고요. 잇달아 안 좋은 일들이 있었어요. 황호민의 보좌관은 황호민과 깊은 사이였던 것 같은데. 집에까지 올 정도면 사실혼관계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 확실해?
― 직접적으로는 아닌데 그런 느낌이 들어요. 주변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굳이 황호민 의원은 서울에 있는데 아들만 있는 그 집에 머물 이유가 없잖아요.
― 음... 황정우 선생 아니 유력 야당 정치인은 여러 곳에 등장하시네. tv토론 같은데 나와서 떠드는 것 보면 뺀질거리는 느낌이 드는데.
― 반장님도 그렇게 보시는군요. 그것 참 이상하죠. 그런데 지지율도 높고. 정치인은 그렇잖아요. 무관심보다 오히려 안티라도 많은 게 좋다. 선거 때 되면 익숙한 이름을 찍는 경향이 크다고.
― 아..... 그게 말이 돼? 투표를 그렇게 하는 게.
― 반장님도 참. 다들 그래서 무지성 투표로 말 많은 것 모르세요? 선거를 무슨 인기투표씩으로 장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구요.
― 일단 그 얘기는 그만하고. 그 보좌관인가 하는 송민지의 실종사건은 어떻게 된 거야?
― 여기 읽어 보세요. 그는 김선호에게 자료를 넘겨 주었다.
― 집에서 나오는 게 CCTV에 찍혀 있었고 걸어가는 것 까지는 확인했죠. 근데 이상한 게 그 이후에 아무런 생활기록이 나오지 않았어요. 이상하죠. 버스를 탄 것도 아니고. 그냥 증발하 듯 사라진 거예요.
― 이상한 일이군.
― 납치가 됐다면 연락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황호민의 보좌관이라 대대적으로 수사가 이뤄졌는데 결국에는 못 찾은 거죠.
― 그 집안 좀 이상한 느낌은 없어? 난 뭔가 좀 꺼림 직한 느낌이 자꾸 들어.
― 유서 깊은 집안이고 뭐 힘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죠. 단독주택 보세요. 뭔가 웅장하기도 하고 정원 잔디도 그렇고 사진 보세요. 오래된 대 저택 느낌이 들지 않아요? 일제 시대 고위 관료 사택이었다고 하던데. 아 그리고 학교 재단에 불만이 있었던 선생들 있잖아요? 당시 형주고 급식비리하고 재단 채용 관련된 문제로 해고 무효소송하고 비리 밝히던 선생들이요.
― 응 듣고 있어. 박선호는 정주현의 말을 들으며 그가 복사한 사건기록과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 그 중 한 선생하고 통화하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들었어요. 그 선생 말에 따르면 재단이 좀 이상하다 했어요?
― 응? 김선호는 자료를 뒤적이다가 정주현을 쳐다보았다. 자세히 말해봐. 혹시 학교와 소송 끝에 학교를 그만둬서 앙심을 품고 뭐 그런 것 아냐?
―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모르는 학교 재단의 비리가 많다는 것이죠. 전화로는 좀 그렇고 일단 나중에 연락한다고 했는데.
― 아 선배님 이제는 좀 본인이 생각한 사건에 대해서 얘기 좀 해주세요. 김선호는 갑작스레 생각에 잠긴 듯 하다 정주현을 보고 말을 꺼냈다.
―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쓰리랑카 놈은 진범은 아닐테고. 대체 누가 다음 목표가 될지를 생각해봐. 이 모든 것을 눈감아 주거나 아예 적극적으로 어떤 이유로 그 괴롭힘을 강요하거나 묵인했던 그 자를 목표로 삼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거야. 당일 논술모임에 나왔던 인원은 안승민과 민소진을 제외하고 다 죽었고.
―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정주현은 뭔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런데 그게 누군지 단서가 없어. 막혀 버린 거지. 그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은 황정우야. 황정우는 조사를 한 게 없어. 공나영이 그렇게 느꼈다고 해도 말뿐인 것이고. 오래전 일에 불과해. 본인은 아니라고 잡아떼면 그만인데. 하지만 해고되고 적극적으로 형주고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그 선생은 뭔가를 알려줄 수도 있겠지. 같이 근무도 했을 테니.
― 황정우라. 그렇게 되나요? 정주현은 중얼거렸다.
― 가보자. 팀장한테 내가 얘기하고 올 테니까. 참 어디 살아 그 해직된 선생은? 정상화위원회를 주도한 선생아냐? 다른 학교에서 선생한대?
― 아뇨 경기도에서 학원을 운영하나 봐요.
― 박현민한테도 전화해서 약속잡고 뭔가 건질게 있는지. 분명 뭔가 알아낸 목소리였어.
평촌의 학원가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학원차로 붐비기 시작했다.
― 와. 이거 대단한데요. 둘은 건물 근처 공공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학원가 거리로 들어갔다. 양측 200미터 내외의 2차선 도로의 건너편 상가에 학원들이 뺵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학원은 눈에 보이는 곳만 해도 100여개는 넘는 듯 했다.
―선배님 재웅이는 학원 다녀요? 진짜 여기 엄청나군요. 이런 곳인 줄 몰랐어요. 와 온통 학원으로 가득 차 있네요.
― 나도 처음 봤어. 이 많은 곳이 다 유지가 되나 싶네. 둘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미래학원>으로 향했다. 평촌 학원가 사거리 4층 건물 중에 2층에 있었고 규모가 상당했다. 카운터에 원장님을 보러 왔다고 말하자 데스크 직원은 둘을 상담실로 안내를 받았다. 잠시후 50대 중반의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 전화 드렸던 김선호입니다. 여기는 정주현 형사이고요. 원장은 미래학원이라는 명함을 주었다.
― 학원 규모가 상당하네요. 이민호 원장은 둘을 뚫어지게 살펴보더니 악수를 요청했다.
― 형주에서 평촌까지 어려운 걸음 하셨군요. 황호민 일가와 관련된 부분을 알고 싶다고요? 그는 반가운 것인지 못 미더운 것 같은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뭔가가 이뤄질 것 같다는 기대감을 풍기는 얼굴이었다.
―형주시에서 여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수사본부도 차려지고 시끄러운 상태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요.
― 음... 곪을 대로 곪아 언젠가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사건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이민호 원장은 올 것이 왔다는 뉘앙스로 말을 꺼냈다.
― 제가 그 학교에서 한 10년 넘게 있었죠. 거기서 쫒겨났을때는 막막했는데 그게 기회가 돼서 여기서 나름 성공했습니다. 그냥 그대로 그들 말 듣고 고분고분 있었다면 저도 거기에 서 그냥 그렇게 비굴하게 살았겠지요.
― 재단의 불투명한 회계 채용비리 등 뭐 비리가 어마어마했죠. 황호민이 아들 황정우가 요새 보수정치의 희망이라고 해서 언론에 얼굴을 들이밀고 나오는데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더군요.
― 근데 사건의 용의자가 학교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까? 이원장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뭔가 관련된 게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만하다는 투였다.
― 네? 그건 무슨... 정주현이 주의를 집중하는 듯 재빨리 반응했다.
― 형주에서 황호민 아니 형주학원재단은 유명하죠. 숨겨져 있어 그렇지. 보육원이다 학교다 해서 지금은 좋은 일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미지를 세탁했지만 친일파로 유명한 집안이죠. 아예 할아버지 때부터 적극적으로 창씨개명을 해 조선인들 수탈해 쌓아온 부입니다. 그렇게 영향력을 늘렸죠. 재단에서 운영하던 몇몇 보육원도 선거가 끝나고 모두 후원이 중단됐고. 보통 선거를 앞두고 지원금액을 늘리고 이후에는 다 끊어버려요.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 부분도 파보면 뭔가가 꾀 나올 겁니다. 이상한 소문이 하나 있었는데.
― 네? 뭔가요?
―그 황호민이 건강이 좋지 않았죠. 그때가 아마 10년전 이었던 것 같은데. 선거가 있었을 때였어요. 오래전부터 보육원에 대한 지원을 해왔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아이들한테 건강 검진 같은 것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조건이었다고.
―그래요? 굳이 왜?
―이제는 굳이 필요가 없다. 뭐 그랬다는데 그 문제 때문에 원장이 힘들어 했지요. 사정을 해도 안 된다고 하더래요. 김선호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 2012년쯤이었나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으흠.. 이민호 원장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 혹시 황정우와 관련된 소문이나 말은 없었습니까?
― 아. 황정우와 관련된 소문은 있었죠. 저하고 몇몇 선생들이 학교를 그만 둔 게 급식비리와 관련된 횡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과 부당한 친인척 채용이었어요. 황정우 건도 해당되고요. 모집공고를 내고 다른 면접자를 들러리 세우고 나서. 그때 교장이 이사장의 수족이었죠. 황정우는 6개월간 채용돼서 일하다가 정교사가 됐죠. 한 일 년쯤은 그래도 보기는 했는데. 수업에 대한 평가는 좋았던 것 같고. 아. 그 얘기들을 하더군요. 누군가 재단에 반기를 드는 선생들을 몰래 선별하고 있다. 이들의 얘기를 들어서 전달한다 뭐 그런 거죠. 그렇다면 황정우 밖에 더 있습니까? 처음에는 열심히 재단의 횡령과 비리에 핏대를 세우던 윤영근도 어느 순간 돌아섰죠.
― 그렇군요. 선생중에 황정우와 가깝게 지난 사람은 윤영근이죠?
― 이건 제가 확인한 것은 아닌데. 그는 말을 좀 주저했다. 그냥 소문으로만 생각해주세요.
―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참고만 하겠습니다.
― 황정우는 여학생들과의 소문도 있었고. 어느 시점부터 소송에서 법인이 학교정상위원회에 속해 문제를 제기한 개별 선생들의 도덕성 문제를 물고 늘어지더군요. 오주희 사망사건하고 엮어서요. 뭐 그날 있었던 사건에 책임이 있는 선생도 있었죠. 학교와 대립하던 선생들 중에. 부인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런 부분을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내부자 밖에 없어요. 윤영근이 황정우와 긴밀하게 지내는 듯 했고 뭔가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할 수 밖에 없어요.
― 네. 알겠습니다. 둘은 인사를 하고 학원을 나왔다.
― 아예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군요. 형주학원은 비리덩어리라는 것은 확인됐고 파면 얼마든지 뭔가 나온다는 것이네요. 정주현이 말했다.
―윤영근이 반석동 지분을 취득하고 금융소득과 이전소득이 늘어난 시점이 그때지? 비슷하게 지성우 형사도 퇴직했고. 내가 본청으로 인사발령 받은 시점이니까. 황호민이 이식을 받은 게 한정혜 사망 이후야. 그리고 그때까지 지원하던 여러 곳의 보육시설의 지원을 다 끊어 버렸어. 좀 큰 아이들에게는 이상한 검사를 받게 했다고 했고.
― 설마? 정주현은 뒷말을 꺼내지 않았다.
― 그래. 의심이 갈 만하지. 이들에게 한정혜 사건은 행운 같은 것이었겠지. 그녀는 결국 뇌사에 빠졌고 황호민과 적합성이 맞았을 거야. 한정혜는 오래전에 장기기증에 동의했겠지. 자발적이든 아니든. 그녀의 어머니도 동의했을 테고. 뭔가 댓가를 얻었을 것이란 말야. 반석동 집하고 지분이 있지? 당시 재산이 늘어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뭔가 엮여 있을 거야. 상황은 그렇게 밖에 안보여. 신효선과 한정혜는 친자관계가 아닌 듯 싶어. 학교에 불이 난 것을 최초로 신고한 건 윤영근이고 퇴근한 뒤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어.
― 그럼 누가 이들을 살해했어요? 대체 왜? 정주현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 우리가 모르는 마지막 퍼즐이 있지 않을까? 아직 민소진? 아니 민소희 변호사를 조사하지 않았어. 안승민도 그렇고. 이들이 사건과 관련돼 있다는 증거는 없어. 참고삼아 불러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얘기를 거부하면 그만이야.
― 박현민은요?
― 박현민은 둘 다 만났잖아. 뭔가 단서를 잡았을 수도 있겠지. 우리가 그 얘기 들어보고 사건과 관련된 부분을 맞춰봐야 나머지가 풀리겠지.
― 안승민 민소진 그리고 황정우 중에 범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피해자가 더 나올 수도 있고?
― 그렇지 않을까? 형주라는 곳을 봐. 이원장이 분노하고 그곳을 떠나 평촌으로 온 이유는 뭔가 해볼 수 없을 정도로 꽉 막혀 있다는 것이지. 황호민이나 황정우가 그곳에서 왕처럼 굴어 재단의 비리를 고발하고 법정싸움을 벌여도 이들은 결국 진거야. 굽히고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둘 밖에 없지.
―그럼 살해범은 왜 <신곡>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일을 벌여 놓을까요.
―신곡의 <지옥>은 이 사건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부분일테고. 그것을 알아야 범인도 잡힐 비밀이 풀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