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료 저작물의 이용권? 사이비 역사-영화 잡지의 모험!

1인 독립출판 모노켈이 만료 저작물 이용권 구하러 다니는 고난과 행복

by 도라지 도사
MTX5YgBrxguJKvogrsW5Q-tEgl0.png 모노켈은 사이비 역사책을 만들어 팔고 종종 쩨르진스끼 쏭 떈스 앙상블과 북페어에 참여합니다.

저작권 만료되면 맘대로 쓸 수 있는 거 아냐? 대개 그런데 아닐 때도 있다. 만료 저작물을 누구나 어떤 목적으로나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하는 기관도 있고, 영리 목적을 위해서는 이용료를 지불하도록 하는 기관도 있다. 물론 열화된 복제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세상, 전문 출판사도 책을 팔기 어렵다는 대한민국. 아무리 좋아서 하더라도 적자 위협과 악성 재고를 안고 사는 독립출판인들에게 적게는 3만원 많게는 10만원이 넘어가는 이미지를 위해, 얼마든 저품질 이미지를 구할 수 있는데 기관에 고화질 이미지를 요청하고 때로는 구매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하는 건 어렵긴 하다.


하지만 나는 역사를 공부했고 미술계라는 곳에서 노동하니까, 만료된 저작물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 이들에게 리스펙을 표현하고 싶었다. 유명하지도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 책들을 만들지만 그래도 모노켈 책을 좋아하며 구매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솔직히 나는 오탈자는 1인 출판 프로젝트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뻔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만료 저작물 이용권은 강박스럽게 확인한다. 소장 기관에서 출간 목적으로 자료를 유료로 제공하는 고화질 이미지를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다고? 픽셀 깨진 이미지를 사용할 바에야 혀 깨물고 출판 안하겠다. 각자 기준은 다르겠지만, 내게는 ‘만료저작물이더라도 이용권을 준수하기’가 그 분들이 기꺼이 쓰신 책값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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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시작했지만 어느새 즐거운 작업이 된 모노켈의 역사만화들이랍니다 (*/ω\*)


물론 나도 독립 출판 초기에는 사회초년생이기도 하여 역사책을 만들고 싶은데 이미지를 살 돈이 없었다. 언젠가 독립만화 소재로 ‘역사’를 선택한 이유를 질문받은 적이 있다. 돈 나올 구석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릴 수 밖에요. (흑흑.) 그렇게 3년 가량을 보내다 기회가 찾아왔다. whatreallymatters(wrm)에서 진행했던 우수콘텐츠지원사업 <3,2,wrm,Action!>에 쭉 만들고 싶었던 영화잡지 기획이 선정되었던 것이다! 이 사업은 그간 신진이라도 독창적이고 실력도 갖춘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해왔기에 뽑힐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복권 쓰는 마음으로 투고했었다. 다행스럽게 좋은 결과를 얻었고 그동안 마음 속에 위시리스트로만 담아왔던 자료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엄청 기뻤다!


작은 불행 8번! 오타쿠의 행복….`(*>﹏<*)′

퍼블릭 도메인과 유료 라이선스를 오가는 만료 저작물 이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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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만세』는 1910년대 독일어권 영화들 속 바지 입은 여성들을 소개하는 영화잡지다. 여기서 잠깐, 일반적으로 영상과 무명/이명 저작물은 공표 이후 7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만료된다. 미국의 경우 1978년 이후 창작된 저작물에 한해 공표 후 95년 혹은 창작 후 120년이다. 유럽은 좀 더 까다로운데 영상 저작물의 경우 주요 제작자 중 최후 사망자 기준으로 70년인데 무명/이명 저작물의 경우는 공표 후 70년으로 규정한다. 1910년대 영화들은 다행히 저작권자들이 모두 사망 후 70년이 지난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1920년대가 되면 더 엄밀히 확인해야 해서 1910대를 마무리하는 모노켈은 벌써부터 긴장타는 중이다.


다만, 자료 소장 기관의 이용권 요청은 저작권 확인과 별도로 진행해야 한다. 예컨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소장한 백남준 자료들을 상업목적 등 출판에 이용하기 위해서 기관에 요청하더라도 저작권 사용 허락은 백남준의 조카 하쿠타 켄에게 얻어야 한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까? (물론 소장품 대여는 또 별개의 이야기.) 실제로 독일 키네마테크나 영화 박물관에 문의해보면 저작권은 대리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오는 한편, 무르나우 재단은 저작권을 대리하는 몇몇 감독 작품들이 있어 법률팀과 연계해서 확인한다는 답이 돌아오곤 한다.



스크린샷 2025-06-15 144604.png 『바지만세』판권지, '이미지 제공'란에 소장 기관들을 소개한다.


『바지만세』를 작업했을 때는 영화 스틸과 포스터, 잡지 광고 사진을 이용하기 위해서 여덟 개 기관과 협의했다. 유명 출판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팔로워가 엄청 많은 셀렙도 아닌, 정말 소수 독자님들만 관심가져주는 1인 독립출판 프로젝트라 무시하고 지나치면 편할텐데도 모든 기관에서 늦더라도 친절히 안내해줬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했다. 이 글에서는 퍼블릭 도메인(무료)과 라이센스 구입 사례를 비교할 수 있도록 영화 <작은 불행 8번 Malheurchen Nr. 8> 자료 이야기를 해보겠다!


스크린샷 2025-06-15 140146.png 돈 버는 일에만 J라 잘 정리가 안됨ㅋㅋㅋ


나는 씨네필이라기보단 특정 영화들 오타쿠에 가까운데, 장르로는 공포와 추리를 좋아하지만 미쳐있는 소재는 남장 여성들이다. 모노켈의 주요 작업 장르는 총 2개로 나눌 수 있는데 ‘바지 입은 여성들’이 그 하나를 차지한다. 이번 잡지 프로젝트는 1900년대~1910년대 영화들에서 ‘바지 입은 여성들’을 찾는 게 목표였다. 모노켈 프로젝트는 주로 독일어권 역사들이 중심인데, 사실 단순한 이유는 전공이 그쫙이라 리서치가 익숙하기도 하고 영미권에 비해 퍼블릭 도메인이 많거나 라이선스 구입이 저렴하다. 우선 책과 인터넷에서 해당 시기 복장전환 영화들 목록을 추린다. 그런 다음 아마존과 필름포탈에서 볼 수 있는 영화, DVD로 출시된 영화를 구매하는데 1910년대 영화는 특히 필름이 남아있는 영화들이 별로 없어 목록 만들고 할 것도 없다. 5~6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냥 머리에 박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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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 작업 여정의 고난이자 힘이었던 영화잡지들!


그다음은 무조건 노가다다. 독일어권 연구자(비록 난 아니지만~)에게 럭키비키인 점은 오스트리아 온라인 역사 신문들과 잡지들 ANNO Historiche Zeitungen und Zeitschriften에 신문과 잡지가 방대한 분량으로 디지털화되어 무료로 열람하고 다운받을 수 있다는 것! 『바지만세』를 작업할 때 계속 일을 하고 있어서 출퇴근 길에 반년 정도 아이패드로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발간됐던 영화주간지지 『영화동향 Kinematiographiche Rundschau』 9년치를 매일매일 보면서 목록에 없는 영화들 가운데 바지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는 없는지 찾았다. 그렇게 기나긴 탐색전(?) 중에 여러 영화를 건졌고 특히나 내가 사랑에 빠진 영화는 독일 배우 도리스 바이슬러 Dorit Weixler 주연 <작은 불행 8번 Malheurchen Nr. 8>!



스크린샷 2025-06-14 145911.png 모노켈 책 『바지만세』에 실린 <작은 불행 8번> 광고 이미지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지 않나요! 물론 이 영화는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사이비 역사책의 이점은 사료가 충분히 없더라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잡지를 살펴보며, 바이슬러가 1910년대부터 꽤 자주 바지 역할을 연기했다는 점도 예기치 못했던 소득이었다. 1910년대 복장전환 영화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영화는 <나는 남자이고 싶지 않아 Ich möchte kein Mann sein>인데 막상 당시 잡지들에선 다른 영화들이 많이 언급됐던 기록들도 재밌었다. 아무튼, 이 이미지를 찾자마자 바로 ANNO 담당자에게 메일을 날렸다.


ANNO는 감사하게도 퍼블릭 도메인이라 홈페이지 내에서 고화질 이미지를 바로 다운받을 수 있다. 담당자도 친절하게 요기조기 들어가서 이거 누르면 바로 쓸 수 있어~하고 안내해줘서 아주 감동! 퍼블릭 도메인 이용은 이렇게 디지털 아카이브 웹사이트 내에서 바로 다운받을 수 있는 사례가 있고, 기관 내에서는 저화질 이미지만 보유하고 직접 메일을 보내서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스크린샷 2025-06-14 150328.png 당시 이용권 구입을 위해 주고받았던 메일의 일부!

ANNO에서 자료를 최대한 확보하고, 독일 영화 박물관이나 필름 포탈에서 추가적으로 정보를 구할 수 있는지 살펴볼 요량으로 구글링의 세계에서 헤엄치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 포스터 작가인 율리우스 파울이 <작은 불행 8번> 포스터를 그렸다는 걸 발견했다! 오타쿠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율리우스 파울 컬렉션은 주로 미국 기관들에서 보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자료는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 부속 도서관인 마가렛 헤릭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아카데미 도서관이래서 단칼 거절 당하는 게 아닐까 쫄면서 연락했는데 감사하게도 돈만 내면 라이선스를 확보할 수 있다는 연락이 돌아왔다! 엉엉. 감동해서 울어버렸다. 모노켈 초기였으면 85달러 가격 앞에서 엄두도 못냈겠지만 지원사업 덕에 쿨결제가 가능했다! 특이한 절차는 이곳에서는 이미지를 구입할 때 카드번호를 직접 녹음해서 보내야 했던 것. 가련한 국내파는 쫄았지만 어찌저찌 이 관문까지 통과해서 고화질 이미지를 실컷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꺄아악!


스크린샷 2025-06-15 144338.png 요긴하게 쓰는 중. 고화질 이미지가 궁금하신 분은 올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보러 오셔요. 호호. 바지만세2가 나옵니다.


정리하자면, 해외에서 저작물 이용권을 구하는 방법도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홈페이지에서 1) 퍼블릭 도메인인지 확인하고 2) 아니라면 메일로 문의(보통 웹사이트에 주소가 있다!) 3) 유료일 경우 이용료를 납부하고 사용. 주의할 점은 유럽은 6월 말부터 8월까지 폭 넓게 2주 가량 휴가철이 있고 그 기간 동안 디지털 아카이브들은 서버 정리 등을 진행하기도 하여 출간 계획이 있다면 넉넉한 인내심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보통 독립출판인들은 11월 언리밋 행사에 맞춰 진행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열심히 뛰어다녀야 한다. 나처럼 역사가 좋아 전공을 했는데도 여러 사정들(주로…돈이죠…) 때문에 공부를 접어야 했지만 역사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고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독립출판을 하고 싶지만 헤매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글을 썼다. 지금 실업급여를 받지 못해서 쪼금이라도 상금을 받아 새 책을 내고 싶은 마음도 결정적이긴 하지만. 어쨋거나 우리 역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니, 만료 저작물이더라도 퍼블릭 도메인 여부를 확인하고 유료 라이선스를 구매하는 건 독립의 영역에서라도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고 출판을 할 수 있게 자료들을 디지털화 해준 기관들에게 리스펙을 보내는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