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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1. 2021

빛나는 눈을 가진, 외톨이

[고전소설] 다자이 오사무 디 에센셜 | 인간실격


저는 당신을, 이 세상에서 입신하실 분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자기 좋을 대로 그림만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에게 조소당하고, 그럼에도 태연스레 아무한테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이따금 좋아하는 술을 마시고 평생, 속세에 더럽혀지지 않고 살아갈 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바보였던 걸까요? <여치>


빛나는 눈을 가진, 외톨이


세상의 모서리에서, 깊은 고뇌와 상념 어린 두 눈으로 각진 세상을 바라보던 다자이 오사무. 일찍이 자신이 바라는 세상과, 남들이 살아가는 세상 사이의 괴리를 알아챈 그는, 타락과 속세, 온갖 거짓으로 치장된 이 세상을 등지고, 하루라도 빨리 죽기를 바랐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감춘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이 현실에, 더 이상 ‘인간’으로서 살아갈 희망을 못 느낀 그는, 스스로를 ‘인간실격’ 처리해버린다. 그에게 삶과 죽음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타락한 속물근성이 점철한 이 세상과는 결코 손을 잡지 않으려, 자신만의 신념과 이치에 따라 끝까지 갈등하고 싸웠지만, 자신은 결코 인간들 속에 묻어날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해버렸다.


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어 결국 죽음을 택한 작가이지만, 그의 작품만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왔다.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인간사에 대한 고발에 공감해서 일까? 아니면 시공간을 초월한 그의 글들이,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자기 안에 숨어 살아가는 모든 아웃사이더들에게, ‘너만이 이 세상 외톨이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게 아니야.’라고 위로하듯 말해주고 있어서 일까. 


어떤 이유가 됐든, 1900년대 이해받지 못했던 그의 인간에 대한 구애는, 이후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 진한 여운을 가져다준다. 만약 모두가 동그라미를 그릴 때, 홀로 네모를 그려도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에 그가 태어났더라면, 그는 삶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속세와 타락에 찌든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제 싸움. 그건 한마디로 말하면, 낡은 것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진부한 거드름 피우기에 대한 싸움입니다. 빤히 들여다보이는 겉치레에 대한 싸움입니다. 쩨쩨한 것, 쩨쩨한 사람에 대한 싸움입니다. 저는 역시나 혼자 싸구려 술 따위를 마시면서, 제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남자와 담배>









인간실격 | 가면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삶'이라는 것 밖에 내가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돼.
나는 무(無)야, 바람이야, 텅 비었어


주인공 요조의 얼굴에는 '익살'이라는 가면이 씌워져 있다. 그의 두 눈은, 어려서부터 거짓 가득한 인간세상 본질의 추악함을 꿰뚫어 보았고, 가족들에게서 타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며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요조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었고, 그들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가면을 썼다. 학창 시절까지 잘 유지되어오던 그 '가면'의 무게는 점점 버거워져 그 자신을 짓눌렀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인간실격' 처리를 해버린다.





나의 얼굴에는 여러 개의 가면이 씌워져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순식간에 모습을 달리하는 나의 가면은 어느 상황에서건 나를 보호해준다. 그중 나의 첫 번째 가면은 초등학교 때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나는 집에서 친오빠와 악을 써가며 칼싸움, 씨름 등을 하며 노는 다소 과격한 아이였다. 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에 집 밖에만 나서면 조용히 미소만 짓는 아이로 돌변하였다. 남들에게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 나를 대신할 '가면'을 쓰고 다녔는데, 내 별명이 '미소천사'가 될 만큼, 나는 '착한 아이' 가면을 쓰고 다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렇게 하면 다들 나를 좋아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어린 나는 바보같이 애들에게 끌려다녔고, 결국 초등학교 6학년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선택한 '착한 아이' 가면은 아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충분치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게 만들 또 다른 가면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계속,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과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그 결과 나에겐 다양한 종류의 가면이 양산되었고, 체면과 허위, 가식으로 가득 찬 세상에 가면을 방패 삼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 세상에 어울릴 수 없었던 사람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요조. 수많은 가면을 바꿔가며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나와 '익살'외 더 이상의 가면을 양산할 수 없었던 요조의 차이점은, 아마도 타락한 세상의 법칙에 순응하느냐,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느냐가 아닐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얼굴에 씌워진 그 '가면'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저 깊숙이 숨어 있는 '본심'은 못 본 척한 채 전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내가 생각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인간의 본질을 무섭도록 꿰뚫어 보는 그의 두 눈은, '사람의 겉과 속은 다르다'라는, 그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는 인간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썼지만, 오히려 그는 인간을 너무도 믿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끝내 저한테 그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터득했더라면 인간의 삶과 대립되어 밤이면 밤마다 지옥 같은 괴로움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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