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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1. 2021

내 안의 사계절

[책 서평] 야생의 위로 | 에마 미첼




작은 봉오리가 맺히고, 따스한 온기가 땅 위를 점령한 봄이 왔다. 추위를 피해 잠자던 생물들이 깨어나고, 봄 날씨를 만끽하려 집 밖을 나온 사람들로 도심에는 서서히 활력과 에너지가 되살아난다. 나의 마음에도 자연스레 봄이 찾아왔는지, 칙칙했던 옷들이 화사한 색깔로 물들고, 핸드폰 사진첩에는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 하늘 사진이 추가된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이번 연도도 어김없이 자연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자명종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구경간 서점에서 봄에 홀린 듯 이 책을 구매해버렸다. 


책은 25년간 우울과 싸워온 박물학자가 수집한 자연물에 관한 열두 달의 관찰 일지다. 벗어날 수 없는 우울의 늪에 빠져 죽음을 그리던 저자에게 자연은 다시금 살아갈 이유를 선사하는 항우울제 역할을 한다. 그녀의 섬세한 눈길은, 사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며 자연으로부터 치유되는 마음을 비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던 나에게도 자연의 따스한 보듬음이 느껴진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너무도 많은 자양분을 얻는다. 거짓 없는 자연은 끊임없이 베풀고, 묵묵히 받아들이며, 일관된 속도로 제 시간을 살아간다. 자연의 천천한 움직임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숨 돌릴 여유와 안정을 선물한다.





사계절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이 놀이터였던 나의 어린 시절은, 사계절을 품고 있었다. 꽃피는 봄에는 엄마와 자전거를 타고 집 앞 꽃을 관찰하러 다녔고,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땅을 파서 두꺼비집을 만들었다.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가을에는 집 뒤의 작은 동산에 올라 도토리를 줍고, 색색이 낙엽을 모아 코팅을 했으며, 온 세상이 새하얀 겨울에는 아파트 단지 내의 내리막길에서 포대자루를 이용해 오빠와 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했다. 도심의 아파트에서 나고 자라 자연을 접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나를 둘러쌓고 있던 것은 자연이었다.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살던 그 시절은 항상 내 안의 깊은 곳에 살아 숨 쉰다.


그네에 앉아 매일 다른 모습의 하늘을 바라보던 순진한 눈은, 하늘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흙으로, 흙에서 흙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로 옮겨졌다. 자라며, 나를 둘러싼 온화한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는 대신, 눈 앞의 작은 미물, 살아가기 분주한 개미만을 눈에 담는다. 온 세상이 따스한 온기로 보듬어지자, 나의 시선은 다시금 땅에서 하늘 위에 핀 꽃송이로 옮겨진다.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권태만을 느끼던 이 공간에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본 모든 곳에 푸르름이 자라고 있다. 변하지 않은 따뜻한 풍경은 끊임없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조금만 주위를 기울여도,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나의 곁에는 항상, 이 땅을 함께 공유하는 생명들이 존재하고,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묵묵함을 간직한 자연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쫓겨 조급함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손을 놓고 싶을 때, 나도 저자와 같이 집 앞 산책길을 걸어야겠다. 분명 사소한 것들에 졸이던 마음을 자연이 보듬어줄 것이기에, 내 안에도 천천히 사계절을 그린다.


우울한 날에도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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